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되면 다시 후아힌에 갈 거예요. 후아힌에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언제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후아힌에 있는 내내 마음이 너무 들떠있어서 후아힌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요. 차분한 마음이 좋은데 후아힌에는 온통 아름다운 것들 천지라 고요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방콕에서 버스로 세 시간이면 그 아름다운 바다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데 내내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는 아름다운 당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내가 싫어요.
마음속에 그리워할 것이 있어서 좋아요. 사랑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어서 좋아요. 언제나 길 끝에는 바다가 있었고 언제나 눈을 돌리면 예쁜 표정들이 가득했어요. 예쁜 마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예쁜 표정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닮아가나 봐요.
제 인생의 목표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언제든 다시 당신을 만날 땐 수줍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을 맞추고 인사하며 다정하게 웃어줄 수 있게.
사랑 앞에서 숨거나 도망치지 않게 다정하게.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다 당신을 만나러 갈래요. 저도 당신처럼 예뻐진 그날에 다정한 웃음으로 당신의 품으로 갈래요.
일몰의 바다가 나를 안아주던 그 촉감을 기억해요. 그 바다에서는 외로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이것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예요. 평생을 사랑 곁에 있으면서도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곧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다정한 사람이 되어. 다정하게, 후아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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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후아힌에 머물 때는 마음이 자주 한없이 다정해지곤 했다. 그래서 후아힌을 떠난 후에도 자주 후아힌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후아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치앙마이에서도, 방콕에서도, 서울에서도 후아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후아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평소와는 달리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너 후아힌과 사랑에 빠졌나 봐. 후아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네 표정이 그걸 감추지 못하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 나는 후아힌을 사랑하나 봐. 사랑은 아무리 단단하게 포장을 해놓아도 그 사이로 새어 나오고야 마는 꽃들의 향기 같은 건가 봐. 절대 감출 수가 없는 건가 봐. 후아힌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라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정한 사람이 되면 다시 후아힌에 올 거라고 했던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후아힌을 떠나 있었던 지난 일 년 간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후아힌에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던 약속은 지키고 싶어서 다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후아힌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관계 맺기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후아힌을 떠난 이후에 나는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요령 중 하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사는데 더 편리하다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어려워한다. 십 년 전의 나는 늘 웃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잘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살아보니 것이 오히려 내가 불편해지고 화가 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어려운 사람이 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먼저 나의 욕망을 이야기하면서 살아보니 사는 것이 훨씬 편리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슬픈 말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예의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다정한 사람이 될 거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베풀며 살 거라고 다짐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은 뒤 입을 꾹 다물고 살아가던 사람, 피해의식과 방어기제로 살아오던 내가 후아힌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내가 후아힌을 특별히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이들과 마주쳐 미소로 인사를 해도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정한 인사에게는 다정함이 돌아온다. 그로 인해 후아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나 또한 후아힌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할 수 있다. 내가 다정하게 대해도 저 사람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이곳에서는 낯선 이들에게도 한없이 다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아힌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 바다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몰 녘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매 순간 그 바다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매일, 매 순간 그 깊은 품에 안겨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데 어찌 다정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 태국에 오지 못했던 몇 해 전에는 일 년 내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는 것 같았다. 흉포한 사람들이 가득한 골목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 시절 이후 나는 한국에 머물 때면 입을 꾹 다물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괜찮은 척, 강한 척했지만 하나도 괜찮지 않았고 하나도 강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가능한 많은 것들 앞에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고 나의 약함을 내보이며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후아힌에 머무는 지금은 내가 지나치게 다정해도 혹은 약한 모습을 보여도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후아힌을 좋아한다.
어제는 주로 로컬 사람들이 이용하는 그랜드 야시장 구석에 있는 지극히 로컬스러운 허름한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원래는 발마사지를 받으러 그곳에 갔었지만 처음 보는 마사지사 아주머니가 아주 다정하게 등 마사지를 권해서 등 마사지를 받아 보았다. 나는 마사지가 끝난 후에도 몸에 남아있는 끈적한 감촉이 싫어서 오일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제는 그 아주머니가 너무도 차분하고 다정하게 등 마사지를 권해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역시 다정함이란 힘이 센 것이다.
에어컨도 없고 침대의 매트리스 시트로 곳곳이 찢어져 있는 등 모든 것들이 다 낡은 가게였지만 ‘웃통을 벗은 채로’ 불편한 곳이 없는지 물어가며 다정하고 정성스럽게 해주는 마사지를 받고 있자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세상 모든 속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느낌. 다정함 자석이 되어 온 세상의 다정함을 내가 빨아들인 느낌. 그래서 나는 등 마사지가 끝난 후에 발마사지를 한 시간을 더 받았다. 발마사지는 가게 안쪽의 침대가 아닌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의자에서 받았는데 수건으로 닦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등에 오일의 끈적함이 남아있어 발마사지 역시 웃통을 벗은 채로 받았다. 처음에는 그게 좀 창피했다. 거기는 해변이나 수영장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게 타이 스타일이라고 ‘마이 뺀 라이’ ( ‘괜찮아’라는 뜻의 태국어 )라고 해서 그대로 계속 마사지를 받았는데 야시장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마사지를 받고 있으니 정말로 태국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야시장 안 로컬 마사지 샵 앞에 놓인 의자에서 웃통을 벗고 발마사지를 받는 일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웃통을 벗고 해방감에 가득 차 발마사지를 받던 중 아주머니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아주머니의 친구는 한국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태국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아주머니의 다정한 표정에 잠시 후아힌의 바다가 오버랩되었다. 그때 나는 후아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참 후아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후아힌에서는 길고양이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입을 꾹 다물고 강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후아힌. 다정한 사람이 되어 후아힌에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후아힌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다정해질 수 있다.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것 앞에서는 지금도 한없이 다정할 수 있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후아힌에게는 다정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다정한 사람들이 많은 후아힌, 다정한 후아힌, 나를 다정하게 만드는 후아힌. 다시 다정하게, 후아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