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그를 배달한 금요일 밤

by Gorae

'I need a hug.' 지난주 금요일 어디선가 친구들과 파티를 끝낸 뿌이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이 오질 않는다고 번개가 치는 밤이 너무 무섭다고. 땡모는 방콕 오면 한 번 보기로 해놓고선 왜 먼저 연락하지 않느냐고. 뿌이는 투정 섞인 어투로 나에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술 취한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방콕 와서 일 하느라 너무 바쁘네. 바쁜 일들 마무리되면 꼭 얼굴 보자라고 답을 보냈다. 뿌이는 자신은 지금 ‘허그’가 너무 필요한데 지금 만나서 자신을 안아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나는 주변에 너를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넘쳐날 텐데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허그를 해달라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뿌이는 때로는 낯선 사람이 오래된 친구들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는 동의를 해서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너의 ‘허그 뱅크’에 ‘땡모 허그’를 일회권을 저장해둬라. 다음에 네가 허그가 필요하면 꼭 달려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다시 금요일 밤이 찾아온 어제 뿌이에게 또 한 번 연락이 왔다. 'I need a hug.' 나는 방콕에서 멋지게 금요일 밤을 보내려고 밤수영을 한 뒤 람부뜨리에 있는 재즈바에 가려고 했으나 수영을 하고 속소로 들어와 망고스틴을 까먹으면서 쉬다 보니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그냥 집에 쉬다가 잠이나 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했는데 뿌이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던 것이다. 'I need a hug.'


뿌이는 종종 SNS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태국 친구였다. SNS에 꽤 오랫동안 태국과 관련된 사진과 글들을 올리다 보니 태국 사람들 중에 내 인스타를 팔로우하는 경우가 있는데 뿌이도 그런 경우였다. 뿌이는 광고모델도 하고 영어 강사도 하고 프리랜서로 큰 회사 사장의 비서도 하면서 아주 아주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였다. 프리랜서로 큰 회사 사장의 비서를 한다는 것이 좀 독특한데 뿌이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 그녀처럼 똑 부러지게 일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사장이 그녀에게 출근을 안 해도 좋으니 업무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뿌이는 사장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고 그래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정도로 뿌이는 현명하고 열심히 사는 친구다. 태국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후와 환경이 다르니 삶의 방식도 다른 것일 뿐이다. 더군다나 요즘 방콕의 젊은이들을 보면 다들 굉장히 열심히 산다. 방콕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비해 인건비는 여전히 높지 않은 편이라 꿈이 있는 친구들은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직업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산다.


뿌이는 작년부터 종종 내가 올리는 태국에 대한 게시물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 또한 늘 파티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뿌이와 대화하는 것이 즐거워 시간이 되는대로 답변을 하곤 했다. 뿌이는 다음에 방콕에 돌아오면 꼭 같이 위스키를 한 번 마시자고 했고 나는 좋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방콕에 오니 일이 너무 바쁘고 외로운 마음도 들지 않아서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새로운 친구들, 특히 광고모델을 할 정도로 귀여운 외모의 이성이라면 방콕에 오자마자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태국 친구들을 몇 번 만나보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너무 다른 성향들을 지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서로 문화가 다르고 때때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다른 국적을 가진 이성과의 관계는 섣불리 시작하면 누군가는 꼭 마음을 다치고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더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I need a hug.' 뿌이가 보낸 SNS 메시지에 답변을 할까 아니면 자다가 깬 척을 할까 하다가 지난주에 약속한 것이 마음에 걸려 답변을 했다. 그러니 뿌이가 약속을 지키라고 말했다. 나는 어떡할까 망설이다가 “그래, 그러면 ‘땡모 허그 일회권’을 오늘 쓸래?”라고 물었다. 뿌이는 그러겠다고 말을 했다.


뿌이와 나는 라차다 스트리트몰에 있는 24시간 오픈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가려고 했는데 그랩이 안 잡혀서 콘도 입구까지 한참 걸어 나간 후 택시를 잡았는데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라차다까지 가는 내내 무언가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한 기분이었다. 마침내 스트리트몰에 도착해 24시간 오픈하는 카페에 도착하니 뿌이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뿌이는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화장을 연하게 하고 있으니 아주 앳된 소녀 같았다. 실제로 만나니 너무 어색해서 당장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른이니까 그럴 수 없다. 뿌이와 나는 만나자마자 어색한 인사만을 한 번 나눈 뒤 아무 말도 없이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Hug me, Taengmo.'라는 말을 듣고 나는 뿌이를 안았다. 기분이 되게 이상했다. 아무튼 안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보지 않았다. 그저 창밖으로 비가 오는 풍경을 보면서 뿌이를 안았다. 뿌이도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이지 펑펑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한 뒤 그 어색한 상황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뿌이의 예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뿌이가 쓰는 샴푸와 향수를 맞춰보려고 노력했다. 태연한 척하는데 성공은 했지만 그렇게 어색한 순간을 다시 겪게 된다면 정말이지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갔다. 나는 전혀 편안하지 않았는데 뿌이는 어느새 눈을 감고 편안하게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아무도 우리들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신경 쓰였다. 그래도 맹렬한 기세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만큼은 좋아서 거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뿌이는 코코넛 오일을 쓰나 보다. 비가 오는 건 언제나 참 좋다.


한참이 지난 후에 비가 그쳤고 뿌이도 이제 집에 가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바뀌어 아주 깊은 새벽이었다. 그날은 무언가 더 말을 길게 나누면 안 될 것 같아서 “다행이네. 이제 집으로 가자.”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태연함을 관리하는 기관이 고장이 났는지 얼굴이 빨개지며 양 볼이 뜨거울 정도로 화끈거렸다. 도대체 갑자기 이건 무슨 일이지? 나는 뿌이가 내 얼굴을 볼까 봐 걱정이 되어서 황급히 택시를 잡아 뿌이를 먼저 태워 보내고 나 또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뿌이와 헤어지고 난 이후에도 빨개진 내 얼굴은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뿌이가 나에게 어떤 마법을 부렸나? 이것은 처음 겪어보는 마법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방금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일인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더라. 처음 보는 이국의 여자아이와 카페에서 만나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의 허그라니.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준 택시 기사에게 방금 일어난 일을 간략히 설명했더니 택시기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긴 방콕이잖아.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어?


오늘은 자고 일어나 온종일 뿌이가 나온 지면 광고들과 SNS에 올라온 광고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 일어난 일이 꿈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글을 쓰려고 했는데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아 카페로 왔다. 뿌이도 역시 요정이었나? 어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써야 할까? 방콕에는 수많은 요정들과 유니콘들이 사는데 방콕에 수많은 요정들과 유니콘이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방콕에서는 여전히 너무너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일테면 사랑 같은 것? 일테면 갑작스럽게 빨개지는 얼굴 같은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뿌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제 뿌린 향수가 뭐였냐고. 향수 어떤 것을 쓰냐고.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아직 답을 하지 않았다. 요정과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몰라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그냥 답을 하지 않을 것도 같다. 방콕에서는 여전히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방콕은 여전히 이상하다. 방콕이 여전히 이상한 채로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방콕에 처음 왔을 때의 그 기분을 느낀다. 일테면 사랑 같은 것. 일테면 밤새도록 빨개진 얼굴 같은 것. 뿌이는 코코넛 오일을 쓴다. 비가 오는 건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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