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옷을 벗고

by Gorae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되도록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내가 한 살 때 왼쪽 엄지발톱에 가시가 박혀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 발톱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는데 그 이상한 발톱 모양이 콤플렉스라서 남들에게 그것을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까지도 나는 늘 마른 체형이 콤플렉스라서 더운 여름에도 온몸을 긴 옷으로 꽁꽁 싸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톱 모양에 뭐 그리 대단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나 싶지만 그때는 그게 심각했다. 그리고 이십 대 시절의 그 날씬했던 몸은 다양한 옷들을 예쁘게 소화할 수 있는 축복이었는데 왜 그걸 열등감으로 인식을 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열등감 때문에 온전히 나의 욕망대로 살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반성한다. 그것은 정말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그 누가 아무리 옆에서 뭐라 그래도 더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살아가리라. 요즘에는 매일 슬리퍼를 신을 뿐만 아니라 되도록 옷을 벗고 지내려고 한다.


자유의 나라 태국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살아가는 태국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정말로 다채롭다. 특히나 더운 나라다 보니 신체가 과감하게 노출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데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사는 태국 사람들의 삶이 좋아 보인다. 나는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의 핵심 정서가 열등감이라고 생각한다. ( 서로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고 시기하고 그런 것들이 한국을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을 배출한 원천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를 강요하는 문화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 그런데 태국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열등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편이다. 나 또한 태국에서는 열등감이 많이 없어져서 나이를 먹어가고, 식스팩이 없고, 한 번 부침을 겪어서 마흔이 넘도록 크게 모아둔 자산이 없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 거지 꼭 무언가를 기준에 놓고 성공과 실패를 구분 지어야 하나? 더군다나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우리 어린이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애니메이션 대본을 주로 쓰고 있지만 이십 년 후에는 지독하게 야한 연애소설을 써서 세계 120개국에 판권을 파는 작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나는 매일 쓰고 있고 그것만으로 많은 가능성들이 남아있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얽매여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내 삶에서는 오직 내가 가장 큰 권력자다.


몸 또한 마찬가지다. 잘 가꾸어서 군살 없는 몸은 물론 아름답지만 모든 사람들의 몸이 다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군살이 있으면 군살이 있는 대로 모두 다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정답이 있는 수능 문제처럼 강요하다 보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성형외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질문은 다양한 답들을 부르게 마련이다. 다양한 답들이 오고 가는 사회가 재밌는 사회다. 물론 태국에도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거나 혐오하지 않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내놓은 다양한 답들을 서로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태국 사람들의 모습은 열등감 덩어리였던 내가 열등감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많은 열등감들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나에게 열등감이 사라지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고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웃통을 벗고 지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 몸이 부끄러워서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가서도 내 몸을 가리기 위해 늘 티셔츠를 입곤 했는데 지금은 매일 숙소에 있는 야외수영장에서 한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야외에서 웃통을 벗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웃통을 벗고 선베드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 느끼는 그 여유롭고 자유로운 기분은 결코 다른 걸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내가 머물고 있는 콘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한 뒤 후아힌에 살거나 후아힌을 베케이션 홈으로 쓰는 사람들이라서 하루하루를 아주 느긋하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각자 다양한 삶의 지문을 새겨온 그들과 수영장 선베드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들과 수영복만 입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쩐지 대화가 더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웃통을 벗고 최소한 옷만을 입고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졌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떤 속박에서 벗어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아무리 태국이라고 할지라도 쇼핑몰이나 식당을 갈 때 웃통을 벗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후아힌에도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보이는데 ‘후아힌 노출남’으로 한국사람들의 블로그에 오르고 싶지는 않다. 수영장이나 해변 혹은 로컬들이 사는 동네처럼 웃통을 벗고 있을 수 있는 곳들을 좋아하고 최근에는 그런 곳에서 특별한 영감들을 많이 얻으니 그곳에 머무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상의를 탈의하고 다닐 수 있는 곳들을 ‘웃통 스폿(spot)'이라고 부른다. 아 그리고 어제는 로컬들이 주 고객인 그랜드 야시장 내 마사지샵에서 등 마사지를 받은 후 웃통을 벗은 채로 마사지샵 입구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발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웃통 스폿’이 계속 늘어나서 너무 기쁘다.


