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개최되어야 하는 마땅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
광장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
두 번째,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광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인 셈이다.
광장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기도 고대 그리스에는 수 십 개의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이를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른다. 마을 언덕 위에 튼튼한 요새를 쌓고 신전을 세운 후 도시를 형성하였다. 각 도시들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모일 수 있는 장소였던 광장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고라(agora)다.
아고라에선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직접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정치가 행해졌다. 민회를 열어 의견을 공유하고, 중요한 일을 논의하며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했다. 물론,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명확한 정치체제이기도 했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외국인, 부녀자, 미성년자, 노예 등은 '아고라'에 참석하지 못했다. 불평등에 가까웠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역사는 과오와 실수를 되풀이하면서도 이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법과 제도는 더욱 많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발전을 거듭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해갔다. (물론, 전후관계를 바꾸어도 좋다.)
법과 제도의 발전,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결국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담론이 형성되기 위해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생존하기 위해 숨 쉴 공간을 필요로 한다[N.A.A.C.P v. Button, 371 U.S. 415, 433(1963)]'라는 말처럼 개방된 민주사회에서 거리, 공원, 보도, 그리고 광장과 같은 장소들은 공적 논의와 정치적 과정을 위한 중요한 시설로 일컬어진다.
이른바, 공적광장이론이다. 미연대법원 판례를 통하여 확립된 이론으로써, 표현의 자유(혹은 시민행동)는 다양한 공적 장소(거리, 공원, 광장 등)에서 표현행위를 규제받거나 엄격 심사를 받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제1조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으로써, 시민들이 광장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고라(agora)', '공적 광장'을 뽑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서울광장을 선택하겠다. 서울광장은 과거, 광장임에도 불구하고 갇힌 공간,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시민들은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선 서울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광장 허가제이다. 기준이 무엇이었든 간에, 광장이라는 공간을 지자체의 재량에 맡겨 허가신청을 받는 것은 옳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서울광장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었고,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 광장의 신고제 전환을 위한 서명을 진행하였다.
2013년, 서울시는 서울광장조례를 개정함으로써 서울광장 사용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였다. 누구에게 '목적'을 의심받고, 재량에 따라 사용을 허가받아야만 발을 들일 수 있는 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시민 스스로 자신의 주권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덕분에 서울광장 조례는 국민주권주의를 실현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조례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랬던 서울광장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아니, 후퇴하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서울광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시는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낸 서울광장 사용 신청에 대해 조건부 허가를 냈다. 하루만 열되 과도한 신체노출 등의 행위를 제한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심지어 이 조건부 허가를 위해 서울시에서는 열린광장시민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기도 했다.(이는 2019년, 서울 인권위원회에서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만 심의를 거치는 것이 차별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울광장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다. 서울광장 조례에 따라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선 사용신고서를 제출했고, 서울시는 48시간 이내에 이에 대한 수리통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신고 접수가 아닌 허가&불허가를 위한 안건 논의를 시행했다. 시민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서울시가 몸소 시민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11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적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사용해야만 하는 이 공간에서 특정 누군가는 차별을 받고 있다.
원래 6일이었던 이 축제는 서울시에 의해 하루로 제한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장을 사용하는 기한에 대해선 서울광장 조례에 정해진 내용이 없다. 무엇을 근거로 하는 제한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울시는 당장 태도를 바꾸어 퀴어축제에 대해 조건부 허가가 아닌 신고 접수를 하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에서 퀴어만이 혐오적인 시선과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릇된 결정임에 틀림없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