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가

by Gorae

후아힌 쏘이 하십엣 ( 쏘이는 거리라는 뜻이고 하십엣은 오십일이라는 뜻. 즉 후아힌 오십일 번지 혹은 후아힌의 오십한 번째 거리라는 뜻. ) 끝에 있는 바다로 가는 길, 화강석으로 만들어진 낡은 벤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오늘도 이미 만 보 이상은 걸었지만 조금 더 걸을 예정이다. 지난 일주일간 거의 매일 밤을 새워서 글을 썼고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일어나면 무작정 바다로 나와 도합 십만 보 이상을 걸었다. 지금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프다. 해변을 주야장천 걸었더니 신발 사이로 모래가 들어가서인지 발바닥의 살이 쓸린 것 같다. 발바닥 곳곳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고 양말을 신은 뒤 운동화를 신어야 그나마 통증 없이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방콕에 있을 때 친구가 다녀간 이후로는 낮 수영을 하는 것이 좋아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잠깐씩 낮 수영을 하곤 했는데 그 때문인지 등이 발갛게 익어서 걸을 때마다 가방끈에 닿는 어깨가 화끈거린다. 요 며칠간 노트북을 들고 다니느라 가방이 꽤 무거워져서 걷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그간에 나는 주로 숙소에서 원고를 썼지만 후아힌에 온 이후에는 작업할 게 아무리 많아도 바다를 보며 걷는 것을 포기하기는 싫어서 노트북을 들고 다니고 걷다가 수시로 몰이나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쓰고 있다. 그 덕분에 가방이 무거워졌고 무거워진 가방끈에 짓눌러서 발바닥뿐만 아니라 어깨와 등에도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걷고 보고 또 쓴다. 걸으면서 만난 것들을 쓴다. 무더위에 넓은 땅을 걷는 것이 참 힘들고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이것이 내 여행 방식이다. 나는 도보여행 가다. 고생스럽게 걷고 나면 늘 마음에 뿌듯하게 남는 무언가가 있다.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라고 그러고 누군가는 차를 사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동안은 걷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내가 죽은 뒤 묘비를 세울 일은 없겠지만 만일 묘비명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미친 듯이 걸었다’라고 쓸 것이다.

