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힌의 녹색 썽태우 종점에서 내려 조금 더 걸어가면 해변 끝자락에 젓가락 언덕이라는 뜻의 카오 타키압이 있다. 그리고 그 언덕을 올라가면 원숭이들이 가득한 카오 타키압 사원이 있다. 후아힌을 처음으로 방문하기 전 후아힌에 카오 타키압 사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해변 끝자락에 있는 언덕을 올라 반드시 그 사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후아힌에서는 비치체어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거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카오 타키압 사원을 가는 것을 계속 미루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 위에 있는 사원의 모습이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는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 꿈을 꾼 이후 며칠간 내 머릿속에 그 문장이 떠나질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내 머릿속에 맴돌던 그 문장이 잦아들었을 때 블루 포트 몰 스타벅스에서 원고를 쓰다 말고 문득 카오 타키압 사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미루고 미루다가 하필 그때였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간절하게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할 때는 늘 일정을 미리 짜 놓지 않고 언제 어느 곳에 가야 하고 언제 어느 곳을 떠나야 하는지 내 마음속에서 울림이 오는 대로 따르는 편인데 카오 타키압에 가는 날 역시 내 마음속에 울림이 왔던 것이다. 카페를 빠져나와 막 출발하려는 썽태우를 가까스로 잡아타고 카오 타키압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막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을 둘러보려고 아주 열심히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을 올라가 다시 한번 사원의 꼭대기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서자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었고 사원 꼭대기에서 수많은 원숭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라는 소개와는 달리 인적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짝거리는 원숭이들의 눈빛과 승려들이 낮은 목소리로 경전을 외우는 소리, 한 번씩 울리는 타악기 소리와 종소리 같은 것들이 낯설게 느껴져 더욱더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지난 수백 년간 외부인에게 한 번도 그 정체를 들키지 않은 사원의 정체를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절대 알고 싶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무서웠다. 사원 꼭대기에 올라가 해가 지는 바다를 우아하게 지켜보겠다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해가 지기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 재빨리 사원을 내려갈까라는 생각을 할 때쯤 내 안에 다시 그 문장이 돌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그 문장이 내 속에 다시 울려 퍼지자 나는 홀린 사람처럼 단숨에 계단을 올라 사원의 꼭대기까지 갔다. 막상 올라가자 걱정과는 달리 원숭이들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평선은 아름다웠다.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어 만다라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경전을 외우는 소리 역시 더욱더 커져서 어떤 절정을 향해 가는 듯했다. 내 안에서 울리던 그 문장 역시 더욱더 크게 울려 퍼졌다.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어떤 문장이 내 속에 오랫동안 맴도는 경우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어떤 까닭으로 그 문장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문장은 나를 이상한 곳으로 인도해 나를 망치려고 했던 걸까? 두려워서 어서 그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과 낯설고 아름다운 것들이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그 풍경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나의 마음을 붙잡고 있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원 꼭대기 삼면에 빙 둘러 놓인 종들을 치며 사원 꼭대기를 한 바퀴 돌았다. 잠시 후 해가 지자 순식간에 사방이 어두워졌고 나는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어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빠른 걸음으로 사원 꼭대기에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는데 언덕 아래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는 올라올 때만 해도 차분하던 개들이 미친 것처럼 날뛰며 짖어대고 있었고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역시 소리를 내어 울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는 여러 마리의 원숭이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함정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는 그 문장이 나를 함정에 빠뜨린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 길로는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사원 쪽으로 다시 되돌아가다가 ‘La Mer’ 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을 보고 그쪽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길을 따라 쭉 내려갔더니 간판에 적힌 것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큰 식당이 있었고 많은 태국 사람들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인가를 발견한 것처럼 기쁜 마음이었다. 아니 실제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인가를 발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설마 옛날이야기에서처럼 이 사람들이 모두 유령은 아니겠지? 후아힌 레스토랑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볼 때는 들어본 적 없는 식당이었지만 딱 봐도 태국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레스토랑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곳에서 식사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겠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리 친절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런 걸 따질 경황이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원숭이와 개들이 너무 많다. 무섭다. 나를 좀 도와줘라.” 그러자 남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한 청년을 불러서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그 후 나에게 웃으면서 저 남자를 따라가라고 이야기했다. 남자가 부른 청년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나는 사장으로 보이는 그 남자에게 정말 고맙다고 나중에 꼭 다시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두 손을 모아 와이를 했다. 나는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청년에게 미안해서 요 언덕 아래 썽태우 종점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청년은 나의 청을 거절하고 나의 숙소를 물어보더니 끝끝내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청년에게 팁을 주려고 했는데 청년은 나를 내려주자마자 ‘바이’라는 인사만 남긴 채 황급히 오토바이에 속력을 내고 사라져 버렸다. 그날 밤 나는 꼭 다시 한번 해 질 녘에 카오 타키압 언덕에 올라 다시 한번 길을 잃고 다시 한번 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La Mer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해야지라고 결심했다. 언젠가 꼭 다시 La Mer 식당에 찾아가 그 사장에게 한 약속을 지키리라.
