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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2. 2015

12시간 버스 여정의 시작이었다

150521(4) : 베트남 하노이-후에, 슬리핑 버스 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우리는 약 한 시간 반 가량을 로비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막간을 이용해 하스스톤을 몇 판 했고, 득은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했다. 꽤나 눈치가 보이는 시간이었으나 밖은 엷은 빗줄기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다섯 시 반 즈음하여 밖에 택시가 준비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덩치가 큰 빨간 티를 입은 현지인이 우리를 안내했다. 택시 안에는 이미 두 명의 외국인이 타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들이 네덜란드에서 온 여행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키 작은 흑인 여성과 키 큰 백인 남성의 조합은 왠지 모르게 어울렸다. 우리의 배낭을 택시 트렁크에 구겨 넣은 뒤 약 십 분가량을 달려 시내 남쪽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과 행선지를 갖고 모여있었다. 택시를 태워준 멕시칸 같은 외모의 현지인은 우리를 어느 버스 앞에 내려놓은 뒤 별 다른 안내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버스에 후에라고 적혀있었기에 우리는 그 앞에서 서성였다. 함께 온 홀란드인 둘도 같은 목적지였기에 우리 근처에서 함께 어물거렸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현지인들이 버스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짐을 버스 아랫칸에 넣은 뒤에도 그들은 우리를 태워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이미 해는 보이지 않은지 오래였지만, 저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버스 트렁크에 현지인들이 곡식포대 같은 것들을 몇 차례 더 이겨 넣은 후, 표검사를 거쳐 드디어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사실 우리에게 표는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예약했지만 표는 받지 않았다고 하자 별다른 제지 없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줬다)


 2층으로 구성된 버스는 구조가 특이해 매우 흥미로웠다. 버스의 좌우와 중앙에 좌석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버스의 전체 높이는 일반 버스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각각의 좌석은 무너진 도미노처럼 서로 일정 면적을 겹쳐가며 누워있었는데, 누워있는 좌석을 일으켜 세우니 우리가 벗고 들어간 신발을 넣을 수 있은 작은 수납공간이 있었다. 우리의 다리는 앞사람의 등받이 밑에 설치된 경사 진 서랍 같은 공간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늑한 구성이었다. 적어도 한국의 좌석버스처럼 등받이를 심하게 누인다고 해서 뒷사람에게 눈치를 받으야 할 일은 없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우리는 앞에 앉은 홀란드 인들과 함께 버스를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홀란드인들 역시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우린 서로 생각보다 괜찮은 버스라며 함께 사진을 찍었고,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며 아마 몇 시간 뒤라면 이 웃는 얼굴을 볼 수 없겠지? 하며 웃었다. 득은 우리가 미치는 데 20분이면 충분하다고 고쳐 말했다. 12시간 버스 여정의 시작이었다. 창 밖은 더욱 어두워졌고, 빗방울이 창문을 때려 생긴 길고 가느다란 물방울들이 창가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밤에 어떤 운송수단을 타고 길을 달리는 건, 꽤나 마음이 젖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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