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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6

그 붉은 눈의 주변은 온통 눈부신 황금빛으로

150605(3)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입구에서 앙코르왓 서문까지 빠르게 달렸다. 일출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 어젯밤이 생각났다. 너른 해자에 새벽 여명이 반사되어 엷게 빛났다. 


 서문 입구에 자전거를 주차해놓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서쪽에서 진입하므로 동쪽에서 뜨는 해는 앙코르왓 너머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올 것이다. 때문에 드넓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도 앙코르왓의 일출은 아주 유명했다. 다만 이곳은 적도고, 지금은 여름을 향해가는 계절이므로 정확히 동쪽이 아닌 동북쪽에서 해가 뜰 것이다. 


 다리를 건너 정문을 지나가니 연못가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신도 난간에 걸터앉아 있기도 하고(이러면 안 된다), 주변에 놓인 돌덩이나 계단 소맷돌에 앉아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못가의 잔디밭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일출이 시작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보랏빛 여명으로 물든 유적지의 풍경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웠다. 한 인도 여성이 하늘하늘한 하얀색 긴 스커트를 입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낮은 빛이 스커트를 관통하여 다리가 훤히 비쳐 보였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런 광경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서서히 해의 이마가 보였다. 그 붉은 얼굴이 천천히 떠오르자 하늘이 여러 빛깔로 물들었다. 저 멀리는 아직 흑청, 조금 멀리는 쪽빛, 그 바로 옆으로는 창백한 하늘빛, 조금 가까이는 자줏빛과 보랏빛, 그리고 그 붉은 눈의 주변은 온통 눈부신 황금빛으로, 세상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연못의 수면에는 역광을 받은 유적이 그 실루엣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물의 표면에 연잎들이 부유했다. 그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며 고요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마치 불 꺼진 영화관에서 오직 스크린만을 침묵 속에 바라보는 군중들처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하나만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있었다. 


 난 그런 광경들이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영화관에서도 종종 주위를 둘러보며 한곳에 집중하는 군중들의 얼굴이 스크린 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곤 하는 나는, 지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 이름도 모를 당신들을 사랑하는 데에는 고작 한 순간의 일출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빛이면 충분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곁에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내 마음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 머무니 그것조차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늘이 더 밝아오고 새벽 여명은 이제 맑은 하늘빛으로 바뀌었다. 우린 조금 더 잔디밭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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