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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4. 2015

그 좁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 나는

150603(4)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바욘사원 중앙

 바욘 사원의 중심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굴들을 거쳐 계속해서 올라가니 어느새 바욘 사원의 중심까지 올 수 있었다. 그곳의 정 중앙에 올랐을 때, 내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내 아래에 있었다. 신성이란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 위에 있는 것. 그곳에서 오롯이 혼자 독보적으로 존재하는 것.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그 중앙으로 통하는 통로를 통해 우리는 예의를 갖추고 들어갔다. 모자와 신발을 벗고, 차가운 돌의 감촉을 발로 느끼며 들어선 그곳은 어둡고 고요하고 향 냄새가 났다. 네 방향 모두 같은 출입구가 있는 그 중앙에는 작은 불상 하나가 모셔져 있었다. 그 앞에 많은 향이 피워져 있었고, 참배객은 많지 않았다.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신성을 나타내는 건축물들이란, 대개 높고 넓고 밝고 웅장하기 마련이다. 판테온이 그렇고 수 많은 고딕 성당들이 그렇다.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설파하기 위해서는 수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건축적 체감이 더욱 유효하다는 것을 서구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신은 그런 밝고 높은 세상에 살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내가 바욘 사원에서 느낀 신성이란 아주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거대한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것이라는 숭고의 관점에서는 같은 것일 수 있으나, 내가 본 것은 내 안에 숨겨진 신성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서구 사람들이 더 높고 더 넓고 더 밝은 공간을 찾아 신을 만나 위로를 받을 때, 크메르인들은 신을 찾아 오르는 이 여정을 통해 수 많은 얼굴들을 만나고, 그 얼굴들 끝에 결국 맞이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좁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 나는 작은 불상 대신 내 내면을 보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깊숙한 곳에 숨겨진 나 자신. 우린 높은 곳에 올라와서 그 곳을 마주했지만 그것은 땅을 파고 들어간 것과  다름없었다. 수 많은 얼굴들과 마주하고, 그 얼굴들이 내가 사랑한 얼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을 하며, 주마등처럼 나의 인생, 내 인연들을 떠올리며 땀 흘려 올라간 그 곳엔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둡고 습한 그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일종의 위로를 얻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네 방향의 좁은 통로를 손을 더듬어가며 걷는 동안, 시큼한 오줌 냄새가 나는 통로의 한 문턱에 앉아 조용히 작은 불상 앞에 타오르는 향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분명 내 인생의 어느 시점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 얼굴, 내가 결코 볼 수 없는 내 얼굴. 비 내리는 어두운 호숫가에서 우비를 입고 한 여자를 내려다보는 내 얼굴과, 어느 날 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던 내 얼굴, 내가 버린 화장품 병을 원망하던 내 얼굴,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든 내 얼굴들을 그 어두운 동굴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얼굴들과 겹쳐진 지금의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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