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닮은 맛, 똠얌꿍

by Gorae

한국 드라마에 빠져 한국 여행을 결심하게 된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자장면이나 김치찌개, 삼겹살을 처음 먹어보는 순간이 중요한 것처럼 태국여행에서 똠얌꿍을 처음 먹어보는 순간은 참 중요하다. 우리의 김치찌개나 자장면, 삼겹살이 한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소울푸드인 것처럼 태국을 대표하는 소울푸드는 역시 똠얌꿍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똠얌꿍을 먹어보았는가? 똠얌꿍을 먹어보았다면 처음 먹어본 것이 언제 어디서 였는가?

내가 똠얌꿍을 처음 먹어본 건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쯤 스쿰빗 어느 골목에 있던 야간영업을 하던 레스토랑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방콕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했는데,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에 있던 무리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술을 마시던 중 야식을 먹으러 갈 거라고 해서 그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야식을 먹을 식당으로 갔다. 물론 야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따라간 건 아니었고 그 친구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워서 따라간 거다. 술자리를 파하자고 결정한 것도 술자리를 파하고 어디를 갈 것인가를 결정한 것도 무리 중 가장 어린 여자아이였는데 남자들은 그저 그 여자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씩씩한 여자애를 보는 것도 순박하고 다정한 태국 남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모두 다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스쿰빗의 골목, 골목을 헤친 끝에 도착한 곳은 반점飯店처럼 보이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주인이 화교라 온통 붉은 장식을 해놓았을 뿐 태국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똠얌꿍을 먹었다. 지금도 똠얌꿍을 처음 접한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난다. 야심한 밤에 어두운 골목, 골목을 헤치고 도착한 작은 식당에서 생전 처음 만나본 낯선 맛, 낯선 음식. 똠얌꿍을 이미 먹어본 사람들에게 악평을 익히 들었던지라 맛이 이상하다고 해도 태국 친구들에게 내색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을 하고 먹었는데 첫 숟갈부터 너무 맛있었다. 마치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가 “그냥 편하게 만나봐”라고 해서 큰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너무도 이야기가 잘 통하고 매력 있는 상대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지금처럼 태국에 오래 머물 때가 아니라 처음으로 똠얌꿍을 먹어본 그 여행으로부터 일 년이 지나서야 다시 태국에 갈 수 있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때 만났던 태국 친구들과는 소식이 끊겨버렸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일 년에 두세 달은 유럽이나 남미, 뉴욕 같은 곳들을 여행하던 시기라 내가 이렇게 태국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고 방콕이라는 한 도시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게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여행을 열심히 다녀보니 전 세계를 통틀어 방콕 같은 곳은 방콕 밖에 없더라. 아무튼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방콕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똠얌꿍을 소개해줬던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없었고 스쿰빗 어느 골목에 있었던 밤에 영업을 하던 그 작은 식당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붉은색의 ‘복(福)’자 스티커를 거꾸로 붙여놓은 그 식당 입구의 풍경과 그곳에서 먹었던 똠얌꿍의 맛이 떠오른다. 그 식당이 사라진 게 아니라면 그동안 내가 못 찾았을 리는 없었을 텐데. 물론 그 식당이 아니라고 해도 똠얌꿍을 잘하는 식당들은 태국 전역에 많지만 첫 경험이란 늘 몸과 마음에 오래 남아있기 마련이라 그 식당의 행방이 늘 궁금하다.


똠얌꿍을 일컬어 혹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맛이 다 들어가 있는 스프라 고도한다. 라임과 레몬글라스, 태국 고추와 피시소스 등이 들어가 맵고 달고 짜고 신 맛이 나다가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 있어 종국에는 담백한 맛이 나는 수프 똠얌꿍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 보이는 태국과도 닮았다. 태국 남부에는 푸껫이나 크라비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힐링 휴양지들도 있고 북부 지방으로 가면 여전히 백 년 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과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와 달리 수도 방콕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이 혼란스럽거나 아름답게 뒤섞여 있고 럭셔리한 것들과 로컬스러운 것들이 공존하며 온갖 욕망들이 꿈틀대는 곳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풍경을 지닌 요지경 태국과 세상 온갖 맛들이 담겨있는 태국인들의 소울푸드 똠얌꿍은 서로 참 많이 닮았다.


태국어로 똠은 ‘끓이다’라는 뜻이고 얌은 ‘새콤한 맛’을 뜻한다. 그리고 ‘꿍’은 새우다. 똠얌 수프에 새우를 넣으면 ‘똠얌꿍’이 되고 닭고기를 넣으면 ‘똠얌 카이’가 된다. 똠얌 수프에 생선살이나 돼지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마치 김치찌개에도 돼지 목살 김치찌개, 꽁치김치찌개 혹은 참치김치찌개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똠얌 수프도 여러 종류다. 그렇지만 역시 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똠얌꿍이다. 똠얌꿍에서 신 맛과 매운맛, 단 맛이 나는 것은 태국 고추와 레몬 글라스, 라임, 코코넛 밀크, 피시소스 등의 재료 덕분인데 한국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들이지만 이 맛에 적응하면 금단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똠얌꿍을 특별히 맛있게 먹은 곳을 떠올려보면 크라비 타운에 있는 레스토랑 ‘Anchalee'가 기억에 남는다. 후아힌 카오 타키압 사원 아래 있는 식당 ’La mer‘에서는 해산물 레스토랑답게 아주 커다란 새우를 여러 마리 넣은 똠얌꿍을 주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방콕에서도 여러 군데에서 똠얌꿍을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태국 여자와 데이트를 할 때에는 꼭 똠얌꿍을 먹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태국 음식을 잘 먹는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나 보다.


요즘 방콕에서 똠얌꿍을 먹고 싶을 때는 주로 쏘이 찬에 있는 ‘Hia Wan Khao Tom Pla'라는 식당에 들른다. 이곳은 미슐랭 밥 구르밍에 선정된 적도 있는 로컬 맛집이다. 이곳에서는 큼지막한 새우 다섯 마리가 들어가 있는 똠얌꿍이 150바트 정도로 저렴하지만 맛은 고급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는다.

똠얌꿍에 익숙해졌다면 똠얌 수프로 맛을 낸 태국식 쌀국수 꾸웨이띠여우똠얌에도 도전해보라. 매운 꾸웨띠여우똠얌에 토핑으로 곁들여 먹는 바삭한 튀김과자 끼여우 텃을 더하면 한국 인스턴트 라면의 매운맛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맛과 식감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한 번 맛보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그 맛을 나는 지옥의 맛이라고 부른다.


꾸웨이띠여우똠얌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쌀국수 레스토랑 룽르엉에도 있지만 시간이 허락되는 방콕 여행자들에게는 비티에스 우돔숙 역 앞에 있는 시암 상업 은행 - 우돔숙 역 3번 출구로 내려와 왼쪽으로 걷다 보면 영어로 Siam Commercial Bank 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보일 것이다 - 방나 지점 앞에 매일 밤마다 열리는 노점에서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꾸웨이띠여우똠얌을 먹어보면 내가 왜 그 맛을 지옥의 맛이라고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치앙마이 대학 정문 앞, 태국어로 랑머라고 부르는 지역에 있는 말린 플라자 안쪽에 있는 식당 'Chiangmai egg noodle'에서 맛있는 꾸웨이띠여우똠얌을 먹을 수 있다.


사랑의 맛, 인생의 맛, 똠얌꿍. 사랑처럼 시고 달며 인생처럼 짜고 매운 꾸웨이띠여우똠얌. 이 맛을 좋아하게 된다면 당신은 분명 당신의 인생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반드시 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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