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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3. 2015

후에는 큰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였다

150522(3) : 베트남 후에, 식당 Sunlight

 깊이 잠들었던 우리는 점심  때쯤 잠에서 깼다. 일단은 배가 고팠다. 대충 씻고 준비를 마친 뒤, 가이드북에 있던 프랑스 요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곳에 가서 고급진 프랑스 요리를 먹기 위해 나갔다. 우리 숙소에서 동측으로 큰 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 직진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찾을 수 없었다. 같은 거리를 계속해서 헤매다 우린 결국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눈에 띄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대충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건물의 간판 자리에 선글라스를 쓴 태양캐릭터가 걸려있는 Sunlight라는 가게에 들어가 앉아 피자와 비프 스테이크를 시키고 기다렸다. 


 후에는 큰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였다. 흐엉강이라는 넓은 강이 도시를 동서로 크게 가로질러가고, 이를 건너는 몇 개의 다리가 남북의 시가지를 이었다. 강의 북쪽에는 19세기 초반 베트남을 통일한 응우옌 왕조의 옛 황궁 유적이 있었고, 그 반경으로 국가에서 관리한 사찰이 흩어져있었다. 고급스러운 호텔과 커다란 건물들도 종종 있었지만,  몇십 분을 걸어 다닌 결과 하노이보다는 오토바이와 소음과 먼지가 눈에 띄게 적은 아늑한 도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강과 옛 황성이 주는 이미지도 강렬하여 전체적인 도시의 이미지는 오래되고 조용하고 서정적인 틀로서 다가왔다. 


 우리는 선라잇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비프 스테이크와 콰트로 치즈피자를 먹으며 오늘의 일정을 조율했다. 비프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이 레스토랑의 스페셜 메뉴였는데, 바나나 잎과 함께 구워냈는지 고기 아래에는 기름이 둘러진 채 약간 익혀진 바나나 잎이 깔려있었고 고기 위에는 향긋한 허브와 구운 양파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바나나 잎은 먹는 것인지 확실치 않아 허브와 고기를 함께 포크로 찍어 먹었다. 양념에 잘 재워진 얇은 고기와 허브의 향이 잘 어울렸다. 고기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씹어 넘기기에 좋았다. 피자는 네 종류의 치즈가 들어갔다는데, 치즈의 풍미보다는 알 수 없는 지릿하고 고소한 향이 강하게 풍겨 났다. 짭조롬하고 강렬한 이 맛이 도무지 낯설지 않아 이 맛을 대체 어디서 느꼈던 것인지를 오래 고민한 끝에, 그럴싸한 대상을 찾아냈다. 내가 비슷한 맛이라고 결정한 것은 바로 우렁된장국이었다. 젓갈로 맛을 낸, 매우 질펀한 우렁된장국의 맛과 향이 콰트로 치즈피자에서 나오고 있었다. 함께 시킨 음료와 함께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우리는 지에우데국사 Dieu De National Pagoda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후에의 더위는 너무나 강력하여 우리를 바로 오랜 세월 국가에서 관리했다는 그 사찰로 향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우린 다시 우리의 숙소로 먼저 돌아가 잠깐 쉬었다 나오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잠깐의 휴식을 위해 숙소로 돌아간 것이었으나, 숙소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번엔 죽어있는 바퀴가 아닌, 살아있는 바퀴벌레가 화장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우린 세면대에 놓여있던 유리컵을 다신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그것으로 바퀴를 덮어 일단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바퀴를 유리컵에 가둬놓은 한국에서 온 두 청년은 재판에 바쳐진 바퀴에게 합당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다. 우리의 성역에 들어온 이 무뢰한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아주 짧은 고민 끝에 변기를 통한 무기한 유배로 결정했다. 


 먼저 잡혀있던 바퀴 밑으로 룸에 있던 코팅된 메뉴판 따위를 밀어 넣고 유리컵과 함께 바퀴를 들어 올렸다. 그 다음 공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바퀴를 변기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한국에서 날아온 두 청년은 변기 속 헤엄치는 바퀴에게 온갖 조롱을 날렸다. 분이 풀리고, 바퀴를 멀리 보내기 전에 치약을 뿌린 뒤 물세례를 퍼부었다. 하얗게 거품이 인 물 속에서 바퀴가 물방개처럼 다리를 휘젓고 있었다. 작별인사를 한 뒤 배수 레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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