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는 정말 많은 탈 것들이 있다. 비행기와 기차는 물론이고 택시와 버스, 지하철과 지상철 그리고 강 위를 달리는 수상버스도 있다. 주로 마을버스로 활용되는 소형 트럭을 개조한 미니버스 썽태우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바가지요금을 받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뚝뚝 그리고 가까운 도시들을 오가는 승합차 롯뚜도 있으며 국경 혹은 먼 도시까지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달리는 이층 버스도 있다. 그리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태국에 오면 유니콘을 타는 행운을 접할 수도 있다. 방콕의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불현듯 나타나 나를 태운 뒤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그 아름다운 동물.
자신이 인생을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태국에서 유니콘을 찾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잘 들여다보라. 태국에서는 때때로 유니콘이 오토바이 모양을 하고 나타난다. 태국의 큰 도시에는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손님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택시 랍짱이 있는데 교통체증이 아주 심한 방콕에서는 정체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좁은 골목골목을 누비는 이 랍짱이 정말 하늘을 나는 유니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좋지 않은 기억들로 인해 오토바이 타는 것을 꺼리는 나지만 방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랍짱을 이용해야 하는 구간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랍짱 기사들이 다정하고 유쾌해 랍짱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들이 많다. 태국 서민들의 삶, 특히 혼잡한 도시에 사는 방콕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이 랍짱이라는 것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방콕에서는 택시가 워낙 저렴한지라 아주 가까운 골목길을 오가는 것이 아니면 랍짱 요금이 택시 요금보다 더 비싸다. 그렇지만 교통체증이 극심한 퇴근시간 혹은 오토바이가 아니면 지나다닐 수 없는 골목길을 이용해서 빨리 어딘가로 가야 할 때면 택시보다 더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이 랍짱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종종 랍짱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보기엔 허름하고 체계 없이 운영하는 걸로 보이는 오토바이 택시 랍짱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사별로 담당을 하는 구역이 확실히 정해져 있어서 다른 랍짱들의 영역은 침범하면 안 되고 - 실제로 얼마 전 우돔숙 역에서는 한 랍짱이 다른 랍짱들의 구역을 침범해서 총격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 마피아가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이권이 걸린 체계적인 사업이다. 그래서인지 방콕의 랍짱 기사들 중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적은 자본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이니 젊은 사람들이 이 일에 뛰어드는 것일 게다.
그런데 내가 그간에 후아힌에서 만난 랍짱 기사들은 하나 같이 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며칠 전에는 해변을 걷다가 밖으로 나와 랍짱을 이용하려다가 길가에 앉아 천천히 책을 보고 있는 랍짱 기사를 방해하기 싫어서 한참을 기다린 적도 있다. 늘 느긋한 후아힌처럼 후아힌의 랍짱 기사들 역시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닮았다. 후아힌 내를 이동하는 대중교통수단은 썽태우와 그랩 택시 그리고 랍짱 등이 전부인데 방콕처럼 랍짱이나 그랩 택시가 많지는 않아서 썽태우가 끊기고 나면 랍짱을 찾거나 그랩 택시를 타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후아힌 야시장 안에 있는 마사지샵에서 발마사지를 받은 뒤 내가 좋아하는 무껍 - 태국식 삼겹살 튀김 - 맛집 쪽구빠이에서 야식까지 먹고 나왔더니 야시장 안의 랍짱들이 모두 퇴근한 뒤였다. 그랩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것도 귀찮아 랍짱을 찾으며 걷다 보니 후아힌 경찰서 앞까지 가서야 겨우 랍짱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치아가 몇 개 남아있지 않은 듯 보이는 할아버지 기사에게 내가 머무는 숙소를 아냐고 물었더니 잘 안다고 하면서 오십 바트를 불러 별다른 흥정을 하지 않고 그 오토바이를 탔다. 운전을 하던 할아버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운전을 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연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를 반복했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운전을 하는 와중에 자꾸 할아버지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같은 말을 반복하셔서 좀 무서웠다. 할아버지가 약간 술을 드신 것 같기도 하고 치매 같다는 느낌도 들어서 당장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싶었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는 작은 것이라 높은 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숙소까지는 가는 그 십 여분 남짓 동안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긴 했지만 다시는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려고 하신 친절한 할아버지였지만 너무도 공포영화 같은 상황이었고 두 번 다시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야식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쪽구빠이에 들러 무껍을 먹은 후 썽태우를 타고 숙소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바보처럼 숙소가 아닌 숙소 반대편 공항으로 가는 썽태우를 타버렸다. 썽태우가 한참을 달린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숙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내려 나의 숙소 방향으로 가는 썽태우를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썽태우는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켜고 그랩 택시도 불러봤는데 내가 내린 곳이 번화가와 떨어져서인지 나의 콜을 받는 차량이 없었다. 한참을 더 기다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야시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인적이 드문 길 위에 랍짱 기사임을 나타내는 조끼를 입고 서있는 할아버지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가 어디까지 가냐고 말을 거셔서 숙소명을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까진 칠십 바트라고 당장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라고 하셨다. 이곳에서 랍짱을 발견한 것이 반가웠지만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라 “커 톳 캅” - ‘미안해’라는 뜻의 태국어 -이라고 하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의 큰 눈이 너무도 해맑고 애처로워서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 눈을 보면 그랬을 거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할아버지에게 속력을 내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몇 번이나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면서 이야기한 후 할아버지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고도 이렇게 해맑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걸까?
할아버지는 후아힌의 메인로드가 아닌 기찻길을 따라 난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달렸는데 불현듯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혹시 할아버지가 나의 숙소를 다른 곳으로 착각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나의 숙소명을 다시 한번 크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아주 사람 좋게 웃으면서 거기로 가고 있다면서 이 길 끝에서 우회전을 하면 네가 사는 콘도가 나온다고 하셨다. 그 순간 마음이 안심이 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인적이 드문 시골의 밤길을 달빛 아래 달리는 오토바이 택시. 차분하게 그 상황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태국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성조가 있는 태국어가 달빛 아래에서 오래된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렸다. 아주 기본적인 태국어만을 구사하는 나임에도 참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는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이해가 되었다. 달빛 아래에서 몸과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이 든 손자의 꿈속에 오신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달빛에 취한 사람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할아버지와 이 세상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한참 동안 달빛 아래의 시골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야시장에서 숙소로 오는 사이에 며칠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십여 분이 소요되었을 뿐이었다. 숙소 로비에 나를 내려준 할아버지에게 요금을 드리며 “판 디 캅.” - ‘잘 자요’라는 뜻의 태국어 - 웃으며 인사를 했더니 할아버지도 그 해맑은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는 오토바이에 다시 시동을 걸어 숙소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달빛 아래의 시골길을 달렸던 그 좋은 기분이 남아있어서 씻지도 않고 한참을 소파에 앉아 그 풍경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유니콘이었음을. 나이를 먹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그 해맑은 눈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소통할 수 언어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준 유니콘. 드디어 후아힌에서도 유니콘을 만났던 거구나. 딱히 착하게 살아온 것이 아닌데도 썽태우를 잘 못 타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나에게 나타나 잠시 자신의 등을 빌려주었던 거구나. 아마도 내가 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안 후아힌의 선물이었겠지? 그 할아버지가 유니콘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존재에 유니콘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을까? 오늘 밤, 나는 드디어 후아힌에서도 유니콘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