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게이라고 해도

by Gorae

방콕에 돌아온 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더니 촘푸에게 메시지가 왔다. 자신의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디스코에 가자는 것이다. 디스코가 뭐냐면 클럽이다. 태국 사람들은 클럽을 디스코라 부른다. 나는 클럽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늘 만나던 차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잭의 바에서 맥주나 마시자고 답을 보냈다. 그랬더니 촘푸는 땡모가 방콕에 돌아왔으니 컴백 파티 겸 자신의 생일파티 겸 해서 꼭 디스코에 가야 한다고 답했다. 생일파티? 촘푸의 생일은 지난 이월이었는데? 그때 촘푸가 꼭 오라고 했지만 설이라 한국에 다녀온다고 못 간 것이 기억이 나서 ‘너 지난 이월에 친구들이랑 생일파티한 것 같은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땐 네가 오지 않았으니 너를 위해 특별히 생일파티를 한 번 더 하는 거라고 답장이 왔다. 생일이 반년이나 지난 지금 나를 위해 자신의 생일 파티를 한 번 더 하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뭐 그냥 디스코에 가고 싶다는 뜻이겠지. 뭐 어쨌거나 태국 친구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다. 그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사랑해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클럽에 가는 건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사십 년이 조금 넘은 내 인생에서 춤에 열정이 생겨서 열심히 춤을 춘 기간은 몇 해 전 딱 한 달 정도다. 방콕에 자주 놀러 오는 오래된 친구와 팔람 까오라는 동네에 있는 한 로컬 클럽에 들러서 태국 사람들과 어울려 재밌게 논 이후로 정말 난데없이 춤추는 게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그때도 어린 나이는 아니었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한 달 동안 태국 친구들과 어울려 미친 듯이 춤을 추러 다녔었다. 정말이지 그때 내가 춘 춤들을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숨이 턱 막히고 소름이 돋는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그때 내가 춘 춤들을 영상으로 찍어서 소유하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찾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것도 딱 한 달 정도고 나는 기본적으로 클럽이 싫다. 지나치게 어둡고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사람이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서 술을 마셔야 한다. 앉아서 술 마시는 것도 피곤한데 서서 술을 마셔야 한다니. 그래서 나에게 클럽에 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만 촘푸와 얼굴 한 번 보자고 말만 하고 막상 촘푸가 일을 마친 후 연락을 하면 밤늦게 나가는 것이 피곤해서 담에 보자고 한 것이 벌써 여러 번이라 이번에도 미루기가 미안했다. 그리고 촘푸의 친구들 대부분이 착하고 재밌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클럽들이 몰려있는 알씨에이라는 거리로 가 촘푸와 촘푸와 함께 호텔 바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 'route66'라는 클럽으로 갔다.


방콕 클럽의 좋은 점은 인종이나 국적, 나이에 관계없이 그곳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방콕의 유흥업소들도 주 고객이 되는 연령층이 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주 고객층인 유흥업소와 태국인들이 주 고객층인 유흥업소들도 따로 있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젊은 친구들이 가는 유흥업소와 나이 든 사람들이 가는 유흥업소가 완벽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친구들이 주로 가는 유흥업소에 나이 든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입장 제지를 당하거나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


아무튼 그날은 오랜만에 촘푸와 친구들을 만나 위스키도 몇 잔 마시고 음악도 들으며 아주 신나게 놀았다. 그날 옆 테이블에도 우리처럼 여럿이서 클럽에 온 그룹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아주 유쾌해서 우리 그룹과 어울려 함께 신나게 놀았다. 어깨동무도 하고 서로 술을 따라주기도 하고.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아주 재밌어서 그 친구와 태국어와 영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섞어가며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 요즘 방콕의 바나 클럽에서는 한국 아이돌들의 노래를 자주 틀어주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한국 노래들을 더 잘 알더라. 성격 좋은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다가 우리 그룹과 옆 테이블의 그룹 다 함께 이차를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촘푸가 나를 불렀다. 자기를 따라오란다. 클럽 입구까지 촘푸를 따라갔더니 촘푸는 다짜고짜 네 옆에 있는 남자애 게이라고 소리를 쳤다. 그래서 나는 방콕에서 게이를 보는 게 뭔 대수인가 싶어 ‘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했는데 촘푸는 계속 화가 난 목소리로 나에게 게이냐고 물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촘푸의 물음에 어리둥절해 “나는 게이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촘푸가 그러면 자기에게 키스를 해보라고 한다.


