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만 더 살아보기

by Gorae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선배 작가의 부탁으로 티브이 프로그램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 백 명을 돌아가면서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 백 명을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선배는 나에게도 출연 제의를 했다. ‘재능 있는’이라는 형용사와 ‘예술가’라는 명사 모두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거듭 반복되는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라는 타이틀로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은 홍대 인근의 작은 옥탑방이었는데 선배는 내가 사는 집이 여유로운 예술가의 모습을 연출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했다. ‘여유롭다’라는 말과 ‘예술가’라는 말이 나란히 있는 것이 ‘날씬한 돼지’, ‘청렴한 탐관오리’ 같은 말처럼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기왕 선배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주자는 생각으로 누나에게 부탁을 해서 당시 누나가 살던 여의도 인근의 아파트에서 촬영을 했다. 짧은 분량의 촬영이었지만 피피엘이 들어간 의상도 입어야 해서 카메라맨과 선배 작가 그리고 피피엘 광고를 담당하는 광고회사 직원 등이 누나 집으로 와서 촬영을 했는데, 평소에 나름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려니 긴장감에 계속 말을 버벅거려서 짧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이 넘게 촬영을 해야 했다. 내가 자꾸 말을 버벅거리자 촬영을 하러 온 사람들 모두 나를 다정하게 응원해주었는데 그 덕분에 그들과 친해져서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한날은 그날 촬영을 했던 멤버들이 홍대에 모여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어두컴컴한 와인바에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피피엘을 담당했던 광고회사 직원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죽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던 나는 어떤 대답을 하면 그럴듯해 보일까라고 생각하다가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고 아직 그런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제 마지막이 교통사고였으면 좋겠어요.”

“교통사고?”

“네, 굉장히 드라마틱한 엔딩 아닐까요? 매일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달려가는 차들을 보면 속으로 생각하죠. 아, 드디어 오늘인가?”


그날 이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이전에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 말은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 좋을까 자주 생각해보게 되었다.


요즘 나는 후아힌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바닷속에 들어가 처음부터 바다였던 것처럼, 처음부터 후아힌이었던 것처럼 고요하고 행복하게 사라져야지. 일 년 후 오늘 바다를 보며 죽어야지.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자고 이야기하며 살았고 실제로도 요즘 내 삶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내일 당장 죽는 건 좀 무서우니까 일 년 후 오늘 후아힌에 돌아와서 죽어야지. 죽기 전에는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에서 바다를 보면서 맥주를 마셔야지. 끊었던 담배도 한 대 펴야지. 남은 일 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주에 친구 형찬이를 만나 제주의 가을을 보고 나와 이름이 같은 형찬이 형의 식당에도 가야지. 그리고 부모님 태국여행도 시켜드려야지. 그리고 그간에 다녀온 태국의 도시들을 모두 한 번씩 다시 가봐야지. 방콕과 치앙마이 그리고 콘캔과 러이, 치앙 칸, 푸껫과 크라비. 아! 8개월 간 우기가 계속된다는 라용도 가봐야겠다.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베를린도 좀 가고 싶네. 그냥 이 년 더 살까?


몇 해 전 인생이란 게 뭐 이렇게 쉬운 건가 싶을 때가 있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었고 주변에는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십 대 시절 매일 같이 하늘이 노랗던 그 시절은 내 삶이 아니었던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잘못된 투자, 실패한 사업으로 인해 재산을 모두 날리고도 일 억 정도 빚이 생겼었고 그때 죽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싫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빚은 다 갚고 죽자는 생각을 했고 지난 수년 간 정말 열심히 산 결과 올 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내가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환을 하려고 노력하니 나를 담당했던 금융업체에서 적지 않은 액수였던 이자를 모두 탕감해 주어 생각보다 빨리 상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더 열심히 일을 했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 죽어도 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당당하게 내 삶의 마지막 풍경을 생각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요즘은 인생을 쉽게도 어렵게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매일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남은 일 년 동안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거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 년간 쓸 돈 정도는 있다. 그러니 별로 걱정할 게 없는 것이다. 딱 일 년만 더 살 거니까.


만일 일 년 후에도 일 년 더 살고 싶으면 그래도 되는 거지, 뭐. 인생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전에 지칠 수 있고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일 년 후에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면 너무 먼 미래를 계획하며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어진다. 하루하루 잘 살면 그뿐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생겼던 많은 문제들은 내가 지나치게 오래 살 것이라고 믿는데서 오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오늘 당장 죽어도 요절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나이다. 살만큼 살았다는 이야기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어렵게 얻은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이 귀한 선물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수영을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채식 레스토랑이나 태국 북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머물다 카페가 문을 닫을 때쯤 바다로 가 해가 지는 바다 풍경 속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걷는다. 고요하고 성스러운 삶이다. 자기 전에는 내 삶의 마지막 풍경을 생각한다. 후아힌의 바닷속에 잠겨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이 고요해진다. 따뜻해진다. 죽음 후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전생과 후생을 믿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믿는 편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전생에 나는 캄보디아 정글에 집을 짓고 살며 민물고기들을 잡는 어부였을 거야. 그리고 전생에 당신은 나와 어떤 인연이었을까? 그런데 사실 죽음은 그냥 촛불이 꺼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겠지. 애초에 없었던 존재처럼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 일일까. 죽음이 있기에 마음을 어둡게 하는 고통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행복도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늘 안심이 되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너무 먼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딱 일 년만 더. 후아힌의 바다가 될 내 삶의 마지막 풍경을 생각하며 일 년만 더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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