그리고 일 년 만에 다시 후아힌에 왔다. 매일 같이 카오 타키압 언덕 아래 있는 카오 타키압 해변까지 걷곤 했지만 다시 카오 타키압 사원에 올라가는 것이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 카오 타키압 사원에 갔을 때 그곳에서 새긴 기억이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래도 후아힌을 떠나기 전 한 번은 다시 사원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싶었고 한 번은 꼭 La Mer에 가서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오늘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오후 열심히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후아힌 시내를 벗어나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겨놓은 여행기를 따라 초록색 썽태우를 타고 종점에 내려 라차팍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라차팍 공원은 태국 왕들의 거대한 동상이 있는 곳인데, 거대한 조형물과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망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누군가 남겨놓은 여행기처럼 라차팍 공원은 결코 썽태우 종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뙤약볕이 내려쬐는 오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할 수 없이 한참 길을 걷다 말고 콜택시를 불러 라차팍 공원까지 갔다. 콜택시의 기사는 여자처럼 머리를 기른 꺼터이였다. 택시기사는 공원을 둘러보고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후아힌으로 돌아갈 때도 자신의 차를 이용하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한 뒤 거대한 부지에 조성된 공원을 둘러보았다. 사실 그 거대한 공원에 볼 것이라곤 오직 일곱 왕들의 조각상 밖에 없어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국을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라차팍 공원을 추천하기는 힘들겠지만 인간의 거대한 욕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은 언제나 나에게 큰 영감을 주기에 나에게는 라차팍 공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몇 해 전 서거한 푸미폰 전 국왕의 동상이 세워지면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
왕들의 동상을 충분히 감상한 후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콜택시를 타고 후아힌 시내로 가려다가 문득 일몰 녘의 바다가 보고 싶어 기사에게 카오 타키압 해변에 나를 내려달라고 말했다. 기사는 알겠다고 하며 카오 타키압 해변 쪽으로 차를 돌렸는데 결국 기사가 나를 내려다 준 곳은 카오 타키압 해변이 아니라 카오 타키압 위에 있는 카오 타키압 사원이었다. 나는 해변으로 가자고 했는데 왜 이곳으로 왔냐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 일몰 녘에 다시 카오 타키압 사원을 찾겠다고 했던 결심을 떠올렸다. 그 순간 이 기사가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그 결심을 이행하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처럼 느껴져서 아무 말 없이 기사에게 택시비를 지불하며 고맙다고 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계단을 타고 카오 타키압 사원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갔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다시 찾은 카오 타키압 사원은 전과는 달리 관광을 온 사람들이 많았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노을이 지는 바다는 참 예뻤다. 이제 카오 타키압 사원이 나를 알아보고 환대해주는구나 싶었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일 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천히 카오 타키압 사원을 빠져나와 La Mer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일 년 전에 불쑥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이방인을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줬던 그 사장이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넓은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그가 그 무뚝뚝한 얼굴로 식당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는 작년에 아주 잠깐 마주쳤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태국 현 국왕의 생일이라 공휴일이었던 오늘, 식당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지만 친절한 점원들 덕분에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새우가 먹고 싶어서 구운 새우 1킬로그램과 똠얌꿍 그리고 맥주 두 병과 얼음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오늘 바다가 특별히 예뻤음에도 불구하고 그 바다에게 지지 않는 아름다운 맛이었다. 해가 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내려다보며 먹는 큼직한 생새우 숯불구이와 맥주, 정말로 아름다운 것에는 긴 미사여구가 필요하지 않다. 새우구이를 다 먹은 후 주문한 똠얌꿍에도 아주 커다란 새우가 여러 마리 들어가 있었는데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망고가 질투할 정도로 태어난 후 가장 많은 새우를 즐겁게 먹은 하루였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바다를 보며 새우를 먹고 또 맥주를 추가로 주문해서 마시다가 가게가 마감을 하는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산을 하며 사장에게 작년에도 이곳에 왔었는데 이곳이 정말 다시 오고 싶어서 들렀다고 했더니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장이 이내 아주 친절하게 웃으면서 고맙다면서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감사합니다’라고 꽤 정확한 발음으로 인사를 했다. 여기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몰랐는데 올 때마다 손님이 많은 것 같다고 했더니 사장은 자부심이 가득한 어조로 자신의 가게가 태국에서는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가리키며 태국의 유명인들도 많이 다녀간 곳이라고 했다. 굳이 작년에 고마웠던 일 때문에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대화들을 조금 더 주고받다가 사장이 먼저 차를 가지고 왔냐고 물어봐주어서 카오 타키압 사원에 들렀다가 걸어서 왔다고 했더니 작년과 똑같이 누군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작년과 똑같이 그 청년이 나타났다. 일 년이 지났음에도 앳된 모습 그대로였다.
청년이 운전대를 잡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사장에게 다음에도 꼭 오겠다고 오늘 좋은 음식 줘서 고맙다고 하니 사장이 너무 고맙다고 꼭 다시 오라고 이야기했다. 청년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속도를 내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오토바이를 운전했고 이번에도 역시 썽태우 종점에 내려달라는 나의 청을 거절하고 나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내가 팁을 주기도 전에 쿨하게 ‘바이’라는 인사만을 남긴 채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여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하루였다. 일 년 만에 다시 후아힌에 돌아와 약속을 지키게 해 준 내 삶에 감사한 하루였다. 해가 지기 전에 사원에 가야 한다. 그 문장이 내 속에 맴돈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