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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Oct 13. 2023

이스라엘, 난민국가의 정신세계와 분열된 공동체

이스라엘에서의 일요일 아침, 기차역으로 향한다. 이스라엘의 일요일은 다른 나라의 월요일과 같다. 일요일부터 일주일이 시작되고 금요일 오후 한 주가 끝난다. 풀빛 군복을 입은 18세가량의 남녀 군인들이 기차를 타고 부대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군인들로 몹시 북적이는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에서 이들을 헤집고 기차에 올라 텔아비브로 향한다. 정통 유대인을 제외한 세속 유대인들은 남녀 모두 징집된다.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타종교를 가진 시민권자들은 군사적 비밀보호 및 종교적 가치를 이유로 징집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군대에 복무하지 못한 2등 시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일상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예루살렘의 군인들

군인들은 주로 웨스트뱅크나 가자지구에 배치되고 본인의 총기를 소지한 채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고 매주 일요일 부대로 복귀한다. 군대에서 특정 임무를 부여받고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는 것은 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군대에서 유리한 부대에 배치되어 고급 기술을 배우고 나아가 군대에 한국식으로 말해서 군대에 말뚝을 박게 될 경우 더 없이 좋다. 군인으로 20년을 연속 근무하고 40대에 은퇴하여 두둑이 퇴직금을 챙기고 연금을 받으면서 대학교나 국가기관에 재취업할 수 있다. 


기차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달린다. 멀리 왼편으로 분리장벽과 그 너머로 팔레스타인 지역이 보인다. 쨍쨍한 하늘 아래 지평선 아래로 베이지색의 석회암이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지역이든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민족 인종 종교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도 가지가지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전형적인 세속 유대인들, 가발을 쓰고 검정색 치마를 입은 정통유대교 여성들, 위아래로 검정색 티셔츠와 검정 진을 입고 크게 스피커를 틀고 노래를 즐기는 아랍계 청년들, 검정색 히잡을 쓰고 온몸을 검정 옷으로 뒤덮은 무슬림계 여성들,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상의를 벗고 달리기 하는 러시아계 남성들, 다소 어색하게 야외 데이트를 즐기는 정통 유대교 남녀 커플,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노란색-초록색-빨간색 스카프를 두른 아프리카계 유대인들, 그리고 유럽에서 잠시 쉬러 온 관광객들과 멀리 보이는 지중해 연안을 도는 크루즈 선박들이 즐비하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늦은 오후의 노을과  8m에 이르는 분리장벽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1948년 전후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과 유목민인 베두인 족 등이 섞여 살고 있다. 대표적인 이주민들은 독일로 대표되는 서유럽계, 러시아어를 쓰는 동유럽계, 모로코와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계, 중동의 아랍계이다. 종교적으로 구분하면 크게 유대인과 무슬림계로 나뉘고, 유대인은 정통 유대인과 세속 유대인으로 나뉜다.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인 차이를 지닌 이들은 영토를 공유하지만, 삶을 공유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종교와 민족에 따라 교육시스템이 다르다. 정통 유대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정통 유대인 학교에 다니고, 아랍계는 아랍어를 쓰는 아랍 학교를, 러시아계는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 학교를, 세속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쓰는 학교를 다닌다. 정통유대인들 중 네츄레이 카르타*는 반시오니스트로 이스라엘 국가를 거부한다. 학교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르친다. 대학교에서 이들이 만날 수는 있지만 이미 너무 다른 세계를 살아왔으며 종교문화적 차이를 거슬러 서로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네츄레이 카르타의 팔레스타인 점령 반대 시위 장면(사진 : 타임오브 이스라엘)

금요일 오후 1-3시경부터 주말 안식일, 사밧(Sabbath)이 시작되고 다음날 토요일 저녁 7-8시경 끝난다. 다른 국가의 주말과 다른 점은 이 시간 동안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버스,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도 모두 셧다운 되고,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원칙적으로는 전기도 기계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신앙심의 정도에 따라 실천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물론,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마트나 아랍계 택시는 운영한다. 유대인 공휴일 중의 하루는 자가용도 이용하지 않는 날(욤 키푸르, Yom Kippur)이 있다. 그날 오토바이나 차를 타고 도로를 가로지른다면 돌을 맞을 수도 있다. 종교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만 가능한 낯선 풍경이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국교가 없지만 유대 민주주의 국가**이다.그 말은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이며 비유대인을 법적으로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다.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차별은 율법을 따르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유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생활할까? 텔아비브 거리를 걷다 보면 각 구역별 굉장한 빈부격차로 놀랍다. 텔아비브는 세계적으로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하지만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거리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과 슬럼화 된 거리 속에 아프리카계 유대인들과 수단인들이 가득하고, 쾌적하고 고급화된 타운에는 백인 유대인들만 모여 산다. 주로 서유럽에서 온 유럽계 유대인 아슈케나짐(Ashkenazim)은 이스라엘의 최고 상류층을 이룬다. 독일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이 상류층을 이루며, 동유럽계는 상류층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구소련의 탄압을 피해 건너온 사람들이며,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쟁 난민들이 이스라엘로 몰려들었다. 

