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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7. 2015

고개를 숙이고 후루룩 마시는 쌀국수의 맛은

150520(4) : 베트남 하노이, 어딘가의 길바닥

 성당을 떠나온 우리는 어제 밤거리에서 보았던 고기구이를 먹고 싶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기에,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약간 쉰 뒤에 나와서 그 가게를 찾아가기로 했다. 베트남의 골목길은 일정한 특징이 없이 비슷한 가게들의 연속으로 이어져있어 넓다거나 좁다거나 광장에 있다거나 하는 식의 인식범위 내에서만 반복되었다. 어느 곳을 걸어도 더웠고, 어느 곳을 지나도 끈적했다. 종종 가게 앞에는 인도까지 주차된 오토바이가 있어 멀리 차도로 돌아 지나가야 했고, 가게의 차양 앞에 설치된 호스에서는 미량의 물이 분무되어 우리 몸을 더욱 치덕하게 만들었다. 


 넓은 사거리를 지나는데, 건너편 길 모퉁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놓인 낮은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길을 건너가서 보니 그들이 먹고 있던 것은 쌀국수였고, 먹고 있던 그들은 모두 현지인이었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눈을 마주쳤고, 저녁으로 기약해둔 메뉴가 있었음에도 누군가가 이거 먹고  갈래?라고 말하자마자 다른 한 명이 동의했다. 우리는 퉁명스러운 주인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다른 현지인들과 함께 인도 한복판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음식값은 두 그릇에 5만 동이었다. 매우 저렴했으며, 옆에 앉은 유창한 영어실력의 현지인에게 물어본 결과 그 가격은 현지인들이 지불하는 가격과 같은 것이었다. 퉁명스러운 아줌마가 아이스티를 함께 사 마실 것을 권유했으나 거절하였고, 기다림 끝에 나온 음식은 매우 훌륭했다. 


 오래 우려낸 것처럼 보이는 맑은 고기 국물에 하얗고 야들야들한 쌀국수 면이 담겨져 있었다. 위에는 차슈처럼 생긴 돼지고기가 실파와 기타 채소들과 함께 적당히 얹어져 있었다. 국물 간은 적절했으며, 기름기도 느끼하지 않게 육수의 향을 온전히 담아 혀끝에 전해주었다. 고개를 숙이고 후루룩 마시는 쌀국수의 맛은 한국의 고급 베트남 음식점에 먹는 그 맛보다 더 훌륭한 것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묘한 향이 함께 입속에서 천천히 퍼져나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호불호가 갈린다던 고수향이었던 것 같다. 득은 국물을 한입 크게 마시더니, 한꺼번에 마시면 약간 불호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향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어느 쪽이던 강한 호로, 세상의 모든 향신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것이 없는 음식이었다. 후반부에는 칠리소스를 약간 추가해서 먹었는데, 얼큰하고 매콤한 것이 땀을 뻘벌 흘리게 하기 충분했다. 


 뜻밖의 쌀국수를 즐기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가 씻고 누워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거리의 쌀국수가 레스토랑의 그것보다 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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