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를린, 전범국가의 기억

그들은 왜

by 글쎄

지난 2년간 다니던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의 근무를 정리하고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에 와있다. 서울에서 짧은 한 달간의 준비 후 이탈리아로 넘어오느라 바빴었는데 벌써 이탈리아에 온 지 한 달 남짓 되어간다. 이탈리아에 온 차에 베를린에 정착해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보러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베를린을 돌아본 인상을 적어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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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생들의 공통된 경험이라고 하자면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역사교육을 대중문화를 통해 배웠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되어선 안된다는 미명아래, 악몽 같았던 희생자의 역사를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은 채 거칠고 지독하게 배웠다. 뇌의 한자리, 무의식 저편에 터줏대감처럼 박혀서 때만 되면 버튼이 자동 재생되는 전쟁의 트라우마는 "대체 인간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잡게 만들었고, 성인이 된 후 사회학과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그 화두는 미궁 속으로 쳐 박혔다.


앎은 곧 이해라는 단순 무식한 생각으로 많이 알면 알 수록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인간의 악마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을 전전하며 인권영화제를 전전하며 나는 스스로 고통스러운 역사를 전방위적으로 헤집었고,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인류애를 망각할 수 있는가"라는 충격과 공포의 도파민은 나를 돌이킬 수 없는 전쟁 트라우마로 몰아넣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자가 전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가? 그것은 노출된 반복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대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가에 대한 지독한 지식욕과 해결되지 않는 화두로 나는 더 고통받았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더 오래 지켜보고 깊게 탐구해서 모조리 분석해 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이해되면서 인간성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해에 가까워지고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자만이다.

그때는 그랬었다.


tempImage6EAMDc.heic 테러의 토포그라피 Topography of Terror, 베를린 장벽과 나치 정권이 사용하던 건물에 당시의 역사적 기록을 펼쳐놓은 벽

나는 이른바 전범국가를, 특히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를 극도로 싫어한다. 나는 그들의 언어만 들어도 경기가 날 정도다. 일본은 갤러리 출장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최근에 두 차례 다녀온 것이 전부고, 독일은 환승할 때 외엔 땅을 밟아보지 않았다. 나는 일본인들과 독일인들 사이에 홀로 있는 걸 극도로 꺼린다. 마치 내가 일본 군인들 사이에서 홀로 남은 어린 위안부 여성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자신들의 운명을 알 수 없던 그녀들은 실존적인 공포로 얼마나 무서웠을까. 영문을 모르는 채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단지 그들의 자비로운 처분과 신에게 맡긴 운명만을 기다리고 있는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여성들. 나라면 그들의 기에 짓눌려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전장에서 전쟁범죄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나는 특히 여성에 대한 범죄와 인종청소에 대한 너무나 많은 책, 다큐멘터리, 강연에 노출되었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잠깐의 암시만 나오는 장면, 유대인의 수감복을 연상케 하는 세로 줄무늬의 셔츠만 봐도 지옥의 문을 여는 트라우마 재생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친구에게 베를린에 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해 놓고 전날부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친구가 부탁한 다이소 물건들은 전해줘야겠고, 밀라노에서 베를린은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인 줄 알고 당장 달려갈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어렵게 구한 티켓을 사실 취소하고 싶었다. 마침 티켓에도 문제가 있었고, 2시간 남짓의 비행거리인데 티켓이 40-70만 원 대로 지나치게 비싼 데다가 다른 유럽의 나라를 경유해 5-10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고, 비행기 출도착 시간은 대체 이 시간에 타라는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헛웃음을 나오게 했다.


메링플라츠 Mehringplatz, 나치정권의 선전 장소


2박 3일의 첫 베를린 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시점에서 말하자면, 베를린은 참 복잡다단하고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 이 도시의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운명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의 체념과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세대가 선택한 기괴할 정도의 자유로움이 혼재된 결과물로 보였다.


베를린을 돌아본 뒤 어떤 에피소드가 소회처럼 떠올랐다. 법륜스님의 상담 속에서 어느 중년의 여자분이 운전사고로 누군가가 죽었고, 그 피해자와 피해 가족들에 대한 죄의식으로 그 후로 사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정신적 자해에 가까웠다. 사람은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의도도 없지만, 누구든 원치 않게 타인을 해할 수 있다. 그것이 극단적인 공포와 위해를 피해기 위해서든, 사건의 우연성에 입각한 의한 것이든, 심지어 의도는 있었으되 그 위해의 정도를 인지하지 못한 것이든, 그 정도가 상대를 사망에 이르는 정도의 피해라면 의도에 상관없이 중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이번 베를린 방문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인들의 정신상태가 "그 누구에게도 그 어느 시대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어떤 인류사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자들"의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에게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아는 자들의 상태, 감히 용서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고, 자비의 신에게 조차 버림받을 것을 아는 자들의 심리상태.


친구가 말했다. "독일인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소심하고 많은 것을 두려워해.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 그런 부분에서 일본인들과 상당히 유사해. 이들은 집단 내에서 누군가 규칙을 어기면 꼭 지적을 하고 나서지. 하지만 주어진 규칙 자체에 대해 의문을 던지진 않아."

독일인과 일본인 개개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자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공포와 군중심리에 의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 결코 행해서는 안 되는 길을 선택한 민족의 용서받을 수 없는 역사가 놓여 있다. 그것을 직시하든 애써 무시하든 그들은 자신들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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