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아힌을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여행 잡지에서 후아힌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태국 왕실의 여름 별장이 있는 곳으로 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고급스러운 휴양지라는 내용이었다. 왕실과 여름 그리고 별장이라니. 이제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오래된 로맨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단어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도 온통 관심이 태국에 쏠려있던 나는 언젠가 이 후아힌에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후아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부터는 만나는 태국 친구들에게서 후아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촘푸는 후아힌에 자기 가족들이 사놓은 콘도가 있어서 자주 간다고 했고 낫은 친척이 후아힌에 살아서 종종 간다고 했다. 위즈는 가끔 시간이 나서 한적한 바다를 보고 싶을 때 후아힌까지 드라이브를 한다고 했다. 태국 친구들의 SNS를 통해서도 자주 후아힌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방콕에서 차로 세 시간이 걸리는 곳이기에 방콕에 사는 친구들도 주말에 잠시 짬을 내서 그곳에 다녀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누군가는 후아힌의 물가가 아주 비싸다고 했고 누군가는 부자들이 가는 휴양도시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조합해 후아힌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완성해나갔다.
그러다 작년 오월 대도시 방콕 생활에 지쳐서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후아힌을 떠올렸고 후아힌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후아힌은 친구들의 이야기나 잡지 기사의 사진을 보면서 상상했던 후아힌과는 아주 달랐다. 후아힌은 휴양도시이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일상의 냄새가 나서 좋은 곳이었다. 푸껫이나 크라비에도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올드타운이 있긴 하지만 도시의 공기가 어딘가 들떠있고 서로가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대하는 그곳에 비해 후아힌은 훨씬 더 편안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후아힌은 그곳을 자주 드나드는 태국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분하고 친절했고 물가도 비싸지 않았다. 또한 왕실의 여름 별장이 있어서인지 다른 휴양지와는 달리 어지러운 유흥가들이 없다는 것도 후아힌을 더욱 기품 있어 보이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푸껫이나 크라비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아름다운 바다를 어찌 싫어할 수 있겠는가? 나는 푸껫이나 크라비도 아주 좋아하고 푸껫의 올드타운도 특별히 좋아한다. 힘든 시기가 왔을 때 ‘언젠가는 이 시련을 이겨내고 안다만해를 보러 갈 거야’라는 마음으로 이겨냈기에 안다만해의 풍경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만 매일 같이 휴가 온 기분으로 들뜨는 곳은 가끔 휴가로 가면 좋지만 오래 그곳에 머물면서 일상을 사는 곳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전 세계인들이 오고 가는 푸껫이나 크라비보다는 태국 사람들이 쉬러 오는 한적하고 차분한 휴양도시 후아힌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다. 자그마한 도시 후아힌은 참 단순한 구조인데 큰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에는 로컬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시장 그리고 몰 같은 것들이 있고 길을 건너 동쪽으로는 해변과 호텔 그리고 레스토랑 같은 것들이 있다. 콘도를 렌트해서 머물고 있는 나는 큰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든 길만 건너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후아힌 해변과 카오 타키압 해변 등 여러 개의 해변이 아주 길게 이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길을 건너 동쪽으로 걷다 보면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언제나 해변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다는 것, 참 낭만이지 않는가?
그러나 한적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아힌을 그렇게 그리워했던 것은 아니다. 작년에 후아힌에 있으면서 마주친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새벽에 바다 위로 번개가 치는 것을 본 것이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는 후아힌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후아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높은 건물이 많지 않은 후아힌에서 저 멀리 어두운 밤바다 위로 천둥번개가 치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밤바다 위로 번쩍번쩍 천둥번개가 치는 그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며 아이러니컬하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와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던 그 포근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작년에 머물렀던 이 숙소를 다시 예약한 것은 그 풍경을 보면서 느낀 감흥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후아힌 해변에서 비치체어 바를 하는 독트함 아저씨와 그의 네 살 된 딸 카우판를 만난 일이었다. 독트함 아저씨와 카우판을 처음 만난 날, 우기와 일몰과 바다 풍경이 겹치면서 온 세상이 아주 오묘한 파란색으로 물들었던 그 풍경도 잊을 수 없었지만 그 풍경 아래에서 영업 마감을 위해 비치체어 바를 정리하던 독트함 아저씨와 신이 나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 카우판이 함께 비치체어를 옮기던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치 내가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그날의 그 풍경은 아름다웠고 평화로웠으며 독특했다. 온통 세상을 이상한 빛으로 물들인 대자연 앞에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고독해 보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어린 딸과 나이 많은 아빠가 함께 비치체어를 옮기는 모습이 따뜻하기도 했고. 후아힌을 떠난 후에도 그 풍경은 자주자주 생각이 났다.
그래서 후아힌에 다시 오면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에서 독트함 아저씨와 카우판에게 인사를 한 뒤 맥주를 마시면서 일몰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아힌에 다시 도착한 날, 짐을 풀어놓자마자 바다로 나가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 해변을 따라 이만 보나 걸었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카오판싸, 우리말로는 안거 일이라는 불교 경축일이라 태국 전역에서 술을 팔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독트함 아저씨도 비치체어 바를 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해변에서 이만 보나 걷다니. 나는 늘 걷는 사람이고 도보여행자지만 그날은 정말로 내 다리에게 미안했다. 다음 날 다시 한번 해변으로 가서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를 찾았는데 다른 가게들이 다 문을 연 그날에도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은 이만 보를 넘게 걸었는데도 도무지 독트함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슬퍼졌다. 독트함 아저씨는 더 이상 해변에 비치체어 바를 열지 않는 것인가? 사실 일 년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경찰들이 독트함 아저씨에게 더 이상 해변에서 비치체어를 놓고 맥주를 팔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푸껫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독트함 아저씨의 건강이 나빠져서 일을 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모두 다 너무나도 가능한 시나리오라서 독트함 아저씨가 더 이상 비치체어 바를 운영하지 않는 게 기정사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난 일 년간 정말 간절하게 다시 만나기를 소원했던 풍경이었지만 역시 인생은 늘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인생이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를 다시 갈 수 없다는 건 아쉬웠다. 아직 나는 담담한 어른의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려면 멀은 것이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다시 한번 해변을 걷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독특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를 만났다. 전날 나는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가 카오타키압 해변 쪽이라고 생각해서 그쪽을 향해 계속 걸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반대편인 후아힌 해변이었던 것이다. 해변을 걷다 말고 익숙한 풍경과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즉시 아저씨의 비치체어에 앉아 태국 맥주 싱하를 큰 걸로 한 병 주문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인상의 독트함 아저씨는 나를 기억 못 했는데 내가 작년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활짝 웃더니 등 뒤를 향해 무어라 크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어디선가 카우판이 나타나 나에게 달려왔다. 일 년 사이에 카우판은 몰라보게 자랐다. 그래도 그 아이가 카우판이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작년에 찍은 사진을 카우판에게 보여주니 카우판은 웃으면서 작년과 똑같이 비치체어를 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핑 돌던지. 살아서 다시 이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구나.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겠구나. 그리워하던 것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구나.
카우판에게 친구와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백 바트를 주었더니 신이 나서 어딘가로 사라진다. 독특함 아저씨와 웃으며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저씨도 일을 마치고 쉬셔야 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다. 후아힌은 역시 나에게 선물을 주는 곳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겠다. 후아힌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허락한다면 매일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혼자 일몰 녘의 해변을 걷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저 감사하고 또 행복한 하루였다. 지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들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적이다. 그런 생각들이 길게 늘어지는 하루였다. 후아힌에게 그저 감사하게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