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함께 연극을 했던 나무 씨가 방콕에 왔다. 나무 씨는 내가 어린 시절 나고 자란 부산을 떠나 극작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을 때 만난 선배였다. 늘 우리가 연극 연습을 하고 있으면 간식을 잔뜩 사 가지고 나타나거나 기말 공연이 끝나면 어디선가 나타나 술값을 계산하고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늘 삐딱하기만 해서 친구가 없었던 나와는 달리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여자아이들이 그에게 편지를 주거나 음료를 사물함에 놓고 가는 걸 자주 목격했다. 남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해서 늘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매너가 좋은 그를 많이 따르고 존경했다.
나무 씨도 일이 있으니 아주 오래 이곳에 있을 수는 없지만 일단 지금은 같은 콘도 단지 안에 편한 친구가 산다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다. 이제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해서 이렇게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서울도 아닌 방콕에서 같은 콘도 단지 안에 친구가 머물며 함께 여유를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나무 씨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학교를 졸업한 다른 선배들처럼 그 역시 졸업을 하면 곧 유명한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늘 기말 작품의 주연은 그였다. 나무 씨와는 잠시 함께 산 적도 있고 함께 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친구였다. 우리는 기말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늘 어두운 무대 뒤편에 앉아 기말 공연이 끝나면 무엇을 해볼까 궁리하곤 했다. 지리산을 함께 오르면서 다시는 산으로 여행을 오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었고 제주를 함께 가기도 했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그 어두운 무대 뒤편이 세상의 모든 우주였는데 그곳이 설레면서도 참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것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쓴 게 아니고 연극을 하고 싶어서 연극을 한 게 아니었다. 글을 쓸 수밖에 없어서 글을 썼고 연극을 할 수밖에 없어서 연극을 했다. 언젠가 교수님 작품을 도우면서 나무 씨와 나는 엑스트라로 교수님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본 예술의 전당 무대 뒤편은 아주 광활하게 느껴졌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날만큼 우주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나무 씨는 별을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날 그곳에서 우리는 별을 볼 수 있었다.
나무 씨는 졸업 후 배우의 꿈을 포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가 없을 때라 아주 가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곤 했다. 그곳에서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는데 당시에만 해도 여행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십 대 후반의 나는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사는 것이 뭐가 그렇게 행복한 거지라는 의문만 들뿐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배우의 꿈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당시의 나는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어서 어서 빨리 공장을 그만두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국 생활을 아주 만족스러워하던 나무 씨는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과 결혼을 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배우의 꿈을 포기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직장생활도 탄탄대로였다. 대학시절에 나와 다른 친구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고 있어도 교수님들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는데 나무 씨는 일을 하지 않고 있어도 교수님들에게 “힘들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라는 말을 듣곤 했던 걸 생각해보면 당연히 회사생활도 잘할 것 같았다. 그는 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다. 그 역시 나처럼 견디지 못하는 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쨌거나 나무 씨가 한국에 있으니 종종 그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 시절이 너무 힘들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대학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는데 나무 씨는 졸업을 한 후에도 거의 유일하게 만나던 학교 사람이었다. 그는 배우로 무대 위에 서있던 시절도 좋았지만 중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업을 준비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났다가 몇 해 전 그가 연락이 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나도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었던 시절이라 애써 그를 수소문해 찾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그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회사일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제주에 있으니 한 번 놀러 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궁금했지만 자세히 묻지는 않았고 나무 씨가 조금이라도 이겨내고 마음이 좋아졌으니 연락한 것이라 믿어서 기뻤다.
그 후 그를 보기 위해 몇 번 제주로 내려가서 그가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머물곤 했는데 제주에서도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주말 밤 서귀포로 드라이브를 다녀오던 중 그는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으니 중국에서 공부를 좀 하고 와야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은 어떡할 거냐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가족들이 함께 가서 살 거라고 했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나무 씨처럼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정한 가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이런 결정을 했을 정도면 그가 얼마나 한국에서 지쳤고 중국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기 전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 나무 씨의 오피스텔이 있는 신제주로 돌아오기 위해 천백도로를 달리다 말고 차를 세워 한참 동안 별을 바라보았다. 바람도 많고 별도 많은 그런 밤이었다. 지나치게 어두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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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무 씨는 중국 쿤밍에서 트러플 버섯과 보이차를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업이 꽤 자리를 잡아서 곧 가족들도 중국으로 들어가 다 함께 살 거라고 한다. 지금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기 위해 방콕에 잠시 들른 것이다. 나무 씨는 숙박 공유 사이트를 통해 내가 사는 콘도 단지 내의 한 집을 단기 임대했다. 함께 일광욕을 하면서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루프탑 바에 가서 일몰도 바라보고 혼자 가는 것이 불편하던 레스토랑들도 함께 가고. 친구와 함께 하니 내가 방콕에서 누렸던 그런 사소한 일상이 모두 감동이고 추억이다. 우리는 다시 우주를 만나게 되었다.
나무 씨가 결혼한 이후 나무 씨와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적 꿈꾸었던 풍경보다 훨씬 더 멋진 풍경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 방콕에 와서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고 나무 씨가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삶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은 늘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아주 때때로 삶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부피의 행복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러니 끝까지 한 번 살아볼 일이다.
며칠 전 밤의 수영장에서 고요하게 수영을 하던 중 나무 씨가 별이 보인다고 했다.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방콕에서 별이 보일 리가 없는데 그날은 정말 별처럼 반짝거리는 것들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학창 시절, 우리가 보았던 모든 우주였던 무대를 떠난 뒤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다시 우주를 가까이에서 느끼는 삶을 살고 있다. 견디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내 마음속에서 나를 부르는 것에 귀를 기울이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무 씨에게 메시지가 왔다. 원고를 다 쓰면 수영장으로 내려오라고. 오늘도 우리는 방콕에서 별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우주를 가까이에서 느끼는 삶이다. 방콕에서 내 마음은 늘 중력을 거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