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참 다양한 음식들이 있지만 내가 편안하게 자주 먹는 태국 음식 중에는 태국식 죽인 쪽이 있다. 쪽은 나의 태국 사이에 늘 위안을 주던 음식이었다. 더운 나라에 살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가끔씩 장염에 걸리기 마련인데, 장염에 걸렸을 때에도 그리고 해장을 할 때에도 나의 속을 달래주던 음식이 바로 쪽이다. 내가 쪽을 처음 먹어본 건 태국 북부 이 싼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콘캔을 여행할 때였다. 그곳에서 만난 태국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신 뒤 저녁 늦게 일어나 해장할 거리를 찾다가 쪽을 파는 노점을 만났는데 그 노점에서 먹었던 쪽 한 그릇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거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내주신 그 쪽을 먹는 순간 속이 따뜻해지면서 숙취뿐만 아니라 숙취와 함께 찾아왔던 우울함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쪽을 처음 먹었던 그 순간의 마음과 그 노점의 풍경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 후 콘캔에 머무는 동안 그 노점에 다시 가기 위해 아무리 찾아도 그 노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노점 할머니는 나의 해장을 도와주기 위해 잠시 나타난 쪽의 요정이었던 걸까? 아무튼 태국에는 정말 많은 요정들이 산다.
그 노점을 다시 찾을 순 없었지만 그날 쪽을 먹은 경험이 너무 인상 깊어서 쪽을 먹을 수 있는 다른 곳을 열심히 찾다가 콘캔의 아침 시장에서 쪽을 파는 노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방인이라곤 나 밖에 없는 그 로컬 시장에서 방콕 사람들보다 더 투박하고 순박한 콘캔 사람들 옆에 앉아 쪽을 먹었던 것 역시 참으로 멋진 경험이었다. 콘캔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아침 시장의 쪽 노점으로 가서 쪽을 먹었는데 어떤 날에는 농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소를 끌고 와서 노점 옆에 세워둔 뒤 내 옆에 앉아서 쪽을 먹은 일도 있었다. 내가 쪽을 먹는 동안 바로 옆에 있는 소와 자꾸만 눈이 마주쳤는데 소가 그 크고 긴 혓바닥을 내밀어 금세라도 내 쪽을 다 뺏어먹을 것만 같아서 너무 불편했다. 그래도 나는 끝끝내 그릇 가득 담긴 쪽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에게 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소에게 이겨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태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었을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방콕으로 돌아온 뒤에는 람부뜨리 끝자락에 있는 노점에서 쪽을 파는 것을 발견하고 카오산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면 꼭 그곳에 들러 쪽을 사 먹었다. 그 후 실롬과 사톤에도 맛있는 쪽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도 종종 들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동안은 쪽을 파는 식당이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들어가 쪽을 사 먹었던 것 같다.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 휴가를 나와서 먹는 어머니의 밥에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다 보니 음식이라는 것이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때가 있다. 예전에는 나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을 때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시켜서 먹곤 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싶을 때면 따끈한 쪽 한 그릇을 먹으러 간다. 예전에는 태국이든 어디든 외국에 있을 때면 음식 때문에 한국이 너무 그리워지곤 했는데 이제는 태국 음식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한국음식이 잘 생각나질 않는다. 특히 방콕에는 한식당이 많아서 쉽게 한식을 접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한식당에 찾아가 한식을 먹는 경우가 드물다. 이제 정말 태국 사람 다 되었나 보다.
쪽은 중국음식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중국음식인 ‘저우(粥)’가 한국에서는 죽이 되고 태국에서는 쪽이 된 것이다. 쪽은 쌀을 갈아서 풀처럼 만든 죽에 돼지고기나 닭고기 완자, 계란과 곱창 같은 것들을 넣은 뒤 튀김과자와 파 그리고 생강 등을 고명으로 곁들여 먹는다. 쪽을 파는 곳들은 주로 새벽이나 아침 장사를 하는 곳이 많은데 태국 사람들이 아침식사나 해장으로 즐겨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쪽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로컬 식당에서는 보통 한 그릇에 사오십 바트 선이다. 한국의 죽 체인식당에서 파는 것의 오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의 죽보다 태국의 쪽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죽을 환자들이나 죽을 먹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먹는 경우가 많지만 태국 사람들에게 쪽은 아주 일상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쪽이 간도 더 세고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른지라 식당을 추천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방콕 여행 중에 쪽을 먹어보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에게는 실롬에 있는 쪽 프린스 ( Jok prince )를 추천한다. 쪽 프린스는 근처에 있는 짜런생 실롬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부여하는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쪽 프린스가 있는 사판 탁신 역 인근은 쪽 프린스 외에도 앞서 언급한 태국식 족발 덮밥 카오 카무를 파는 짜런쌩 실롬과 오리 국수를 파는 쁘라짝, 생강차에 순두부를 넣어 먹는 따오 후어이 남킹을 파는 빠세캅 할아버지의 노점 그리고 한방차를 파는 가게 등이 있어서 내가 아주 좋아하고 자주 가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방콕 여행 중 단지 쪽을 먹기 위해 일부러 실롬까지 갈 필요는 없다. 구글맵으로 숙소 인근을 잘 검색해보면 쪽을 파는 곳이 반드시 한 두 곳 정도는 있을 거다. 한국에서는 동네마다 해장국을 파는 식당이 한 군데 정도는 있는 것처럼 태국에도 동네마다 쪽을 파는 식당이 한두 군데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태국 사람들의 소울푸드인 꾸웨이띠여우나 똠얌꿍, 카오카무 같은 음식들과 함께 태국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담백한 음식, 쪽. 태국여행 중 태국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박한 식생활을 엿보고 싶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쪽을 파는 식당을 한 번 찾아가 보라.
아주 오래전 홍대 인근 옥탑방에 살던 시절에 봄밤에 비가 오는 게 너무 설레 소주를 마시기 위해 냉이된장찌개를 끓였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다. 혼자 먹기가 아까워서 그 당시 만나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날 밤, 봄비와 찌개를 안주 삼아서 소주를 마셨는데 소박했지만 참 낭만적이었고 행복한 밤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와 헤어진 후 그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는 ‘가끔 네가 해줬던 그 찌개가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맛으로 기억되는 연애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만일 내가 사랑하는 방콕과 헤어지게 된다면 방콕은 나에게 쪽과 똠얌의 맛으로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방콕은 나를 어떤 맛으로 떠올릴까? 아, 물론 방콕과 내가 다시 헤어질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