뭐라고?


내가 망설이고 있으니 촘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디스 맨 이즈 게이!! 게이!!! 히 이즈 게이!!!” 촘푸가 큰 소리로 외치니 클럽 안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들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촘푸의 입을 틀어막았는데 촘푸는 나를 뿌리치고 계속해서 큰 소리를 질러댔다. 할 수 없이 촘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촘푸와 친하게 지냈는데 차마 입에 키스를 하지는 못하겠더라. 사실 볼에 입을 맞추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볼에라도 입을 맞추니 촘푸는 분이 조금 풀린 듯했다. 아니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태국 여자들 질투가 심하다는 건 익히 들었는데 촘푸가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사실 촘푸가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해서 그런 것도 아닐 거다. 그저 자신에게 주목을 하지 않고 다른 이와 신나게 떠들고 있으니 그게 싫었던 거겠지. 여자들과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질투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태국 라이프. 어지럽다, 어지러워.


한 바탕 소동으로 그 일을 마무리한 후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만일 내가 정말로 게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왜 촘푸가 나를 가리키며 게이라고 소리칠 때 한국사람들이 그곳에 있을까 봐 무서워했던 걸까?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먹고살기 위해 프리랜서로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는데 그중에는 만화 칼럼을 쓰는 일도 있었다. 그때 알게 된 만화가들이나 편집자들 중에는 동성애자들이 몇 있었다. 내가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동성애자를 만나본 기억은 영화 두 편을 동시 상영하던 극장에 갔다가 나에게 스멀스멀 다가오던 어떤 청년을 봤던 게 유일했는데, 그때 만화 칼럼을 쓰면서 세상에는 이성보다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동성애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던 것이다. 자신들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리고 나 역시 게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이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늘 웃고 다녔다. 그게 사람들이 나를 게이 같다고 부른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몹시 화가 났고 무서웠다. 뭐가 무서웠냐면 이러다 그들의 말처럼 내가 정말로 게이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무지하게도 그때는 동성애를 전염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 당시에도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나 또한 나라는 존재를 숨기고 살아가야 할까 봐.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을 만나도 잘 웃지 않고 인생사는 것이 참 쉽다고 생각하며 오만한 표정을 짓고 다니니 아무도 나를 게이 같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는 나 역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의 말들을 자주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동성애자가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지난 몇 년 간 태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만약에 내가 뒤늦게 나의 성적 취향을 깨달아 동성애자가 된다고 해도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숭고한 삶은 그런 일로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만일 내가 게이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우습게 느껴질 만큼 태국에서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동성애자들과 성전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태국에서는 어릴 적 내가 그렇게 혐오하고 무서워했던 그들이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고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태국에서 그들은 숨지 않는다. 숨을 필요가 없다. 굳이 숨지 않아도 사회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앞으로도 계속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거고 나 또한 동성애자들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태국에서 생활해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한국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 그들을 혐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태국, 나에게 많은 행복과 깨달음을 준 이 나라에서 오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는 이제 남은 생에서 그들을 향해 혐오의 눈빛을 보내거나 혐오의 말을 내뱉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은 참 쉽지만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에 동의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진보적인 척, 정의로운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각자의 숭고한 삶이 다른 이들의 부당한 혐오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언제든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적 취향이나 국적, 피부 색깔 그리고 성별 때문에 무지한 이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 그것으로 인해 좌절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잣대 때문에 아름다운 우리의 삶을 망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인간의 삶이 숭고한 것은 우리와 다른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포용해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너무 쉬운 혐오의 말들로 우리 삶의 숭고함을 포기하지 말자. 촘푸가 나를 게이라고 했을 때 한국사람들이 듣고 오해할까 봐 걱정했던 이유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거다. 지금 이 시간에도 편견과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을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 모두는 각자 무언가를 사랑하며 산다. 당신의 사랑이 아름답듯 태국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 역시 그렇고 나의 사랑이 아름답듯 그들의 사랑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보고 믿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의심이 너무도 중요하다. 태국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이제 게이가 되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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