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봤고 태국을 오간 것도 여러 번이지만 입국장 대기줄에 서면 여전히 긴장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입국장에서 몇 번의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공항에서는 게슈타포처럼 생긴 입국심사관의 질문에 당황해 사우스 코리아로 답해야 할 것을 노스 코리아로 잘못 이야기해서 한 시간 가까이 벌 받는 초등학생처럼 입국심사대에 서있었던 적이 있었다. 되게 무서웠다. 최근 태국을 오갈 때에는 나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비슷한 한국 국적의 범죄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서 늘 출입국 관리들에게 붙잡히곤 했다. 이번 입국심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나의 여권과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을 번갈아 들여다보더니 자신을 따라오라는 입국심사원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좀 화가 났다. 그를 따라 입국장 구석 사람이 없는 심사대까지 간 후 왜 그러는 거냐고 항의를 했더니 더욱더 고압적인 표정과 목소리로 “캄 다운.”이라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가장 못 참는 것 하나가 있다면 그렇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다. 이방인인 내가 출입국 관리원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화를 꾹 참아야 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비행 내내 옆자리의 아이가 격렬하게 울어대서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 심사원의 어떤 표정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목소리로 다시 한번 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따졌다. 너희 블랙리스트에 있는 그 사람은 내가 아닌데 왜 매번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 거냐? 이 정도면 너희 데이터베이스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그러자 입국심사원이 나에게 마지막 경고라며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했고 주변에 있는 관리들에게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관리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화가 나서 따지긴 했는데 막상 관리들이 모여들자 무서웠다. 모여든 관리들은 이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순간 비자 런을 하다 태국 출입국 관리소 유치장에 갇혀서 며칠을 보냈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일 이대로 유치장에 간다면 다양한 국적의 난민들과 불법 체류자들, 범죄자들과 섞여 다양한 냄새들과 소란스러운 언어들 속에서 잠도 자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야 하겠지. 방콕에 도착하면 바로 시작해야 했던 일들을 하지 못하고 많은 일들을 그르친 채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아주 비싼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거나 추방당해서 다시는 태국에 올 수 없을 수도 있겠지. 다시 태국에 오지 못한다고? 다시 태국에 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콘도 수영장에서 밤수영을 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없을 테고 ‘adhere blues bar’의 멋진 뮤지션 능의 연주도 들을 수 없게 되겠지. 차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멋진 식당 ‘never ending summer'에서 뿌님팟퐁커리를 먹는 일도 할 수 없을 테고 내가 좋아하는 루프탑 바 'attitude'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혼자 고요히 칵테일 한 잔을 마시는 시간도 가질 수 없을 테지. 한 시간에 단돈 150바트를 받는 발마사지의 달인 오 아저씨와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발마사지를 받는 행복한 시간들도 이젠 안녕이고 'sirocco'에서 일하는 예쁜 촘푸와 함께 하는 새벽 맛집 번개도 더 이상 할 수 없겠지. 치앙마이에 사는 친구의 무반 ( 태국식 타운하우스 )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며 보내는 시간도 가질 수 없을 거고 숲 속에 있는 치앙마이 카페에서 요구르트 볼을 먹으며 SNS에 허세글을 올리는 그 행복한 시간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일이 되겠지. 위안을 주던 크라비와 푸껫의 바다는 또 어떡하나.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그 겨울에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 눈물이 나도록 그립던 그 안다만해. 정말로 정말로 나의 인생에서 태국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대부분은 사람들은 자라면서 모두 낙원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우리는 낙원을 잃어버린 그날부터 입을 다문 채로 살아가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다시 낙원으로 오기까지 많은 밤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태국이 사라진다면 다시 한번 낙원이 사라지는 거니까 나 또한 삶을 오래 견딜 수가 없을 거다. 우리에게는 낙원이 필요하다. 나의 인생에는 태국이 있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안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나는 태도를 바꾸어서 입국심사대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안면이 있는 중년의 여성 관리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 나쁜 녀석이랑 이름만 비슷할 뿐이다. 어서 그 녀석이 잡혔으면 좋겠다. 나는 태국에서 책을 쓰고 있다. 한국사람들에게 태국의 좋은 점들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화가 난 게 완전히 삭히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와 간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확인 중이니 기다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다른 관리들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이번에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이번에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잖아? 이대로 입국심사대를 빠져나갈 수 없는 건가? 나는 태국을 잃어버리게 되는 건가? 너무 불안해서 친구의 무반에 있는 깊은 다이빙풀 속으로 맨 처음 몸을 내던질 때처럼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물속에서 잠시 정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일순 마음이 사라졌다. 불안감도, 행복감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태국이 없어진다면, 나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나를 붙잡았던 남자 입국심사원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나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번갈아 보더니 여권에 쾅하고 도장을 찍은 후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여성 관리에게 "이것 봐. 그 나쁜 놈은 내가 아니지 않냐. 한두 번도 아니고 왜 매번 오갈 때마다 나를 붙잡냐. 나는 정말로 태국을 사랑한다고." 내가 투정 섞인 목소리로 항의를 하자 그녀는 “미안해. 그 나쁜 놈이 빨리 잡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 정 불편하면 한국 갈 때 여권의 영문 이름을 바꿔서 와. 태국을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나와 이름이 비슷한 그 나쁜 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몇 년째 잡히지 않고 있는 걸까? 나쁜 짓을 저지른 그 녀석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잖아. 투덜거리며 입국장을 빠져나와 캐리어 찾은 뒤 재빨리 공항 택시 정류장으로 갔다. 공항 건물을 빠져나오자 더운 공기가 훅하고 폐 속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다시 왔구나. 입국심사장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소요한 것 같았는데 시계를 보니 그 사람들에게 붙들려 있었던 시간은 십 분이 채 되지 않았다. 때로는 시간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택시 대기 번호표를 뽑은 뒤 내가 타야 할 택시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콧수염을 기른 기사가 친절하게 웃으며 나의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미리 계약을 해둔 콘도가 있는 온눗으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는 바로 출발을 했다. 일단 택시가 출발을 하자 택시기사가 바로 수작을 걸었다. “온눗까지 그냥 500바트에 가줄게. 정말 싸게 해주는 거야.” 한두 번 당해본 일이 아닌지라 나는 웃으며 기사의 수작을 받아쳤다. “콘 타이 캅. ( ‘태국 사람입니다’라는 뜻의 태국어 ) 턴 온 더 미터.” 만만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기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미터를 켰다. 기사가 요즘 방콕에는 비가 많이 오네라고 말을 돌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띈 채 대답하지 않았다. 태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다시 방콕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