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를 사랑하고 소모하는 방식
나는 새로 리부트한 스타트랙 시리즈를 좋아한다. 특히 2편인 스타트랙 다크니스 특유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매력적인 악당, 수많은 복선과 이를 통한 사건의 해결, 각각의 캐릭터들의 생동감 등에 반한 지 오래다. 나는 그것이 감독인 쌍제이의 결과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시리즈가 개봉하며 감독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고 약간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이 무너질 까 두려워한 한 할아버지의 걱정과도 같았다.
스타트랙 비욘드는 내가 좋아하는 2편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수용한 채,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적절한 활용과 복고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적절한 장치가 더욱 탁월하게 활용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범 우주적인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 이야기인 이 고전은, 현재 영화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시각효과와 특수효과를 덧입고 멋지게 비상하는 중이다.
이야기는 한시도 쉴 틈 없이 타이트하게 진행되어나간다. 시작과 동시에 새로운 외계 문명과 조우하고, 이 과정에서 협상의 도구로 쓰였던 미지의 무기가 단서가 되어 곧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타임라인의 거의 1/4 지점에서 주인공 크루의 좌절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유대와 정의의 상징이자 모험의 거점이었던 엔터프라이즈호가 박살 나는 이 시점에서, 주인공들은 지금껏 보아온 스토리들 가운데 가장 큰 좌절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거의 모든 선원들을 납치당하고 자신의 모선마저 잃어버린 주인공 커크는 자신의 선원들을 구출하고 의문의 악당이 계획하는 우주 연방 말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거의 제로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선다.
내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설명을 꽤나 명쾌하고 짧게 해준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건을 이끄는 의문의 무기를 어디서 얻었는지 영화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크루와 함선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여성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곳곳에서 사건을 뒤집는 단서가 되는 과학적 지식들을 구구절절이 나열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거나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피를 줄이고 빠르게 나아가는 쾌속선같이 영화는 내내 쾌적하고 명료하게 결말을 향해 항해한다.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3편이나 이어지는 시리즈물 같은 경우에 많은 감독들은 일종의 패배를 경험하곤 한다. 자신들이 다루던 캐릭터가 더 이상 입체적이지 않게 되거나, 그것들을 연소하는 배경과 설정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등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어벤저스 시리즈, 혹은 스타워즈 시리즈 등)은 그러한 증후군에서 많이 벗어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멤버들에게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며 그것들의 동기를 충분히 부여하는 등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함은 물론, 새롭고 매력적인 인물을 효과적으로 투입하고 그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질주하는 이야기의 돛대를 명확하게 잡아간다. 스팍의 멋진 웃음과 시적 농담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술루의 지휘관적 면모라던지, 본즈와 스팍의 깨알 캐미 같은 것들. 그리고 제이라라는 멋지고 매력적인 조력자 역시 탁월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스코티는 여전히 이 극의 활력소가 된다.
이전작들과 비교해 이 영화만의 매력을 또 하나 말하라면 단연 구시대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과 그것들이 실제적으로 극 중에 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이라가 탁월한 조력자였음을 보여주는 구시대의 함선이 등장하며 다양한 오마주가 쏟아지고, 그것이 동작하여 극의 주된 갈등을 훌륭하게 해소하는 과정은 정말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팬들에 대한 멋진 서비스임과 동시에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게다가 맞설 수 없는 적처럼 여겨진 강력한 적의 요격선들을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으로 격파하는 모습은 시적 은유임과 동시에 영화 내에서 가장 유쾌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의 명대사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쉬운 것 역시 존재한다. 이야기의 살점들을 걷어내고 보면 결국 그 구조는 너무나 단순하고, 악의 동기 역시 충분히 설명되었고 납득 가능하지만 여전히 납작하다. 게다가 그 단순한 구조라는 것이 대부분 전작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기존에 대한 답습과 효과적인 차용 사이에서의 의문 역시 남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한 기시감이 심하게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는 좋다. 무엇보다 캐릭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다뤄주어 좋고, 전작과 그보다 더 이전 시리즈의 팬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 좋다. 하지만 이 영화를 먼저 접하는 관객들에게도 낯설게 다가가지 않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어 더욱 좋다. 그러나 결국 가장 멋진 것은, 이 영화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난다는 점과 그것에 대한 아주 멋진 타임랩스 엔딩 장면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각각의 선원들이 번갈아 읊어주는 마지막 내레이션까지. 올해의 멋진 블록버스터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 레너드 리모이와 안톤 옐친을 추모하며.
++ 사실 여러 부분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올랐다.
+++ 스팍은 시리즈가 갈수록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어간다. 오히려 커크 선장이 계속해서 같은 이미지로 소모되고 있지는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