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사진사를 하는 친구 위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촌농시 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단다. 촌농시 역은 내가 자주 들르는 대만 레스토랑 ‘용해 두장’이 있는 곳이고 후아힌에서 방콕으로 돌아와 한 달 단기로 임대한 지금의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방콕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그간에는 주로 태국 남부에서 암약하는 이슬람 세력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다. 몇 해 전에는 방콕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시암 한복판에 있는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적도 있고 후아힌에서도 폭탄이 터져 몇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몇 해 전 에라완 사원에서 폭탄이 터지던 시간에 나는 그곳으로부터 3800킬로미터 떨어진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머나먼 방콕에서 폭탄이 터지던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했던 카페 안에서 글을 쓰다 말고 내 속에서 울려 퍼지는 어떤 파장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 순간에는 그게 방콕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증상은 엘 칼라파테를 여행할 때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빙하의 풍경을 보고 압도된 이후로 종종 나에게 일어나는 증상이었기 때문에 그냥 여느 때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큰 빙하가 녹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뉴스를 확인해보니 내 마음에 파장이 일어난 시간은 방콕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시간과 일치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뉴스와 방콕에 사는 친구들의 SNS를 통해 방콕의 소식을 유심히 들었다. 다행히 큰 부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량한 태국 사람들을 위협하는 테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었다. 도시 전역에 긴장감이 가득할 방콕의 거리 곳곳을 상상하고 또 그리워하며.
그런데 이번에는 방콕에 머무는 와중에 폭탄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내가 후아힌에서 방콕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좋지 않다. 탁구공만 한 작은 폭탄이 촌농시 역을 비롯한 방콕 몇 군데에서 연쇄적으로 터졌고 경미한 부상자가 나온 게 다라고는 하지만 더 큰 테러가 일어날까 봐 도시 전역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방콕에 사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니 다들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을 한다. 몇 주 만에 방콕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숙소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려고 하니 방콕에 사는 친구들이 일만 마치면 집으로 갈 거라는 둥 도로와 역 곳곳에 경찰들이 나와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내 신경이 쓰인다. 티브이를 트니 태국 방송국에서는 연일 폭탄테러와 관련된 속보를 내보내고 있다. 압박감과 강박감이 생기는 시간이다.
물론 태국은 왕권이 강한 국가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곳이라 치안이 확실한 나라긴 하다. 더군다나 방콕이라는 도시는 전 세계의 많은 자본가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그들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있게끔 그냥 놔두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아직 태국을 와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나의 글 때문에 태국의 치안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지 말라고 곳만 가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만 하지 않으면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그런데 방콕은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오고 가는 도시인 것도 사실이라 이런 테러 소식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곳은 한국처럼 단일민족이 사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들이 부딪히는 곳이고 현지인들과 낯선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아무리 통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아주 촘촘하게 통제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사실 최근 굳이 폭탄테러가 아니더라도 태국에서 지내는 것에 압박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방콕의 물가가 쉼 없이 오르고 있던 와중에 환율 또한 갑작스럽게 너무 많이 올라버린 것이 결정타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백 바트를 바꾸는데 삼천 이백 원 정도가 필요해 백 바트를 대충 삼천 원으로 계산했는데 지금은 백 바트를 바꾸는데 삼천구백 원에서 사천 원 정도가 들어가 백 바트를 사천 원으로 계산해야 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물가가 삼십 퍼센트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환율이 이렇게 오른 이유는 원화가 약세인 것도 있지만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중국과 일본이 태국, 특히 방콕에 투자를 많이 해서 그런 것도 있다. 단순히 원화 약세가 이유라면 환율이 예전처럼 백 바트 삼천 이백 원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기에 앞으로도 환율 전망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서 요즘 태국 생활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다. 태국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부담 없는 물가도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태국의 물가, 특히 방콕의 물가를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간혹 카오산 로드에서 사오십 바트짜리 팟타이나 쌀국수를 먹고 방콕의 물가가 정말 싸다고 하는 단기 여행객들도 있다. 물론 길거리에서 사십 바트짜리 쌀국수만 먹고 살아가면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겠지만 방콕을 며칠 여행하는 배낭여행객도 아닌데 어찌 그것만 먹고살 수 있겠는가? 서울에서도 라면이나 잔치국수만 먹으면서 살면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칠천 원에서 만 원 사이의 백반이나 음식을 시키면 여러 가지 반찬들과 물이 공짜라 음식 하나만으로도 배가 차지만 태국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면 그 음식 하나만 나오고 음료는 따로 주문해야 한다. 태국은 음식 양도 아주 작고 재료 상태나 식당의 위생상태도 비슷한 가격의 한국식당과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환율이 오르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환율이 오른 요즘 음식에 대한 가성비를 따져보니 한국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먹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환율이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마사지나 고급 호텔 레스토랑과 루프탑 바 그리고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 렌트 비용 같은 것들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해 같은 값이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그것은 또 한국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지출이 여기서는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나는 서울에 머물 때보다 방콕에 머물 때 훨씬 더 많은 돈을 쓴다. 물론 요즘 서울에 머물 때는 집에만 머물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무튼 방콕은 소비를 부추기는 도시라는 거다. 그런저런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 방콕에 머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폭탄 테러까지 터져 어쩐지 마음에 더욱더 압박감이 들었던 것이다.
