열한살 인생의 전학일지
전학을 온 뒤의 새로운 학교 적응기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다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이미지 리셋 쌉가능!!!!!
각종 거짓말로 나를 포장하고,(나 공부 잘해, 글씨 잘 써, 전학교에서 서기였어...등등)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하지만 친구들은 처음 보는 낯선 나를 골탕먹이기 바쁘다.
아 내가 같이 놀아주려고 했더니만, 기분 더러워서 안논다.
집착을 버리고 다른 친구에게 접근하는 나.
하지만 그 친구는 도벽이 있는데...
친해지기 위해 함께 문방구 물건을 훔치기 시작한다. 쫄깃한 긴장감과 스릴감에 점점 친구보다 더 도둑질에 빠져든다.
집에는 아빠와 엄마가 다투는 중. 이놈의 콩가루 집안. 도망치는 엄마를 기어이 잡아 오는 아빠의 눈이 어딘가 미친 사람 같다.
“혼자가 편해” 언제가 엄마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 하다.
친구와의 도둑질은 하나의 놀이가 되어버리고, 점점 더 대범해져 이제는 죄책감도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서 시내 번화가 큰 문구점까지 구역을 확장하며 어린 치기는 자꾸만 커져간다.
어른들이 바보처럼 느껴질때쯤
너무나 도둑질이 쉽게 느껴질때쯤
문구점을 한바탕 털고 집에 가는 길 배가 고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백화점 식품관에 들어가 과자를 훔쳐 먹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동생까지 꼬드김) 직원에게 걸리고 만다.
나의 너무나도 가벼운 허세 덕분일지도.
우리는 직원 사무실로 끌려가서 집 전화번호를 불었다. 직원이 집에 전화를 하고,
‘이제 다 끝났구나. 우린 이제 죽었다.’ 하며 체념하고 있을 때 직원은 황당한 듯 전화를 끊고 우리를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하 니네 엄마가 바빠서 못 온다고 니네 오빠 보낸대... 하.. 진짜... ”
역시 우리 엄마다. 보통내기가 아니지. 엄마는 거기 가면 쪽팔려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시낼 다니나며 당차게 오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멋지다. 울 엄마.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런 엄마를 둔 동정을 잠깐 받게 되었으니 어찌 됐든 엄마의 전략은 양 쪽 모두에게 효과가 있었다. 직원은 우리가 어려서인지, 그리고 불쌍해서인지(엄마 덕분에) 훈계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우리는 오빠의 손에 인계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본인이 오지 않았던 미안함 때문인지 우리를 크게 혼내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말하지만 않는다면 해피엔딩인데.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남의 치부를 덮어주는 그럼 성인군자가 아니다. 엄청난 수다쟁이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서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아빠가 퇴근한 뒤 다함께 tv를 보는 자리에서 엄마는 “아 글쎄..”하며 무슨 남 일 얘기하듯 우리의 도둑질 이야기를 아빠한테 들려주었다. 그 뒤는 뭐 충분히 예상가능한 스토리. 아부지는 극대노하며 평소의 욱하는 성질 그대로 화를 참지 못하고 펑펑 때리셨다. 아마 엄청 맞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에게 아주 조금의 이성의 끈은 남아있어 회초리로 맞았다. 실컷 맞고 밤에 엄마와 같이 누운 방. 엄마는 미안했는지 아빠가 그렇게 때릴 줄 몰랐다며(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말이 되냐고. 그렇게 맞아본 사람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 때린 아빠가 미안했는지 슬쩍 방에 들어오는 게 느껴져 급히 자는 척을 했다. 아빠는 나를 깨우더니 많이 때려서 미안하다고, 뭘 훔쳤냐고, 뭘 그렇게 갖고 싶었냐고 물어보셨다. 그 순간 처음으로 물건을 훔친 게 부모님께 죄송했다. 하지만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며 뭐랑,뭐가 갖고 싶었다고 그래서 훔친 것처럼 꾸며서 이야기를 했다. 왠지 아빠의 기대에 부흥해 줘야 될 것 같아서.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생각 없이 그냥 재밌어서 훔쳤다고 하면 또 엄청 맞았겠지....
그 이후로 도둑질은 근처도 가지 않고 다시 평범하게 살았다. 가 되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도둑질이라는 게 중독성이 아주 강력하다. 문구점을 가도 주인이 보고 있지 않은 순간이 오면, 뭔가 ‘타이밍이다!’ 라는 마음이 들면서 심장이 나도 모르게 두근거린다. 이런 걸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불쌍하고 순진한 동생을 꼬드겨 또 도둑질에 나서게 되었다.
장소는 집 근처 문구점. 평소 손님이 별로 없는 한산한 그 곳에서 동생과 나는 내기하듯 훔치기를 시도하였다. 지우개를 하나 소매에 넣고, 동생에게 나 성공했다는 듯 자랑을 하고, 동생도 도둑질을 시도하려는 그 때...
아뿔싸... 우리는 또 걸리고 말았다.
서로 너무 눈치를 주고 받았던 것일까... 분위기를 너무 오래 잡았던 것일까...
그런데... 동생만 걸렸다....
주인 아저씨는 동생이 훔치는 순간만을 포착하고는 설마 나까지 물건을 훔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동생만을 잡았다.
아마도 나의 착하게 생긴 외모가 한 몫했을 것이다.
나는 아저씨가 동생을 잡았을 때 놀라는 척,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척, 혼신의 연기를 펼쳤고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제가 제대로 혼내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를 시전하며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실은 다 내가 하자고 한건데. 동생에게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 “왜 걸렸어!” 하고 혼을 냈다. 그래도 그 날 이후로 우리의 도둑질은 멈췄다. 역시 한 번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두 번은 걸려야 아 이젠 하면 안되겠구나를 깨닫는 어리석은 나이였다. 그 때 두 번째 걸렸을 때 아저씨가 집에 전화했으면, 진짜 죽도록 맞았겠구나를 생각하니 도둑질에 대한 욕망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포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도둑질은 막을 내리고 학교에서의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기를 찾아갔다.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공부를 잘한다고 거짓말을 하도 하고 다녀서인지 성적이 올랐다. 친구들이 다 나를 우등생으로 대우해주니 뭔가 진짜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찌 됐든 나의 거짓말이 나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새로운 학교에서는 내 맘대로 나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그건 아마 전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작은 소망일 거다. 전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작은 허세일 거다. 나는 꾀나 영악한 어린이였으나 나아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순수한 욕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전학 뒤의 나의 삶은 주류로 향하고 있었으나 주류의 유치함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고 더 잘났다는 그런 유치함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나는 그저 사람이 좋았을 뿐. 그래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뿐. 급나누기는 또 체질이 아니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방황을 좀 했었다. 친구들에 맞춰 휩쓸려 다니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꾹 참다 6학년 때 바지에 오줌을 싼 일도 있다. 생각해보면 죽을 만큼 창피했을 텐데, 그냥 집으로 가도 됐을 텐데, 굳이 친구한테 바지에 오줌 싼 것을 이야기하며 친구 집에서 바지랑 속옷을 갈아입었다. 친구 어머님이 참 따뜻하게 너무 급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신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왜 그랬을까? 그렇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니?
이런 것도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이후에 나는 성장을 하였던가. 라고 물으면 자신은 없지만.
혼자가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