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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0. 2016

'부산행'을 보고

한국적 좀비물의 성공 가능성

1.


 다양한 영화들이 생각나는 영화다. 여타 좀비 영화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한정된 교통수단 속에서 벌어지는 아이와 부모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플라이트 플랜도 생각나고, 열차 속에서 작은 사회를 만들어 풍자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도 생각난다. 한국식 재난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짜증과 한숨이 나오는 지점에서는 최근에 본 터널도 생각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의 생존 상황을 그린 미스트도 생각나네. 하지만 그 어느 영화와도 비슷하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자 재미있는 점이다. 보통 이렇게 많은 영화들이 떠오르는 영화는 그 영화들의 (잘못된) 총합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한국식 좀비 영화는 처음이지 싶은데(아 아니네, 생각해보니 이웃집 좀비가 있구나.. 아마 더 있겠지? 그럼 앞에 '제대로 된'이라는 수사를 붙여서), 꽤나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플롯을 나름 나쁘지 않게 연출했다. 신선하다.



2. 


 바쁘게 살아가는 펀드매니저 석우는 딸의 생일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아내를 만나러 부산행 열차를 탄다. 그런데 열차가 출발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 좀비와 같은 증상을 발생시키는 전염병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고, 열차 안에도 보균자가 탑승했음이 밝혀진다. 사건이 발생하고 책임자, 혹은 사건 발생지 주변의 일반인이 이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은 열차 안과 밖이 매우 비슷하게 진행된다. 열차 밖에서는 국민들, 안심하시라는 전형적인 재난발생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이 사건을 과격 시위대의 폭동 정도로 규정한다. 사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사이 전염병은 진화하지 못할 정도로 퍼져만 간다. 열차 내에서는 최초 보균자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해당 칸부터 급속도로 전염병이 번져나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보균자를 최초 발견한 승무원과 선임 승무원 모두 순식간에 감염되었음은 물론이다. 


 사건은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전염병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달려가는 속도로 전염된다. 좀비들의 지능 수준이나 야맹이라는 약점 등을 간파하기 전까지, 이 병은 순식간에 열차 차량의 상당수를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석우는 재차 딸인 수안과 부딪힌다. 수안의 이타성과 석우의 이기심의 충돌이 아주 이해하기 쉬운 우화처럼 나열된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문제부터, 사건의 돌파구를 혼자만 독점하려는 문제까지, 석우는 재차 수안에게 말한다. 이런 상황에선 너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그러나 이런 상황에선 이기심이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이 영화의 주제다. 상화(마동석)가 격투 게임의 캐릭터처럼, 혹은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좀비들을 털어버리는 동안, 그의 등 뒤에 석우와 야구소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상화도 쉽게 감염되었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이들은 수많은 위기에서 서로를 구해주며 생존한다. 그리고 이기심은 이타심과는 반대로 작용한다. 서로를 살리고 응원하는 이타심과는 달리 이기심은 열차 안의 수많은 위기상황을 악화시킨다. 용석(김의성 아저씨가 연기한, 보통 발암 아저씨로 통하는)의 행동들은 악하다. 그는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악한 결정들을 통해 타인을 해친다. 중반 이후 용석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다른 칸에서 전진해 온 인물들을 고립시켰을 때, 한 인물이 선택하는 상황이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임과 동시에 문득 섬뜩하여지는 장면이다. 아무튼, (그 상황에서 용석의 생존은 생각지 않았건만) 다시 등장한 그는 또 한 번 상황을 재앙으로 몰고 간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다양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들 중 대다수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를 온전히 설명한다. 심지어 그들은 용석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인물도 아니고, 승무원처럼 그 공간 안에서 책임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한 여자의 남편, 또래 여자애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 한 아이의 아빠, 그리고 노숙자까지.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최후의 생존자들을 부산으로 인도한다.



3.


 영화가 신선한 점은, 일단 설정 자체의 흥미로움에 기인한다. 이 엉망진창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좀비 전염병이라는 재난이 닥친 설정도 재밌는데, 여기서 대다수의 도시들이 방역에 실패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 안의 인물들 사이에서도 전염에 따른 소동과 갈등이 나타난다. 열차는 운동하며, 영화에서의 시간 흐름은 실제 러닝타임과 비슷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이 속도감과 더불어 도시와 열차 안을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좀비의 활동성, 그리고 그 좀비들을 맨주먹으로 쥐어패는 상화의 모습까지 겹치며 관객은 계속해서 쾌감과 영화적 재미를 느낀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선택하는 지점들이 그들의 개성을 반영한다는 점은 충분히 좁아질 수 있는 극의 부피를 넓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개개의 사건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열차의 상황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묘사에 더욱 중점이 있어, 극은 단순한 주제를 놓고 계속해서 질주한다. 그런 점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과도한 노출 속 플래시백은 안쓰럽다. 피 튀기는 긴장 속에서 갑자기 순백의 장면이 나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그 천천히 흐르는 시간들과, 아이의 울음소리와, 과하게 클로즈업된 석우의 얼굴에서 나오는 쓸고퀄의 연기까지. 안 그랬길 바랬다. 이 장면을 빼고 본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한국적 좀비물의 성공 가능성을 알린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사실 나는 개개인이 닥친 좀비 재앙 속 면면들에 더 관심이 있다. 웹툰 중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있는데, 한국의 좀비물 중에 나는 이게 제일 좋다.

++ 정유미는 정말 너무 예쁘고, 공유는 김의성 아저씨가 '이 새끼 봐봐 이거 감염됐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잘생겼으며, 마동석은 이 영화의 꽃이다.

+++ 이 의견은 좀 조심스러운데, 일부 평론가와 관객들의 평 중에서 '여성들을 너무 수동적이고 구원받는 존재로 그려내서 불편하다'는 의견을 봤다. 이런 식의 해석은 좀 당황스럽다. 열차라는 한정된 자원을 갖춘 좁은 장소에서, 무력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존재들이 인물들을 위협할 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존재는 역시 무력을 갖춘 존재다. 여기서 성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좀 의아해 보인다. 만일 여성이 이 사건 속에서 좀비들을 저지하고 자력 구제하려 한다면 각본은 더욱 복잡해져야 하고, 여성의 캐릭터는 더욱 현실과 벗어나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사건들 속에서 정말 자신의 의지로 어떤 의미 있는 선택을 한 존재가 있다면 할머니를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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