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후아힌에 왕실의 별장을 지은 뒤 왕족들은 후아힌에 갈 때마다 해변에서 승마를 즐기곤 했는데 지금도 후아힌 해변에 가면 승마를 하는 태국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해변에서 승마를 하면서 잠시 자신도 왕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는 것일까? 태국 사람들은 왕실에서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당연히 왕족들이 하는 일은 태국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방콕에 수준급의 재즈바들이 많은 것도 왕족들의 영향이 크다. 20세기 초반 해외 유학을 다녀온 왕족들이 재즈에 심취하면서 태국 국민들도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태국 국민들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푸미폰 전 국왕은 직접 색소폰을 들고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자주 보여주었고 여러 곡의 재즈음악을 작곡하기도 해 재즈가 태국에 전파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취미로 재즈를 즐기는 애호가였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푸미폰 전 국왕은 단순히 재즈 애호가였던 국왕이 아니라 국왕인 동시에 프로 재즈 뮤지션이었다. 그는 베니 굿맨, 라이어넬 햄프턴, 스탠 게츠 같은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고 그가 작곡했던 ‘촛불 블루스’, ‘해 질 녘의 사랑’, ‘비가 내리네’ 같은 곡들은 서구 재즈 뮤지션들의 음반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푸미폰 전 국왕의 생일은 12월 5일로 나와 생일이 같은데 태국 왕실은 해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생일 즈음이면 전 세계의 유명한 재즈 연주자들을 불러 재즈 페스티벌을 열곤 한다.
방콕에는 카오산 인근에 위치한 'Brown sugar',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의 'Bamboo bar', 스쿰빗 쉐라톤 그랑데 호텔의 'Living room' 그리고 대학에서 재즈를 가르치는 교수가 운영하는 ‘Jazz happens' 등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주는 재즈바들이 여러 군데 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몹시 사랑하는 ‘Saxophone'이라는 유명한 라이브 펍도 있다. 나 역시도 방콕을 알아가기 시작하던 시점에는 이 바에 자주 들락거리곤 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볼 때면 많은 태국 사람들은 푸미폰 전 국왕을 떠올리곤 하는데 실제로 이 색소폰이라는 바의 실내에는 다양한 톤으로 그려진 그의 초상화가 여러 점 걸려있어 푸미폰 전 국왕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바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색소폰은 주로 재즈와 블루스 연주자들이 나와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유명한 팝송 등을 연주하는 곳인데 사람들은 이 펍을 흔히 재즈바라고 불렀다. 재즈를 한참 좋아하던 시절에는 색소폰을 재즈바라 부르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재즈바에서는 ‘소니 롤린스’나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만 연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간간이 좋은 재즈 밴드들의 공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팝송 공연을 펼치는 곳을 재즈바라고 부를 순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재즈를 몹시 사랑했던 푸미폰 전 국왕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바라면 조금 더 정통 재즈를 하는 밴드들을 섭외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푸미폰 국왕이 색소폰에 온다면 과연 이 공연들을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고집으로 단기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인 이 바에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다 불면증에 신음하며 지쳐가던 몇 주 전 일요일 밤,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우울한 기분을 털어내고 싶었는데 자정이 다 되어가던 늦은 시간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고민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오랜만에 색소폰에 가서 맥주나 몇 잔 마시고 오기로 하고 색소폰이 위치한 빅토리 모뉴먼트 역으로 향했다. 큰 기대 없이 바 안으로 입장해 맥주를 한 잔 시켜놓고 마지막 공연을 보았는데 아주 인상적인 보컬을 만났다. 프린스의 ‘퍼플 레인’부터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까지 역시나 정통 재즈가 아닌 팝송으로 일관된 플레이리스트였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었다. 여자 보컬과 남자 보컬 그리고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밴드였는데 내가 아는 태국 친구 미키를 닮은 여자 보컬도 좋았지만 가성을 자유자재로 내지르는 남자 보컬이 더 인상적이었다. 가성과 진성 그리고 둘의 화음으로 완성되는 공연을 보고 있자니 영원히 밤만 계속되는 신세계에 온 듯했다. 참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오는 동안에도 그 이전에 상상 속에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존재들이 훌쩍 튀어나와 인사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아마도 그날은 내가 몹시 지쳐있던 와중에 만난 좋은 공연이라 더 특별한 감흥을 받았던 것이리라. 숙소로 돌아와 색소폰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밴드의 이름을 찾아봤더니 ‘Phrima's band’라고 나왔다. 한동안 나의 즐겨찾기 리스트에서 지워졌던 색소폰이었지만 앞으로는 그곳에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방콕에 갈 곳이 한 군데 더 생겨서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아주 기뻤고 그날은 늦게까지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정통 재즈 연주를 만나기 힘든 그곳을 왜 사람들이 재즈바라고 부르나라며 색소폰을 혹평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일 색소폰이 정통 재즈만을 고집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펍으로 삼십 년이나 운영될 수 있었을까? 블루스와 팝송을 연주하는 멋진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기에 좋은 재즈 밴드들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설 수 있는 무대 하나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재즈는 미국 흑인의 민속음악과 백인의 유럽 음악의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이다. 재즈 자체가 낯선 것들의 충돌로 만들어진 자유로운 길거리 음악인데 전설이 된 뮤지션들의 음악들만을 정통 재즈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도 고리타분한 것이었다. 물론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 최고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조금 더 유연한 생각이 필요하다. 온갖 낯선 것들이 충돌해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방콕에서라면 더욱더 그래야만 한다.
이십 대 때는 자기만의 고집으로 세상과 부딪히기도 하고 사회에 불만이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다. 사십 대가 된 지금 내가 부리는 고집은 아집이 되기 쉽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혼자만의 고집으로 재미없는 소리만 지껄이는 매력 없는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생각해보니 국왕인 동시에 프로 재즈 뮤지션이었던 푸미폰 전 국왕은 나보다는 훨씬 유연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색소폰의 모든 공연들을 다 즐겁게 관람했을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재즈 밴드의 공연이 없는 날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색소폰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