치앙마이에 머물 때도 가장 좋아했던 일 중 하나가 친구의 무반에 있는 수심이 깊은 야외수영장에서 하루 종일 수영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수심이 깊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지치면 선베드에 누워있거나 친구의 집 정원으로 가서 역시 수영복만 입은 채로 식사를 하곤 했다. 웃통을 벗고 수영복만을 입은 채로 넓은 타운 안과 수영장을 오가는 그 기분, 정말로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그리고 몇 해 전 브라질 리우에 갔을 때 웃통을 벗거나 스포츠 탑만을 입고 바닷가를 달리는 사람들이 참 멋있어 보여서 언젠가는 나도 웃통을 벗고 바닷가를 달려 봐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시간이 나면 해변으로 가서 웃통을 벗고 모래사장 위를 달리곤 한다. 웃통을 벗고 해변을 달리면 티셔츠를 입고 달릴 때보다 내가 정말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처럼 느껴져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해변을 달리다가 덥다 싶으면 수심이 얇은 후아힌의 바다로 들어가 한참 동안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다. 작은 수영복 하나만을 입은 채 바닷속에 몸을 담그고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해가 지는 바다가 된 것 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어릴 적 사진관을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매달 사진 잡지를 통해 누드사진들을 자주 접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 누드모델들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였다. 어릴 적 나는 아무리 사회에서 높은 명성을 쌓아놓아도 나의 알몸을 남들에게 보이게 되면 나의 명성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시내에 갔다가 실수로 바지가 흘러내리거나 남방 단추가 떨어져 버리면 어떡하지? 그날로 인생이 끝나버리는 건가? 정말로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알몸을 보여준다고 세상이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내온 사회의 공기는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다. 몸을 드러내는 일이 지나치게 금기시되던 사회였다. 지나친 노출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되겠지만 자신의 몸을 너무 감추고 속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키가 크건 작건 피부색이 하얗건 빨갛건 군살이 있건 없건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을 더욱더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앞으로 근엄한 척하는 사람들일수록 뒤가 구린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몇 해 전 부산에서 한 이성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스페인의 누드 비치에 다녀온 뒤 발가벗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느낌이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가끔 새벽시간에 부산이나 제주의 인적 없는 해변을 찾아가 발가벗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온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친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친구의 마음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그 친구는 우도에서 빵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내가 아는 친구들 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친구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대단한 패션감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때는 옷을 입는 것에 열정이 있던 시기도 있었다. 비싼 명품을 사본 적은 없지만 매달 한 번씩은 명동의 로드샵들을 돌아다니며 나에게 맞는 옷을 신중하게 고르곤 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외국에서 온 원단으로 새로운 슈트를 한 벌씩 맞추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비싼 것을 입고 있는 것보다 벗고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 아주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테일러샵에 가서 재단사와 의견을 교환하며 슈트 한 벌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완성된 슈트를 입었을 때의 그 기분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하나를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대부분의 시간을 웃통을 벗고 지내도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는 태국에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후아힌에서 더 많은 ‘웃통 스폿’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Oceanside beach club'에 가서 웃통을 벗고 맥주를 마셔야지.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말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솔직한 사람들이 되자. 이제는 나도 나의 몸이 부끄럽지 않다. 더 이상 내 몸이 내 열등감의 원천이 되지 않는다.


처음 같이 밤을 보내던 날, 콤플렉스였던 나의 왼쪽 엄지발톱을 귀엽다고 해주었던 예전 여자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날 우리는 정말 낭만이었다. 사랑은 결국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인 것이다. 나도 지금은 나의 왼쪽 엄지발톱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태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태국이 내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태국과 나 역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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