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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2. 2015

우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150521(3) : 베트남 하노이, 식당 도마뱀

 도마뱀에 도착했을 무렵, 우리는 굶주려있었다. 생각보다 저렴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음에 지친 우리는 별 고민 없이 도마뱀에 들어갔다. 


 도마뱀의 실내는 생각보다 로컬적(?)이었다. 외부에서는 마치 미국 서부풍의 레스토랑처럼 보였지만 한적한 실내에는 몇 가지 인디언적인 소품을 제외하면 핸드폰만 만지는 종업원 셋과 베트남 영화가 나오는 텔레비전 등 미국과는 전혀 연관되는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별 고민 없이 비프 스테이크와 멕시칸 피자를 시켜놓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중 득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내 폰으로 기프티콘을 결재하여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생각 없이 핀잔을 줬다. 너 너무 열심히 연애하는 것 아니냐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줬던 핀잔이었다. 그 핀잔을 받은 득은 약간 감정을 섞어 내게 뭘 그렇게 말하느냐고 쏘아붙였다. 그게 계기가 되어 우린 그 식당에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약간 논쟁 비슷한 것을 했다. 사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연애라는 것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의 사람이므로, 어차피 끝나버릴 연애에 몰두하는 득이 조금 못마땅했고, 그런 감정을 캐치한 득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득은 나의 빈정댐으로 인해 상처받은 것이 분명했다.


 내 연애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전력을 다한 연애는 자신의 노력에 비례한 만큼 고통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일정 거리를 두고 사람을 만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분명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그런 연애관을 누구에게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니 은연중에 득을 빈정댄 내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랬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후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끝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연애는 너무나도 어이없이 일방적인 차단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의도와 다르게 득의 감정을 건드린 것에 후회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이해하기에 아직 꺼내놓지 못한 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내 얘기를 천천히 하기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최근에야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좋아했던 여자는 B였던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걔를 정말이지 열심히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연애했어. 너 말대로 후회가 없을 만큼. 그런데 역시 너도 알다시피 그애랑 이별한 내 상황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당황스러운 모습이었지. 나는 그런 식의 이별을 감당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서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후회가 없었을 그 이별에, 계속해서 엉뚱한 생각만이 비집고 들어왔어. 종착역이 어쩌구 하던 그 사람도 이렇게 어이없이 나를 떠나는데, 세상에 연애란 다 무슨 의미인가? 온 감정을 쏟고 난 뒤에 찾아오는 것이 이렇게 큰  슬픔뿐이라면, 출구를 모르고 틀어놓았던 내 그 모든 감정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연애에 진지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어. 그 한 연애로 인해서. 그게 너와 내가 다른 점인 것 같아.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은 연애의 끝에 스스로와 상대방을 위해 앞으로의 연애에는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 거고, 나는 반대의 상황에서 반대의 생각을 한 거지. 이해하겠어?


 득은 알겠노라고 했다. 너에게 그 연애가 그 정도의 상처가 되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나 역시 너에게 그녀가 그 정도의 존재인지 몰랐다고 했다. 만일 득에게 그녀가 내가 만났던 B와 같은 존재라면, 내 성급한 발언은 득에게 상처가 됐을 터였다. 우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도마뱀의 요리는 근사했다. 비프 스테이크에 얹혀나온 허브는 향긋했고, 고기는 얇게 저며져 부드러운 식감을 냈다. 햄과 토마토, 치즈가 마요소스에 설켜진 피자 역시 맛있었다. 우린 밥을 먹고, 식당 앞의 꼬치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2차로 꼬치 하나씩을 먹은 뒤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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