왜 좋았던 모든 것들은 변하고 또 사라지는 걸까?
사랑은 변하거나 사라지고야 만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방콕에서 그 옛날처럼 행복하게 지내려면 더욱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다시 중요한 시기가 왔다. 사랑에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연일 폭탄테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태국 방송의 뉴스를 끈 후 잠시 생각을 정리한다. 한국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가서 바쁜 일들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시 방콕에 와야겠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와야겠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나이는 지났다. 사랑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일에 조금 더 집중을 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방콕에 와야겠다. 내 SNS 계정에 자주 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내가 방콕에서 마냥 행복한 줄 알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방콕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싶어서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태어난 곳을 떠나 이방인으로 사는 다른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일 거다.
온종일 변해가는 방콕의 모습에 이곳을 영원히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다가 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자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새벽 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제야 저녁을 먹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고 배가 고팠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의 편의점으로 가 조리가 된 음식들을 몇 개 산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를 향해 올라가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콘도의 엘리베이터는 인식기에 키 카드를 대면 자신이 머무는 층의 버튼만 활성화되는 시스템인데 키 카드를 여러 번 다시 인식기에 대어 봐도 인식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하던 중 내가 탄 엘리베이터에 유럽인으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들어와 십칠 층을 눌러서 우선 십칠 층까지는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린 후에도 나의 키 카드는 인식이 되지 않았다. 조금 더 실랑이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내려서 생각을 하자고 ‘문열림’ 표시가 되어있는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당혹감이 밀려왔다. 버튼을 누르고 또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키 카드 역시 인식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일이 생길 거라고 종종 상상하곤 했지만 그게 방콕에서 일 줄은, 폭탄테러를 처음으로 겪은 오늘일 줄은 몰랐다. 잠시 공황장애 증상이 일어나려고 했다. 까마득히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마도 긴 시간이 아니었을 거고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니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만 했다. 깊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호흡을 가다듬은 뒤 경비실을 호출하는 버튼을 눌렀다. 경비가 받지 않는다. 한 번, 다시 한번!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일 분, 일 초가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경비가 호출을 받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엘리베이터는 다시 일 층을 향해 움직였다. 일 층으로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비가 나에게 키 카드를 보여달라고 했다. 키 카드가 보여줬더니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키 카드에 금이 가서 오류가 생긴 것 같다며 내일 아침 콘도 오피스에서 교환을 하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로 키 카드에 금이 가있었다. 경비는 자신의 키 카드로 엘리베이터를 가동해 내가 머무는 이십오 층까지 데려다주었다.
폭탄 테러가 터지던 날, 엘리베이터에 갇혀도 보고. 방콕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이 계속 늘어난다. 그래도 이 사랑을 지키고 싶다. 폭탄이 터지고 순식간에 가지고 있던 돈의 가치가 삼십 퍼센트나 떨어졌고 엘리베이터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참 많은 행복을 주었던 방콕에서의 삶을 지키고 싶다. 세상 모든 것들은 변한다. 사랑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환율이 나빠지거나 테러가 일어나는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다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일만은 없도록 내일 아침에는 꼭 키 카드를 교체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곧 한국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