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낭만적인 탐정의 첫사랑 찾기
1.
간만에 재밌는 한국영화를 봤다. 첫사랑에 대한 여러 영화들 중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다. '시라노연애조작단'이 많이 생각났는데, 나는 이런 식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좋다. 연극톤의 약간 톤업 된 배우들의 연기들과, 과하지 않은 유머와, 신파적이거나 상투적이지 않은 스토리와 연출. 거기에 음악과 배우의 매력마저 좋다면 나는 이런 한국 영화를 기다릴 것이다.
2.
첫사랑을 잊지 못해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혼사를 걷어찬 현역 무대감독 지우와, 철저한 직업윤리로 인해 여행사에서 잘리고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소를 개업한 기준은 지우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기 위해 만난다. 지우가 알고 있는 정보는, 십여 년 전 인도에서 처음 만났다는 사실과 그의 이름이 김종욱이라는 것뿐이다. 나이도, 출신도, 학력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우의 작은 기억의 파편들을 들으며 기준은 그만의 고집스러움과 이타심을 기반으로 한 직업윤리를 무기로 김종욱을 찾아 나선다.
작은 단서를 통해 김종욱을 찾아가는 과정은 로맨틱한 추리물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과 현실의 시간들이 교차해서 중첩되는 연출은 첫사랑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일상을 종종 점령하는지 알게 해준다. 세상 모든 탐정들 중 첫사랑을 찾아가는 탐정만큼 낭만적인 탐정이 또 있을까. 그리고 기꺼이 그의 의뢰인이 될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낭만이 가득한 세상에서라면 우리는 누구나 그를 찾아갈 것이다. 나의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그는 어떻게 지내는지, 다른 사람을 만나는지, 건강한지, 여전히 아름다운지, 그런 것들을 물으며.
기준과 지우의 김종욱 찾기는 계속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좌초한다. 지우의 작은 기억의 조각들과 김종욱이라는 이름만으로 추려낸 전국의 수많은 김종욱을 찾아가는 동안, 그들은 김종욱을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이 무의미하진 않다. 기준과 지우가 김종욱을 찾으며 보낸 숱한 시간들은 그들 사이에 추억과 장소를 만들어낸다. 기준은 지우를 응원하고, 지우는 기준을 위로한다. 함께 마신 술과, 보낸 밤들 과, 나눈 대화들은 결국 그들을 김종욱이 아닌 다른 장소로 이끈다.
3.
기준은 전임 상사를 찾아가 외친다. 도대체 그 10년이 뭐길래 사람을 못 잊게 하느냐고. 그곳이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10년의 세월도 잊지 못하게 만드느냐고. 하지만 기준은 이걸 알지 못한다. 지우에게 남은 것은 기억이 아니라 김종욱이라는 우리 모두의 일반명사일 뿐이라는 걸. 지우는 정말 그녀의 말처럼 십여 년 전 그날을 모두 기억할까? 그녀가 기억한 인도의 거리와, 그들이 잠잤던 방과, 나누었던 대화 모두 정말 있었던 일일까?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에게 김종욱이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김종욱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만의 기억 속에서 어쩌면 일종의 소설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의 끝장을 끝내 읽지 못한 것처럼, 마지막 남은 호두과자를 먹지 않는 것처럼, 그녀 역시 다 쓰여지지 못한 소설을 덮어 놓은 채 회피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준은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기준이 지우에게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좀 생뚱맞다). 그리곤 끝을 보는 것에 대해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득을 생각했다. 나와 득은 서로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줄 때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는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결론을 쉽게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지하고 답답하고 정답을 알지 못해 방황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의견을 듣는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득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온전히 내게 해주는 이야기와 같다고. 기준과 지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스스로의 문제에는 그토록 무능하면서, 서로의 모습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이 생각한다. 서로에게 '우연을 붙잡아야 인연이다', '끝까지 가봐야 사랑이다' 같은 말들을 하지만, 그것들은 그들이 항상 답답하게 여겼던 스스로에게 주는 답변과 같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게 된 둘이 달려가는 모습은 약간 아름답다. 물론 연출이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 이야기 자체는 좀 아름답다. 지우는 공항으로 김종욱을 향해 달려가고, 기준은 그런 지우를 향해 공항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마지막의 그들 모습은 약간 상투적이지만 보기 좋게 수긍할 만하다.
+ 임수정 사랑해요.
++ 공유를 보며 내 친구를 닮았다고 친구 무리들에게 말했다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
+++ 왜 하필 인도야. 보면서 자꾸 딴생각했다. 인도에 가보고 싶다.
++++ 비포 시리즈도 그렇고, 이런 로드무비+우연적 사랑에 대한 영화를 보면 내게도 이런 일들이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선 없다. 꽤나 혼자 다니는 여행 많이 해본 내가 증명한다. 하지만 공유라면 가능했겠지. 쓸쓸하다.
+++++ 까메오들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