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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3. 2015

이런 순간은 때때로 기적처럼

150524 : 베트남 후에, 구글 호텔 방 안

 하루가 또 지나고, 밤의 게스트하우스 익숙해진 방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김연수의 소설을 읽다 문득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HUDA맥주를 해피아워 프리비어로 두 병, 방에서 사이공 맥주와 333맥주를 각 한 캔 씩 마셔갈 즈음이었다. 내가 읽던 단편소설 속 주인공은 한 중학교의 여교사로, 자신의 학급에 속해있던 한 결손가정의 아이가 연쇄방화범으로 검거된 사건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김연수가 숱하게 이야기한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떠한 감정을 느끼며 삶을 살아가는지, 그는 어떨 때 불안하고, 어떨 때 행복할지, 우리는 아마 거의 절대로 알 수가 없다는 것. 왜 자신이 맡은 학급의 성실했던 한 아이가 노숙자 세명이 잠든 폐가에 불을 질렀는지, 왜 나의 이혼한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나의 친모를 찾아 통영까지 내려갔는지, 왜 나의 누나는 깊은 새벽 위스키를 마시며 안산의 한 터널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하는지, 깊은 밤 기린의 말을 듣는 태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한국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두 시간의 시차가 있는 나라의 후에라는 작은 도시의 작은 호텔 방 안에서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를 거쳐간 사람들은, 지금 나와 관계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은, 나를 진정으로 이해했을까? 내가 얼마나 스스로와 타인에게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미워했고, 내가 때때로 얼마나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며, 그 신뢰하는 만큼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의 이유를 내가 도통 모른다는 사실까지, 내 주변을 둘러싼 그 모든 세상은 알고나 있을까. 덧붙여 내가 때때로 얼마나 울고 싶어 지는지. 그리고 그럴 수 없는 내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지는지까지.


 벚꽃이 경주 남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어느 봄날, 한 소설의 주인공은 남산에 자리한 폐사지들의 목이 잘린 석불들을 보며 처음 그녀와 태국에서 보았던 폐사지를 떠올렸다. 그 폐사지에 뿌리내린 한 나무를 떠올리면 그와 그녀는 세상이 마치 근사한 곳인 것처럼 생각된다고 했다. 불두 하나를 뿌리로 감싸 안으며 자라난 오래된 고목 한 그루. 그 고목을 생각하면, 세상이 근사한 곳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우리가 세상을,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아무도 그 아이의 장례식에 찾아오질 않았다, 그 아이는 차라리 교도소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그 강물을 바라볼 수 없던 이유는 그곳에 나 대신 평범히 자라나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을 꾸려나갔을 한 아이가 그곳에서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터널에 샹송을 부르고 외국여행을 하고 대학공부를 하고 싶어 했던 우리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순간은 때때로 기적처럼 실제로도 우리 삶에 찾아오곤 한다. 


 누군가와 같은 장면을 생각하며 세상을 근사한 곳으로 여기는 모습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렇게 여길 수 있는 순간은 또 그리 많지 않다.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의 점들을 알아가고 싶다. 세상이 근사하게 느껴지는, 삶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에 서있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 그 사람을 깊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모 소설가의 말에 의문을 갖게 된다. 내가 이런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아무리 이야기한다고 한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까? 오히려 병신 같고 못된 머저리로 생각하지 않을까? 실제로도 내가 이런 속내를 털어놓은 사람들은 몇 있었지만, 그들이 항상 나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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