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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Apr 05. 2017

'미녀와 야수'를 보고

일단은 사랑스러운 우리의 만화영화

 꽤나 순수한 마음으로 보았던 오래된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대신 우리에겐 이런 단어가 있었다), '미녀와 야수'가 실사화되어 개봉했다(나는 이 용어가 참 마뜩잖다, 하지만 대체 가능한 용어가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엠마 왓슨이 주인공 벨 역을 맡았다고 들었을 때,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었다. 나와 나이가 같고, 생일마저 가까운 그녀 역시 아마 나처럼 어릴 적부터 디즈니의 만화를 보며 자라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녀가 벨을 연기하고자 결정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이 조금은 그려졌을지도. 내가 보고 자라온 숱한 서양의 동화들이 연달아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대에서, 이 영화들을 보며 새로운 세대들은 다른 감상을 품게 될까. 새롭게 개봉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기존의 만화영화의 장면 장면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적인 세계관의 설정과 스토리라인은 물론이고, 배경과 소품들에 대한 디자인의 디테일, 연출의 살결까지도 거의 그대로 실사화하는 것에 충실한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기존 만화영화의 변주가 아닌 답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품게 하기도 한다. 음,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내게는 왠지 모를 새로운 감동이 있었는데, 이는 실사화된 이 영화의 장면 장면들의 섬세한 영상미와 소품들의 아름다움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고, 선과 악의 명징한 관계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역전시킨 채로 진행하는 (과거에는 새로웠을)신선한 서사 때문도 아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인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된 사랑에 대한 메타포에 새롭게 감동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무나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를 다시 보며 느낀 감동이란 무엇인가, 정리해보자면.. 나는 예전에도 분명 있었을 세 장면을 다시 보며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첫 번째는 점점 희망이 사라져 가는 시점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조연들의 모습이다. 벨이 이렇게 묻는 장면. 당신들은 어째서 이런 와중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느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난 그들의 낙관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들이 지내온 세월을 셈해볼 때, 그들의 낙관은 미성숙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힘으로 이겨낸 자들의 성숙한 태도이기 때문에. 

 두 번째는 소통의 장면이다. 요정의 신비한 힘으로 자신이 태어난 파리에 찾아간 벨과 야수가 소통하고,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심지어 죽은 어머니와 소통하는 그 장면. 그 장면에서는 이 영화의 많은 것들이 설명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그 장면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단지 눈 앞의 상대와 내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없고 심지어 세계에 없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세 번째는 뭐, 마지막 장면인데, 최후를 예감한 주인공들이 여명 속에서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딱히 장엄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은.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작별에는 유머가 있고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인사, 그 문장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에는 진심이 있고 앞서 말한 첫 번째 장면의 낙관과 서로에 대한 경의가 있다. 긴긴 시간들을 저주 속에서 보내온 자들의 마지막 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예쁘고 낭만적이고 서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한 그 인사말들과 그들의 표현방식에 나는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다시 보고 있구나-라는 감상에 젖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면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변화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읽을 것이 아니다. 십수 년 전의 내가 보았던 만화영화와 지금 내가 본 이 영화가 다른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다르게 읽힐 것이 분명하겠지만 내게는 위와 같은 이야기로 읽혔으므로,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들은 일단 제쳐두고 나는 좋게 보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사실 이 감상은 함께 본 사람과 본 시점에 영향을 분명 받았을 것이다. 
++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벨도 아니고 야수도 아니고 개스콘도 아닌 르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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