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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4. 2015

모두 하나의 불상과 다름이 없었다.

150604(3)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사원 꼭대기

 사원의 서쪽이 정문이었지만, 정보에 의하면 북쪽 회랑을 걸어들어가 북측 문으로 들어가서 사원의 중앙까지 둘러본 뒤 남문으로 나오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우린 그렇게 하기로 했다. 


 북측 회랑으로 가는 도중 홀로 떨어진 원숭이 한 마리를 만났다. 머리가 잘린 사자상을 보았다. 원숭이는 길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원숭이를 지나 회랑을 걸었다. 회랑에는 여러 사람들이 엉켜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쟁 상황을 묘사한 그림인  듯했다. 코끼리들이 그 그림에 등장해 흥미로웠다. 코끼리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사용된 것도 역사적 사실로서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북측의 회랑에는 적도의 한껏 기운 햇빛이 낮게 스며들었다. 회랑의 기둥들과 만난 햇빛은 길게 찢어져 벽에 가 닿았다. 벽화들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중앙으로 가는 통로에는 목이 잘린 불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명상하는 머리 없는 사람들.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자기 자신을 지우는 과정을 말하니, 머리 없는 그 불상들은 아마 진정으로 성불했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무아의 세계에는 피아의 경계도 없겠지. 목이 잘린 그 불상들은 그렇게 본다면 모두 하나의 불상과 다름이 없었다. 


 중앙탑에 오르기 위해서는 출입증을 받아 순서를 기다려 올라가야 했다. 관람시간은 다섯 시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15분 전이었다. 다행히 줄은 길지 않았다. 높은 경사를 따라 탑을 올라가니 앙코르왓의 전망이 한눈에 담겼다. 정말 파랗다고밖에 할 수 없는 하늘에 시간이 담긴 탑이 솟아 있고, 내려다보이는 유적 주변에는 푸르다고밖에 할 수 없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 푸른 숲에서 파란 하늘로 종종 새들이 날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탑에는 수 많은 불상들이 부조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탑의 층마다 일정한 질서를 통해 작은 마애불들이 늘어서 있었다. 앙코르왓을 지으며 마지막 돌을 올려놓았을 어떤 일꾼을 상상해보았다. 그 일꾼과, 이 앙코르왓의 건설을 지시한 왕 중 누가 진정 이 유적에 깊이 배어있을까? 어릴 적 가 보았던 만리장성에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피로 성돌을 나른 인부들과 황제 중 누가 만리장성의 영혼이 되었을까? 파란 하늘에 또 새가 날았다. 사위는 적요로 가득했다. 


 다섯 시가 지나자 관계자들이 퇴장해달라며 관광객들을 몰았다. 우리 역시 곧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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