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할 때에는 괜히 평소에 하지도 않던 이불빨래가 하고 싶어 지고 아홉 시 뉴스마저 너무 재밌어서 넋을 놓고 보게 된다. 평소 보지도 않던 일일드라마에 빠져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도 하고 늘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냉동실의 성에가 몸서리쳐질 정도로 거슬러 아닌 밤중에 냉동실의 성에를 제거하는 이상한 짓을 하기도 한다. 후아힌에 와서도 급한 원고 몇 개를 넘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마감을 하던 중 후아힌에 대해 검색하다가 후아힌 아래 프란 부리에 있는 국립공원 카오삼러이욧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보다가 그곳에 빠져들어 버렸다. 태국인들이 신성시하는 태국 최초의 국립공원, 아름다운 동굴과 람사르 늪지, 고요한 해변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알고 보니 후아힌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일일투어로 많이 다녀오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후아힌이 두 번째 방문인데도 그제야 겨우 그곳을 알았다. 평소 여행지에 대해 미리 정보를 취득하고 떠나는 대신 그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나의 게으른 여행 스타일 덕분에 그 유명한 국립공원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마 마감에 쫓겨 괴로운 상태여서 현실 도피하듯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카오삼러이욧의 존재를 모르고 돌아갔으리라. 하지만 그제라도 그 아름다운 곳을 알았으니 당장 그곳에 가고 싶었다. 나는 결심했다. 그래, 그 아름답고 광활한 곳을 향해 떠나는 거야! 낯선 풍경은 늘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곤 했었잖아! 그런데 왜 그런 결심을 급하게 마감을 해야 하는 원고를 앞에 놓고 하고 있었던 걸까? 어쨌거나 알아보니 후아힌에서 그곳에 다녀오려면 왕복 택시비를 이천 바트 이상 내야 한단다. 게다가 이천 바트 이상을 주고 택시를 대절해도 내가 보고 싶은 곳은 다 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로컬 사람들이 그곳에 다녀오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후아힌 시내로 나가면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급한 마감 중에 했던 거냐고? 여행을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길 건너에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바다를 두고도 일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도시에 머물며 일을 하는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을 아주 좋아하지만 가끔 일 때문에 너무 마음이 급해질 때는 그냥 한국에서 조금 더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SNS에는 좋아하는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첫사랑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뛰는 일이다라는 투의 허세 가득한 글을 남기고 있지만 세상에 완벽한 삶이란 없는 것이다.
마감까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카페에서 원고를 쓸 수 있지만 마감이 코앞일 때는 집 안에 틀어박혀 울면서 원고를 쓰는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방콕에서도, 치앙마이에서도, 크라비에서도 원고를 빨리 쓰지 못하는 한심한 나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속옷만 입고 울면서 원고를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튼 카오삼러이욧에 대해 알게 된 그날도 온종일 울면서 애니메이션 대본을 수정해서 보냈고 감독님에게 오케이를 받은 후에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카오삼러이욧만 검색해보지 않았어도 빨리 원고를 넘기고 내가 좋아하는 'Oceanside beach club'에서 일몰 녘의 바다를 보면서 낭만 가득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늘 그렇게 반성을 해보지만 마감이 돌아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심함 측정기가 있어서 나의 한심함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은 일 등급일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어서도 변함없이 한심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쉰 살이 되고 예순 살이 되어서도 울면서 원고를 쓴다면 그것은 참 한심하고 참 귀여운 일 아닌가. 쉰 살이 되면 연애소설을 써야지. 바닷가에서 연애소설을 쓰는 할아버지로 늙어 가야지. 울면서 오래오래 한심한 글을 써야지. 아무튼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썽태우를 타고 나이트 마켓으로 갔다.
