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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3. 2015

자신의 꼬리를 끊고 도망간 물고기

150522(2) : 베트남 후에, 꿈 속과 구글호텔

 밤새 자는 듯 마는 듯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위태한 줄다리기를 하다 마침내 안락한 호텔에 안착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번에는 선명히 기억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냇가에 앉아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 얕게 흐르는 검은 물은 거울처럼 바라보는 나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노니는 주먹만 한 물고기들도 훤히 보이게 했다. 흙빛의 물고기들이 물속을 휘젓는 내 손을 피해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때때로 냇가를 둘러싼 숲에서 나뭇잎이 떨어져 냇물 위로 작은 파문을 만들어냈다. 나는 흙빛의 물고기들을 잡아채려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멀리서 보면 물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일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한 물고기의 꼬리를 드디어 잡았다. 그러나 그 물고기는 마치 도마뱀처럼, 자신의 꼬리를 끊고 멀리 도방 가버리고 말았다. 잘린 꼬리는 내 손에 잡힌 채 발버둥 쳤고, 멀어져가는 작은 물고기의 뒤로 보이는 그의 단면은 마치 여성의 성기처럼 붉고 선명했다. 


 갑자기 장소가 바뀌고, 나는 기억나지 않을 어떤 장소에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대뜸 H가 나타나서 내 옆에 앉아 재잘댔다. 그녀가 떠드는 수다의 내용은 대부분 그의 새 남자친구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얼마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주는지, 그가 어떻게 키스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만져주는지. 


 나는 뭐라 말할 것도, 꺼내놓을 감정도 없어 뭐라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수다를 가만히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수다하는 대상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 누구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다이어리에 생각을 나열하듯 내 옆에 앉아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배설할 뿐이었다. 


 감정 없이 듣던 내 머릿속이 점점 혼란으로 가득 차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임박했을 무렵, 그러니까 내가 제발 좀  그만해, 라고 소리치기 직전, 퍼뜩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시계는 오전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너무도 쉽게 이해가 되어 한숨을 쉰 뒤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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