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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2. 2015

문간채를 지나 들어간 안마당은 고요하였으며,

150521(2) : 베트남 하노이, 거리의 한 근대주택

 자리를 피해 나온 우리는 식사메뉴를 정하기로 하고 메뉴판을 밖에 내어놓은 가게들마다 들러 메뉴를 살폈다. 하노이의 거리는 베트남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시에 구석구석에 놓인 여러 나라들의 요리 전문점들 덕분에 다국가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스시집이 보였으나 너무 비싸 패스, 스테이크를 먹을까 하였으나 역시 너무 비싸 패스, 로컬 푸드를 먹을까 하였으나 곧 버스를 탈 텐데 땀을 흘리기 싫어 패스, 패스, 패스.. 하다 보니 먹을게 없었다. 결국 약간의 사치를 부리기로 하고, 초반의 골목에서 보았던 스테이크와 피자를 판매하는 곳으로 정했다. 


 그러나 아까 봤던 그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초록색 도마뱀이 그려진 그 집을 찾으려 하였으나 비슷한 골목을 계속 맴돌 뿐, 도무지 그 도마뱀은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골목을 돌아 큰 길을 지날 무렵, 눈에 띄게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단층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다. 주변에 보석상이 즐비한 거리였는데, 삼층 이상의 좁고 높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연속되는 그 거리에서 넓고 낮은 목조 단층 건물을 보니 눈길을 끌었다. 


 그곳은 넓은 문간채를 지나 바깥마당으로 진입하여 방문객을 맞는 사랑채 같은 건물을 만나도록 되어있었으며, 그 뒤로 얼핏 보이는 풍경과 주거민의 모습을 통해 예상컨데 사랑채 뒤로는 넓고 은밀한 그들의 거주공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문간채의 벽에 건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어 역시 예사 건물은 아니었군, 하고 생각했다. 득이 영어로 적힌 글을 해석해주기를, 이 건물은 19세기 이후 다수의 이민자들이 정착한 본 거리에 건축된 건물들 중 가장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는 건물이라고 하였다. 당시 이곳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대부분 보석 관련 매매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흔적은 현재에도 남아 유명한 보석상점거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간채를 지나 들어간 안마당은 고요하였으며, 좌우 건물로 인해 형성된 높은 벽과 문간채, 사랑채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동시에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타일로 포장된 안마당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사랑채 전면 좌우에 심어져 있어 공허한 느낌을 지워버렸고 사랑채 너머로 얼핏 보이는 은밀한 사적 공간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문칸 하나만을 건너면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가득한 먼지 속의 거리였건만, 이곳은 그곳과는 완전히 단절된 다른 세상 같이 느껴졌다. 고요한 가운데 그들이 키우는 이름 모를 새 소리만 목청 높게 울렸다. 


 19세기 이곳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우리나라와 닮은 부분이 참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민자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까지 비슷할 줄은 몰랐다. 낯선 기후, 낯선 인종, 낯선 언어, 모든 것이 생소했을 이곳에 정착해야만 했던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어떠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들은 어떻게 보석매매업에 종사하게 되었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우리가 쉬이 얻을 수 있는 역사의 단편에는 그들의 삶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개인의 삶이 모여 거리를 만들고, 역사의 부분을 채워 넣었지만 그곳에 개인의 기억은 없다. 미시사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있다. 


 다시 이름 모를 새가 빼액 울어댈 즈음, 우린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경적소리가 넘쳐대는 문 밖의 공간으로 다시 몸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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