요 며칠 자주 가서 안면을 튼 사장이 있는 카우카무 식당으로 가서 카우카무와 안찬음료 한 잔을 주문하고 여사장 꿍에게 프란부리로 가는 버스는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후아힌 시계탑 앞에서 기다리면 단 돈 삼십바트로 후아힌에서 프란부리로 가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단 프란부리에 가면 카오삼러이욧으로 가는 납짱이나 썽태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단다. 역시 있었어! 이렇게 로컬 사람들이 아는 정보를 취득할 때면 아마존 동굴 사원에서 어렵사리 발견한 보물상자의 열쇠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 여덟 시쯤 후아힌 시계탑에서 기다리면 첫 차를 탈 수 있다고 하니 오늘은 빨리 들어가서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며 그날의 첫 끼였던 카우카무를 맛있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꿍이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카메라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태국여행과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동안 후아인 여행기를 올렸던 한국 노부부의 사진이었다. 꿍이 이 사람들을 아냐고 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나의 가게를 소개해 준 이후로 벌써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 다들 우리 집의 카우카무를 아주 좋아했다. 이제 우리 집은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맛집이 될 거다. 꿍이 너무 기대에 부풀어 있어서 한 마디를 해줬다. 그런데 후아힌에는 한국인들 많이 안 오는데? 그러자 꿍은 지금은 비수기라서 그렇다고 날씨가 맑아지는 건기가 오면 한국인들이 엄청 많이 올 거라고 부푼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방콕 출신의 꿍은 방콕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맛집들이 돈을 쓸어 담는 걸 알고 있다면서 자신의 가게도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뭐할 거냐고 물으니 한국 가서 성형수술을 할 거란다. 참 솔직해서 귀여운 태국 사람들. 꿍이 나에게도 SNS에 자기 가게의 사진을 올리라고 해서 꼭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다. 꿍의 가게가 나이트 마켓 근처에 있는 데다가 새벽까지 영업을 하니 후아힌을 여행할 일이 있을 때 알아두면 여러모로 좋은 식당인 것은 맞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대박 맛집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니 그게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카우카무를 먹고 금방 숙소로 돌아가 자려고 했는데 꿍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시간이 한참 지나가 버렸다. 꿍의 가게를 빠져나오니 이미 마지막 썽태우가 떠난 뒤였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 택시 기사 납 짱을 만나기 위해 나이트 마켓을 한 바퀴 돌다가 얼마 전 발마사지를 시원하게 해 준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마사지를 아주 잘해주시고 친절하기도 하셔서 그때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주머니가 발마사지를 받고 가라고 해서 그것을 또 뿌리치지 못했다. 아 이러면 일찍 자기는 틀렸는데. 그런데 그날도 역시 이 아주머니의 발마사지는 정말 최고였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낮은 비명과 함께 이제껏 마감으로 인해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를 소멸시켜 주는 것 같은 마사지였다. 아주머니는 타노스 (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에 나오는 악당 )처럼 스트레스를 소멸시켜주는 신비한 장갑이라도 끼고 있는 건가?
결국 집에 돌아오니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하니 한 시가 넘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프란부리에 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마감하느라 놓쳤던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새 글도 확인하고 일 때문에 온 메일들도 확인하니 어느새 시간이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겼다. 억지로 잠을 청해서 겨우겨우 잠이 들었고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 여덟 시였다. 그런데 막상 프란부리로 가려니 너무 귀찮았다. 그냥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은 후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가 일몰 녘에 바다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아니 어제 마감을 할 때만 해도 카오삼러이욧을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마음이 이렇게 변하다니. 인간이란 정말로 간사하구나. 에이, 몰라. 내일 가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결국 점심때쯤 일어나 내가 원했던 코스대로 하루를 보냈다. 행복한 하루였다. 그날은 ‘편안한 마음으로 일찍 잔 뒤 내일은 꼭 프란부리행 버스를 꼭 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전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날 역시 일찍 잠들지는 못했다. 그날 밤에는 한국에 있는 선배 작가에게 흥미로운 내용의 메시지가 와서 통화를 하느라 새벽녘에 잠을 청했고 결국 다음 날에도 프란 부리행 버스에 몸을 싣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그 밤에는 갑자기 태국의 역사에 큰 흥미가 생겨 밤새 태국 역사에 관한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보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결국 그 밤이 지난 다음날 역시 프란부리행 버스에 몸을 싣지 못했다. 그리고 또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겠다.
마감 때만 일어나는 욕망이란 것이 있는 걸까? 마감을 할 때에는 그렇게 가고 싶었던 카오삼러이욧이었는데, 마감이 끝나고 나니 ‘내가 행복한대로 후아힌을 즐기면 되는 거지 남들이 간다고 그곳에 꼭 가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너무너무 게으른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후아힌에 있는 나는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싶었다. 다시 울면서 마감을 하는 날이 오면 카오삼러이욧이 너무 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