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문신

by Gorae

후아힌 소이 하십엣을 걷다가 바버샵과 타투샵을 함께 운영하는 엑스와 눈이 마주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온몸에 문신이 있는 엑스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엑스는 나에게도 문신을 한 번 새겨보라고 권했다. 자신은 프로페셔널이니 멋진 문신을 새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사실 어릴 적 친구가 조직 폭력배들이 하는 문신을 새긴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이후로 문신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태국에 오래 머물다 보니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문신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몸에 새긴다는 것이 조심스럽다. 모든 것들은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인데 내 몸에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달갑지 않다. 만일 문신을 한다고 해도 어떤 것을 내 몸에 새겨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이야기하며 다음에 후아힌에 오면 그때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자 엑스는 자신의 도안을 보여주며 지금 안 해도 괜찮으니 한 번 보기나 하라고 했다. 엑스의 도안 중에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지만 열심히 보는 척을 하고 다음에는 문신을 하거나 이발을 하러 오겠다고 하고 엑스의 샾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도안들을 보고 나니 전에 없던 화두가 생겼다. 만일 문신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것을 몸에 새겨야 할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후아힌 소이 하십엣을 조금 더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남아있는 일정을 정리해보았다. 곧 아버지의 생신이라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해마다 아버지의 생신에는 펜션을 예약해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후아힌에 조금 더 머물고 싶고 카오 삼러이욧에도 다녀오고 싶다. 방콕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부산에 계신 아버지는 작년에 서울에서 수술을 받으신 뒤 일 년에 서너 번은 서울에 있는 병원에 와서 검진을 받으신다.

내가 네 살 때부터 사진관을 하셨던 아버지는 삼십여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여셨고 아침에 일어나시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다녀오셨다. 어릴 적에는 일만 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장남으로써 고모와 삼촌들까지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다 그랬다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아버지는 삼십 년 넘게 운영하셨던 사진관 문을 닫고 은퇴하신 후에는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셨고 서예와 인터넷 등을 배우고 계신다. 시니어 센터에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영상편집 강의도 하시고 구립 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책을 빌린 구민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하셨다. 젊고 힘이 넘쳤던 시절의 아버지보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내시는 요즘의 아버지가 더 즐거워 보인다. 아버지도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으셨지만 가족들을 위해 참고 희생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프신 뒤로는 한국을 떠나 있을 때마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행히 건강관리를 너무도 잘하신 아버지는 금방 건강을 회복하셨고 수술 후 급격하게 빠졌던 체중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대단한 자기 관리가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내가 한국을 떠나 태국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이 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계속 아프셨다면 이렇게 외국에 머물며 일에 몰두하는 것은 힘들었으리라. 예전에는 늘 혼자 있는 게 좋았고 가족들의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던 나였지만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난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하다. 가족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어릴 적 꿈꾸던 대로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머물 때는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가 있으려고 노력하고 서울에 사는 누나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들려 조카들과 놀아준다. 이제 조카들이 제법 커서 함께 탁구를 치거나 캐치볼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조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그런 까닭으로 아버지 생신 축하 모임에도 꼭 참석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입국 날짜를 정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아직 일할 것이 남았으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하셨다. 어차피 곧 있을 추석 때도 만날 테니 멀리에서 굳이 무리하지 말고 일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도 이제 내가 이곳에서 단순히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계시기에 하신 말씀 이리라. 나는 일정을 정리해보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늘 유쾌하고 밝으신 분이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늘 눈물이 난다. 아버지 또한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셨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스무 살에 시집을 온 어머니의 희생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자식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죄송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난다. 태국에 머물 때는 종종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곤 하는데 그날에는 온종일 어머니에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하곤 한다. 사실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한국을 떠나 있으면 매 순간 부모님을 생각한다. 태국 사람들의 자식사랑이나 부모님에 대한 마음 또한 우리 못지않게 특별한데 특히 부모님을 돕기 위해 노점이나 가게에서 일을 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기특한 마음과 함께 나 또한 부모님 곁에서 더 오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머니의 전화를 끊은 후 일정을 정리해보니 아버지 생신에 참석하기 위해 무리해서 스케줄을 짠 건 사실이다. 아직 에세이를 쓰기 위해 태국에 머물며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지금 한국에 들어가면 남아있는 에세이를 잘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것 또한 맞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게 일을 하느라 방콕과 후아힌에서 만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 생신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입국 항공편을 바꿀 수나 있을까? 지금은 휴가철인데? 바로 항공사에 전화를 해서 문의하니 팔월에도 대부분의 날짜에 추가 요금 없이 항공편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태국에 조금 더 머물며 일을 할 것인가? 아버지의 생신에 참석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무지 결론이 나질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후아힌 소이 하십엣에서 숙소로 돌아오면서 사온 카우니 여우 마무앙 ( 태국 사람들이 디저트로 먹는 망고 찰밥 )을 꺼내 먹었다. 애매할 땐 그냥 망고다.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자라온 아이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반대하던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끝끝내 고집을 부려 서울로 갔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몇 년 동안이나 안정적인 돈벌이를 하지 못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다. 그리고 지금도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다. 외국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니 늘 부모님께는 죄송스럽다. 그리고 요즘 부모님의 제일 큰 소원은 내가 어서 결혼해서 손주를 보는 것인데 나는 여전히 결혼 생각이 없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지만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진다면 그것 또한 부모님이 원하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혼자 살 거다. 어느 쪽이든 일장일단이 있겠지.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지만 때로는 현명한 이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다툰 적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셨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살고 그런 모습을 부모님 곁에서 수시로 보여드리면 부모님은 만족해하셨다. 부모님의 욕망대로 사는 것보다는 나의 욕망대로 잘 사는 것이 결국에는 부모님에게 더 큰 행복을 드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플라스틱 박스에 담긴 카우니 여우 마무앙 두 개를 모두 비우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올해 아버지 생신 모임에는 가지 않고 이곳에서 열심히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대신 추석 때는 일찍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어머니께서는 워낙 많은 가족들이 모이니 와도 정신없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고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오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은 뒤 항공사에 전화해 입국 항공편을 변경하고 숙소를 연장했다. 후아힌에 조금 더 머물기로 한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시기니 일 잘 마무리하고 몇 주 후 부산에 내려가 부모님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는 걸로 일정을 조절했다. 그러고 나니 조급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겨서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


숙소 근처에서 길을 건너 무작정 해변을 걷다 보니 다시 소이 하십엣까지 갔다. 온 김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 반길왕에 앉아 바다를 보며 좀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그쪽을 향해 가다가 엑스와 다시 마주쳤다. 웃으며 엑스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문득 내가 새겨야 할 문신의 형상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이름을 영어단어 하나로 표현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그림으로 표현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고래 한 마리를 그려 넣는 것이었다. 당장 엑스의 샵으로 갈까 하다가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떠올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반길왕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보는 내내 문신이 새겨진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인데 그 생각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이곳에 머물며 조금 더 오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언제나 여행에서 가장 바라는 일은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포기하는 일이다.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포기한 건 아니고 일정을 미룬 것이긴 하지만 후아힌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곧 문신을 새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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