태국에서는 오토바이가 있어야 편하다고 하지만 수십 년간 오토바이를 타 온 태국인 친구들도 사고가 나는 것을 많이 봤다. 여행지에서 들뜬 기분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외국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외국인이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나면 끔찍할 정도로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는데 나는 결코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내 삶의 목표는 늘 지금처럼 사는 것이다. 굳이 모험을 해서 어떤 사고나 문제가 일어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빌려서 다니면 저렴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외국인이 빌린 오토바이를 반납할 때면 대여점에서는 으레 빌린 사람이 건드리지도 않은 부분까지 지적하며 비싼 수리비용을 지불하라고 억지를 부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인이 오토바이를 타면 경찰들의 집중단속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벌금을 뜯기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앞으로도 한동안은 사고 위험성이 큰 오토바이를 내가 직접 운전할 일은 없을 것이다. 차 같은 경우에는 중고차를 사면 부담 없고 편하겠지만 아직은 한국을 오가면서 지내야 하는 내가 중고차를 사놓고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나는 콜택시나 오토바이 택시인 납짱 혹은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걷고 싶을 때는 열심히 걷고 골목 깊숙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되 탈 것이 필요할 때 교통비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 특히 방콕은 택시비가 싸고 지하철이나 버스뿐만 아니라 납짱들도 골목마다 있어서 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방콕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이 열악한 치앙마이에서는 많은 장기 체류자들이 오토바이를 렌트하지만 나는 그랩이라는 앱을 이용해 콜택시를 불러서 이곳저곳 불편함 없이 다녔다. 지난 몇 달간 치앙마이에서 그랩을 이용해본 결과 그랩을 열심히 이용해도 한 달에 십만 원 이상을 쓰기가 힘들었다. 한 달에 십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집 앞까지 오는 콜택시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고 외국에서 직접 오토바이를 운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이제는 되도록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지 않다. 우울증이 깊어져 나를 지키기 위해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던 몇 년 전, 집을 정리하다 보니 사놓고 포장비닐도 뜯지 않았던 비싼 옷들이나 사놓고 펼쳐보지도 않았던 책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심지어 그중에는 나의 사인이 새겨진 디자이너샵에서 맞춘 옷들도 있었다. 그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소유해 누린 기쁨보다 그것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얻은 불행이 더 커진 것 같았다. 내가 간절히 소유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정말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혹은 누군가의 영향으로 소유하기를 강요당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싫어졌다. 그 후 지금까지 살림을 많이 줄였는데 앞으로도 계속 줄여서 큰 캐리어 하나와 백팩 하나에 들어가는 짐만으로 살고 싶다. 미니멀 라이프나 공유경제 같은 트렌디한 단어로 내 삶의 방식을 포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되도록 오래 사랑하는 것들 곁에 머물고 싶어서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차나 오토바이를 구입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차가 오토바이가 있으면 게으른 내가 덜 걸을 것 같아서 그게 두렵기 때문이다. 차나 오토바이는 언제든 살 수 있고 타고 다닐 수 있지만 이십 년 후에도 지금처럼 잘 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태국에서 오토바이나 차를 사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중인 것이다. 차나 오토바이가 없으면 피치 못하게 걷게 되는 일이 많은데 걷지 않으면 마주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할머니 곁에서 나른한 얼굴로 누워있는 고양이와 마주치는 순간이라고 한다든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 앞에 큰 테이블을 놓고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가족들과 마주쳐 사진을 한 장 찍자고 제안해 크게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 순간이라든지. 기다리던 우리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린 썽태우를 보며 욕을 하다가 친해진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여행수다를 떨게 되는 일이라든지. 맥주를 마시러 간 아빠 대신 일일투어 호객을 하고 있는 꼬마와 마주쳐 유쾌하게 흥정을 벌이는 일이라든지. 예쁜 여성분과 마주쳤을 때 아는 길을 괜히 모르는 척 한 번 물어보며 말을 거는 일이라든지! 모두 걷지 않았다면 마주치지 못했을 풍경들이다. 그리고 그 유쾌하고 다정했던 수많은 납짱들과 택시기사들 역시 내가 걷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독트함 아저씨의 비치체어 바 역시 내가 걷는 사람이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었겠지. 물론 내가 걷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현지인들의 로컬 맛집이나 예쁜 카페들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로컬 맛집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는 훨씬 덜 행복했을 것이다. 걷는 것은 늘 남는 장사다. 좋은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은 내게는 열심히 걷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다.


얼굴이 까맣게 타도 좋다. 나는 걷는다. 이제는 예쁘게 보일 사람도 없다. 다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조금 더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다. 재밌는 에피소드로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걷는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할 때는 미친 사람처럼 하고 싶다. 제정신이 아니고 온통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자는 것도 잊고 먹는 것도 잊고 그것에만 매달리고 싶다. 사랑마저도 판타지가 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별다를 게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갈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래서 발바닥이 다 까지고 고통스러워도 걸으면 행복하다. 사랑받는 것 같다. 사랑하는 것 같다. 더욱더 많이 사랑하고 더욱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서 나는 걷는다. 엘 깔라파테에서도, 상파울루에서도, 베를린에서도, 싱가폴이나 런던, 치앙 칸이나 크라비에서도 걷는 것은 나를 실망시킨 법이 없다. 걷는다는 건 참 정직해서 걷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준다.

이 글을 쓰고 있다 보니 바다 너머로 해가 졌고 거리에 수은등이 켜졌다. 노트북의 배터리도 간당간당하다. 개들이 여기저기서 짖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생선을 굽는 냄새가 풍겨온다. 이제 다시 후아힌에 사는 현지인들의 저녁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는 오늘도 걸었고 썼다. 그리고 이제 다시 걷는다. 소유한 것이 많이 없어 더 오래 더 많이 걸을 수 있다. 매일매일 걷는 동안 사랑하는 당신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걷는 사람이다. 그 사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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