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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2. 2015

수혈하듯 맞고 있는 음악들만이

150521(5) : 베트남 하노이-후에, 후에 가는 길

 어둑해진 창에 비 때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갈 무렵, 시동을 건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층에 몸을 누인 우리는 12시간 걸리는 버스여행의 시작에서 즐거워했다. 하노이의 시내에 인접한 구역의 도로들은 그 사정이 별로 나쁘지 않아 우리는 편안히 창밖의 풍경을 즐기며 좌석에 누워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창 밖의 연속되는 풍경이 점차 도로와 논의 반복으로 지루해질 즈음, 우리는 창 밖을 보며 누워있기를 거부하고 다른 것을 하기로 했다. 득은 핸드폰을 만지고, 나는 여행 중 읽으려 가져간 소설을 꺼내 읽었다. 2층 좌석이 삼열종대로 늘어선 버스 안은 마치 작고 좁은 병동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의자를 세우거나 눕히거나 하여 기대 있었고, 각자의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링거를 맞듯 음악을 들었다. 밤의 병동은 천천히 도로를 미끄러져갔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잠에서 깼다. 시내를 벗어난 뒤의 도로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모로 누워 자던 나는 버스가 커브를 돌며 덜컹거리자 한쪽으로 쓸려갔으며, 이런 순간들마다 종종 잠에서 깨어 희미하게 정신을 차렸다. 


 잠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는 들리는 음악만이 잠과 현실을 구분 짓게 했다. 어느 순간 일어났을 때는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숨결’, 그러나 창 밖에 별은 없었고, 어느 때에는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덜컹이는 버스 안에서 편지를 써야 할 너가 내게는 없었고, 또 한 번은 ‘I wanna be with you’, 또 한 번은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등등, 그런 노래들이 들렸다. 


 성기완의 시가 생각났다. 


 … 어디가 세상이고 어디가 꿈속이죠 모든 것이 꿈인 것 같을 때 세상은 어딨나요 나가시나요 당신 꿈은 들어오시나요 어디 있나요


 간간이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났다. 수혈하듯 맞고 있는 음악들만이 꿈속과 세상을 구분 지어줬다. 정신없이 꿈과 현실 사이를 덜컹거리며 왕래할 때 즈음, 버스가 완전히 멈춰 서고 휴게소 같은 곳에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린 머뭇거리다가 내릴 시간을 놓쳤지만 뒤늦게 내려 급하게 쌀국수를 마시고 다시 올라탈 수 있었다. 


 또다시 꿈과 현실의 경계, 영안실 같은 버스 안과 행복한 듯한 느낌의 꿈속을 오가다 창 밖이 밝아오는 것을 느꼈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우리는 후에에 도착해 있었다. 


후에로 가는 길, 심야의 휴게소. 호퍼가 좋아할 만한 풍경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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