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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4. 2015

무너진 돌 무더기와 그것들을 덮어가는 나무와 풀들

150603(5)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코끼리 테라스와 바푸욘

 바욘 사원을 둘러본 뒤 우리는 정처 없이 걷다가 앙코르 톰의 영역 안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앙코르 톰의 바욘 사원 서편에는 코끼리 테라스로부터 이어지는 과거 왕국의 옛 왕궁인 바푸욘 Bapuyon이 있었다. 코끼리 테라스에서는 더 이상 어느 건축물도 볼 수 없었다. 수 많은 코끼리의 부조로 이루어진 기단만이 코끼리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펼쳐진 소들이 풀을 뜯는 목초지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었다.  300미터쯤 펼쳐진 코끼리 테라스는 길고도 넓었다. 테라스를 지나 더 서편으로 걸으니 왕으로 향하는 길고 긴 다리가 나오고 그 끝에 바푸욘이 있었다. 바 푸욘은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올라가며 높은 계단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었다.


 이 넓은 유적이 과거 백만 명이 살았던 팔백 년 전의 유적이라는 것을 온전히 체감하려면 어떤 경험치와 상상력이 필요한 걸까. 왕과 신과 민초들이 살았던 높고 낮고 넓은 돌 무더기와 평원들과 초목들을 보며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일종의 폐허미였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드문드문 이곳을 방문하는 객들의 경탄과 침묵이 그들의 죽은 숨을 만질 뿐이었다. 무너진 돌 무더기와 그것들을 덮어가는 나무와 풀들이 주는 멸망한 문명의 고독한 아름다움이 유적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코끼리 테라스를 거쳐 바푸욘까지 둘러보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앙코르 톰의 남문으로 나가 앙코르왓의 서편에 늘어선 천막들 중 하나로 들어갔다. 천막 바깥에서는 조류와 생선들이 연기에 구워지고 있는 낮고 어두운 집이었다. 우린 그곳에서 각각 밥에 곁들인 소고기 볶음과 소고기 볶음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앙코르비어를 캔으로 마셨다. 앙코르왓의 전경을 보며 마시는 앙코르비어는 다른 의미로 맛이 있었다.  가게의  주인아주머니 내외는 참 친절한 분들이었다. 우리에게 연신 미소를 보내주셨으며, 얼음물을 무료로 내어주셨고, 가족들이 함께 먹던 수박을 내게도 권해주셨다. 우리는 밥과 시원한 물과 수박을 먹고 그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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