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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16. 2015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150602 : 캄보디아 프놈펜, 씨엡립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로비로 내려가 차 시간을 기다렸다. 씨엠립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12시라고 했다. 우린 어제 각 6달러 씩, 총 12달러를 미리 계산해 둔 상태였다. 로비에 앉아 아이스쵸코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생각 외로 우리가 묵었던 오케이게스트하우스의 로비는 좋은 장소였다. 캐노피로 덮인 아늑한 공간에 화분 속의 관목들이 수벽을 이루며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팬이 돌돌돌 돌아가서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했다. 넓은 테이블 주위에는 종종 관광객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홀로 랩탑을 앞에 두고 작업을 하거나 했다. 수벽 사이로 엷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앉은 곳 뒤를 보니 힌두교의 매력덩어리 신, 가네샤의 석상이 있었다. 엄빠의 불화 사이에서 목을 잃고 주변에 있던 머리를 붙였는데 그게 코끼리였다고 했나? 아무튼 이 나라의 국민들은 대부분 소승불교를 믿지만 관습과 풍습 등에서는 깊숙이 힌두교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런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가네샤의 허벅지에 무언가 이상한 게 돋아나 있었다. 아, 가네샤는 성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신이었나?


 11시 30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에 우리를 버스로 안내해 줄 툭툭 기사가 왔다.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는데, 생각보다 하오의 프놈펜 거리는 너무나도 번잡했다. 우리는 그동안 걸어 다녀서 체감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체증이 우릴 덮쳤다. 툭툭 기사 아저씨는 길을 뚫지 못하고 계속 지체하다가 결국 길을 돌려 큰길을 돌아 들어갔다. 


 이전까지 탔던 버스에 비하면 약간 시골 시외버스 같은 냄새가 나는 버스에 탑승한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좌석에 앉아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 득은 맨 뒷자리로, 나는 중간 즈음으로 와서 앉았다. 앉아있는 동안 텔레비전에선 정체모를 캄보디아의 가수가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B급 뮤직비디오에서는 시골 청년 셋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여자들을 꼬시려 갖은 수모를 겪으며 노력하고 있었다. 노래는 후렴구나 브릿지 같은 구성 없이 하나의 구절만 계속 반복되었는데, 나중에는 그 구절들이 마치 무슨 주술사의 주문처럼 들려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뮤직비디오에 좌충우돌 세 청년들의 이야기와 교차로 나오는 가수의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총 출동하여 두 손을 펴고 머리 위에 모아 흔들어대고 있었다. 주변을 꽉 채운 캄보디아인들은 그 뮤비를 보면서 연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진짜 못 참겠다 싶을 즈음에, 갑자기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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