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래 Apr 05. 2017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을 보고

껍데기(쉘)만 가져온 안쓰러운 리메이크


 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에 대해 좀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한국 개봉명은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이다. 즉, 우리가 기억하는 그 명작, 1995년의 애니메이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에 기대하기를 최근 연달아 시도되는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와 비슷한 맥락에서 포인트를 잡고 있었으며, 애니메이션의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훌륭히 새롭게 연출한 이 영화의 예고편들은 그러한 기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좀 크게 실망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홍보전략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전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관계가 없으며, 캐릭터의 시각디자인이나 기본적인 (아주 넓은 범위의)세계관 정도를 제외하면 스토리와 인물들의 설정과 사건과 주제 모두 다른 별개의 영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영어 제목은 그저 'Ghost in the Shell'이던데, 한국 개봉명도 공각기동대를 빼고 그냥 새로운 리메이크의 의미로 '고스트 인 더 쉘'로 했으면 이런 오해가 없었을까 싶었다.

 영화는 기본적 세계관을 설명하는 간단한 자막을 거친 후 시종일관 화려하게 돌진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좀 맥이 빠지는 면이 없지 않아서, 원작에서 가져온 세 장면 정도의 인상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전개되는 속도나 연출의 지향하는 바에 비해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만 그러한 부분들을 새로 입힌 시각적 효과와 미래적인 각종 디자인들로 덮어두려 하는데, 그 의도가 적나라하게 느껴지기에 그것들이 관객을 압도한다던지, 황홀하게 취하게 한다던지 하지는 않는다. 그저 흥미로운 정도로 인상적인 영상들이 플롯의 구멍들 사이에 듬성듬성 삽입되어 있다.

 앞서 이 영화를 원작과는 무관한 별개의 작품으로 규정했기에 원작과의 비교는 적절치 못하다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긴 너무했다. 원작에서의 철학적 무게감이나 섬세하게 묶여진 서사의 난해함을 지워내고 그 부분을 명쾌한 (그리고 먹힐만한)플롯과 인상적인 영상들로 채워냈지만, 그 결과는 마뜩잖다. 원작이 있는 영화로서 가져야 할 윤리를 성취하지 못했다. 원작에서 탁월했던 장점들을 취하고 과거에 기술적, 혹은 취향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집중해서 보완했어야 할 터인데, 이 영화는 너무 안정적인 길로 향하느라 안일했다. 원작의 압도적인 성취는 모두 버려졌으며 대중성을 노린 스토리텔링은 이제는 너무 흔해빠진, 오히려 1995년의 그것보다 올드한 스타일을 선택했다. 차라리 클리셰라고 말할법한 자아 찾기 여행은 너무하지 않은가. 같은 이름을 가져와놓고는 흔해빠진 SF물을 만들어낸 감독에 대한 원망은 이 영화가 개봉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만 갈 듯싶다. 

 영화를 보며 원작과 거의 유사한 장면을 (대부분 예고편에 등장한)세 곳 정도 발견했는데, 영화를 다 본 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런 노선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감독은 이 세 장면을 보고 이것들을 연결하며 나름대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라고. 아니나 다를까, 보고 와서 알아보니 내가 생각한 것이 정확했다. 몇 개의 이미지를 늘어놓고 그것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감독의 인터뷰. 

+ 누군가와 포옹을 하는 마지막 즈음의 장면은 정말 아니었다. 그런 따듯한 결말이라니..
++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설정인 임사체험과 기억 투사에 대한 메타포도 주의 깊게 다뤄지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 너무 비판만 했나? 좋은 점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별로 없다. 왜냐면 새롭게 만들어낸 플롯이라도 제대로 기능했으면 어느 정도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마저도 엉성했다.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과 극적인 캐릭터들의 변화가 납득 가능하지 않았다. 
++++ 화이트 워싱 논란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보고 나니 더 필요 없었을 논란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명하면 스포가 되는데, 아무튼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팅 힐'을 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