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소년, 디야우

by Gorae

에카마이 쏘이 십까오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그때는 매일 같이 통로의 카페로 나가 원고를 썼는데, 통로에 워낙 유명한 카페들이 많다 보니 한국 관광객들에게 핫하다고 하는 카페들을 피하는 것도 일이었다. 조용한 카페를 찾아 천천히 원고를 쓰다가 지겨워지면 내가 좋아하는 식당 ‘Foodland’로 가서 카오팟무를 먹곤 했다. 그러고도 할 일이 없으면 하릴없이 통로와 에카 마이의 거리를 걷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늘 통로 쏘이 하에 있는 마사지 가게 앞에서 다정하게 호객을 하는 마사지사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못 이긴 척 그들을 호객에 이끌려 그 가게의 마지막 손님으로 발마사지를 받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방콕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 발마사지를 하는 친구 중에 어릴 적 병을 앓아 말을 못 하는 친구가 있었다. 늘 친절하게 열심히 마사지를 해줘서 기억에 남는 친구였다. 태국에서는 제때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수 있는 질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걸 보면 참 안타깝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선진국인지 인지하게 된다. 그 반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사회 속에서 받아들이고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다들 먼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는 태국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태국 사람들이 얼마나 세련된 사람들 인지도 인지하게 된다.


그 친구는 마사지가 끝난 후에 팁을 주고 나면 늘 검지와 중지를 손에 갖다 대며 함께 담배를 피우자고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미안하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너는 아직 어려 보이니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말을 몇 개의 영어단어와 손짓을 섞어 이야기하고 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늘 큰 입으로 입맛을 쩝쩝 다시며 멋쩍은 웃음을 짓고 했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라인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는데 마사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 자려고 누웠을 때 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 친구가 보낸 첫 메시지는 자신의 이름은 ‘디야우’라는 메시지였다.


태국 사람들에게는 진짜 이름인 츠찡과 별명인 츠렌, 두 가지 이름이 있는데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은 츠렌으로 서로를 호칭한다. 긴 태국이름인 츠찡은 가족들끼리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나는 긴 태국이름이 아름다워서 만나는 태국 사람들의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늘 츠찡도 알려달라고 하는데 디야우 역시 츠렌일 거라 생각해 츠찡은 뭐냐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디야우는 그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디야우’는 ‘혼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왜 이런 뜻의 단어를 츠렌으로 삼았을까?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혼자인 거니까. 혼자인 나처럼, 혼자인 당신처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혼자인 마사지 소년, 디야우.


그 후로 종종 디야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대부분 서툰 영어로 보낸 단순한 인사말이었지만 말을 못 하는 디야우가 심심할 거라고 생각해 그의 메시지에는 꼭 다정한 답장을 보내곤 했다. ‘디야우도 다른 또래 애들처럼 한국문화를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한국사람이 신기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디야우와 친구가 되어 가끔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중 하루는 여느 날처럼 마사지샵이 문을 닫기 한 시간 전에 디야우가 일하는 마사지 가게로 가서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발마사지를 받고 나왔다. 발마사지를 받고 나왔더니 마사지 가게 앞 손님을 호객하는 자리에 그날 업무를 끝낸 주변 마사지사들이 모여 이싼 - 콘캔과 우돈타니, 러이 등의 도시가 있는 태국 북부 지방 - 음식들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맛있게 먹으라고 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디야우를 비롯한 나와 안면이 있던 마사지사들이 나를 붙들어 할 수 없이 잠깐 그 자리에 앉아 따라주는 맥주 몇 잔을 비우고 권하는 이싼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몇 병 사 가지고 와서 그 자리에 놓은 뒤 다시 숙소로 향했는데 디야우에게 메시지가 왔다. 'Can I go to your home?' 나는 ‘얘가 왜 밤늦은 시간에 우리 집에 오려고 하는 거지? 집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앤가? 아니면 집에서 맥주를 한 잔 더 먹자는 이야긴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음에 날 밝으면 놀러 와, 나는 곧 자야 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다시 메시지함을 확인한 후 그 메시지의 진짜 뜻을 알 수 있었다. 디야우는 게이였던 것이다.


그 후로는 디야우가 일하는 마사지샵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디야우가 보내는 메시지에도 답을 하지 않게 되었다. 디야우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태국어로 보낸 메시지였다. 번역 앱을 이용해 그 태국어를 해석했더니 시간 되면 마사지 가게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자는 뜻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왜 또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나는 짜증을 내며 디야우의 메시지를 지운 뒤 디야우를 차단해버렸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카마이의 아파트 임대기간이 끝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고 지난주, 대련 반점에서 식사를 하고 아속 역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바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존 덴버의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무작정 그곳으로 들어갔다. 맥주를 한 병 시켜놓고 바 안에서 라이브 음악을 몇 곡 더 듣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돌아보니 긴 머리에 짙게 화장을 한 젊은 여자가 내 등 뒤에 서있었다. 나를 향해 반갑게 미소를 짓는 그 여자를 보며 누군가 했는데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쏘리, 두 유 노우 미? 후 아 유?”라고 물어도 장난스럽게 미간을 찡그리며 눈썹을 치켜올리는 표정만 지을 뿐 계속 웃고만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을 못 하는 사람인 걸 인지하고 웃는 모습을 자세히 봤더니 디야우였다. 디야우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러 여자처럼 보였다. 디야우는 여장남자인 꺼터이가 된 것이다. 과거의 일이나 현재 디야우의 모습은 일단 덮어두고 반가운 마음에 “두 유 워킹 히얼?”이라고 물었더니 디야우는 검지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자신이 이 바의 오너라고 답을 했다. 가게의 카운터에는 이태리계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서서 디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디야우의 남자 친구였으리라. 나는 디야우에게 굳이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아도 어떻게 지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 음악 참 좋다고 자주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디야우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짧은 인사를 끝내고 맥주를 몇 병 더 마시다가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친구 곁에 서있는 디야우에게 바이 바이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삼 년 전에 소년이었던 친구를 몇 년 후에는 여자의 모습으로 만날 수도 있는 곳, 방콕이다. 방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내가 보고 믿고 배운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방콕에서는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아무튼 디야우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디야우가 주인인 그 바에서 라이브를 하는 가수는 노래를 참 잘하더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크게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디야우의 간절한 표정이 글을 쓰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잘 지내고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어제, 디야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디야우의 바를 찾았는데 그날은 라이브를 하는 가수도 없었고 그래서인지 가게에 손님도 없었다. 디야우 혼자 바를 지키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디야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다 나의 기척을 느끼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디야우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디야우와 함께 있던 그 이태리계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굳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어제 디야우는 정말로 정말로 입 밖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디야우가 그간에 겪었을 그리고 앞으로 겪을 편견과 차별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는데, 사실 그건 그저 나의 감상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태국에서는 장애인이나 성소수자가 차별로 인해 마음 아픈 일을 겪을 일들이 많지 않고 또한 만일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도 밝은 태국 사람들은 그것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 디야우를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괜히 그날따라 디야우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와 다른 타인을 혐오하는 발언은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한다. 방콕과 방콕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성별과 나이, 국적이나 성적 취향 그리고 장애의 유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어제 디야우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괜히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내색하지 않는 디야우처럼 나 또한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라이브가 아닌 시디로 플레이되는 음악 몇 곡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나는 영어로 디야우는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표현하며 소통을 했다. 중요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대화를 하려고 애를 썼다. 대화의 내용보다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던 디야우의 나의 마음이 참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디야우가 오래오래 이곳에서 바를 했으면 좋겠고 그가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얼굴에 멍을 달고서도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디야우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마음이 좋지 않아서 일어서야겠다는 마음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계산을 하고 디야우에게 팁까지 준 다음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디야우가 나를 붙잡고 몇 해 전처럼 엄지와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담배를 피우자는 시늉을 했다. 그날은 나도 정말로 오랜만에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 ‘디야우’가 ‘혼자’ 일 때는 담배가 좋은 친구가 되어줄 때가 있겠지? 나 또한 혼자인 사람이라 때로는 담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디야우에게 어쩌면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를 말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디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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