텔아비브의 밤거리를 내려다보는 유대인

중동계 유대인은 세파르딤(Sephardim)으로 불리는 중동 및 모로코 출신이다. 이스라엘의 하류층을 이루는 아프리카계 유대인들은 주로 에티오피아계로 베타(Beta, Ethiopian Jew)라고 불린다. 유대인이라면 인종과 민족을 가로질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돕고 지지해주는 지혜롭게 공존하는 삶을 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유대인들은 자신과 타인을 인종과 민족, 종교에 따라 구분 짓고, 유대인인 그 자신들도 인종과 언어에 따라 차별화한다. 끝없는 차별과 구획이 유대 공동체 안에서도 일어난다. 동일한 영토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철저히 분절된 삶을 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이는 ‘분리’된 세계 속의 삶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지난 2천년 간의 디아스포라 끝에 중동의 모든 국가와 전쟁을 벌이며 끝내 영토를 손에 쥐었으나, 왜 유대인을 위한 영토에서,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유대인들은 분열되어 있을까? 나는 이스라엘이 유대인을 위한 공동체 국가 형성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OECD국가 중 빈부격차가 가장 높다. 특히 예루살렘의 빈곤율은 48% 이다. 수입의 47%를 세금으로 거둬들이지만 국방비 지출 및 종교적 지원이 높고, 백인 유대인 위주로 지원된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희생된 군인들이 묻힌 묘지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고 마치 유럽의 일부가 중동에 펼쳐진 것 같은 꽤나 발전된 국가로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상황은 건국 후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스라엘의 곳곳을 걸으면서 유대인들의 공동체 의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공사에 필요한 자재가 적재되어 있으면 이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고, 같은 건물에 살면서 다른 층의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집을 리모델링하여 다른 층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공공기관의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하인처럼 대하면서 권력을 누린다. 시장에서는 몇 푼의 세켈을 더 아끼기 위해 흔히 말싸움이 일어나는데 서로를 속이고 속이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것은 순진한 행동이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공동체 의식이란 무엇일까? 오랜 역사를 거쳐 박해를 받으면서 각개 전투하는, 난민, 떠돌이, 집을 잃은 자의 스탠스와 정신상태를 체화 한 것일까? 나는 강력한 정신적인 공동체로서 국민의식, 민족의식, 종교적 공동체로서 유대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건국이래 최초로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었지만, 아직 이방인의 정신세계를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유대인이라는 일종의 '허구의 정신적 공동체’는 특정한 정통 유대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일 수도 있다.


심각하게 분열된 유대 공동체의 정신적인 스탠스는 상시적인 테러와 분쟁상태로 인한 긴장상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이웃과도 화합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삶, 일상에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주변국들을 전부 적대시하면서 자신의 영토와 정체성을 설정한 부작용인 것이다. 주변의 모든 중동국가와 전쟁을 치르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느라 군사력을 낭비하는 등 상시적인 전쟁상태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인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스라엘인을 반기지 않는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 정신적으로 심한 고립감과 혐오감, 불신감에 싸여 있다. 


나는 이것이 이스라엘인들이 겪고 있는 주변과 화합하지 못하는 자의 정신분열적인 스탠스라고 생각한다. 긴 역사를 거슬러 서로를 증오하고 말그대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서슴없이 저질러온 국가와 민족이 과거에 대한 용서를 빌고 화합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 기대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화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피 터지게 싸웠기 때문에 현재의 엄청난 국방력을 통해서 현상유지를 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오히려 세대에 걸쳐 시오니스트로 세뇌되고 군사적 무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 베들레헴에 위치한 월드오프호텔의 그림 : 초토화된 배경 속에서 테니스 코트에서 포탄을 쳐내는 모습이 아이언돔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을 비유하고 있다

전범국가들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를 상기하면서 이스라엘의 분열적이며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더욱더 극단적인 정치적 우파로 치닫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본질적으로 ‘순혈’의 유대인은 불가능하다. 2천년간 세계를 떠돌면서 수많은 인종과 민족과 어우러져 살아왔다. 모계 혈통에서 유대인인 것을 증명하면 이스라엘 시민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들이 ‘순혈’ 유대인 일 가능성은 없다. 민족적 순혈을 강조할수록 순혈의 의미는 퇴색된다. 그리고 종교적 정당성을 주장할수록 국가 이스라엘은 국가적 정당성이 희미해지는 모순이 있다. 이스라엘은 삼중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유대민족의 혼종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나라를 잃고 떠돌고 핍박받은 모든 민족들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Neturei Karta : 

정통 유대그룹 중 하나이다. 이들은 토라와 십계명을 철저히 따라 메시아가 재림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고 믿는다. 십계명을 거스르고 세운 이스라엘은 메시아의 뜻에 반역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한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인 벤구리온이 주창한 국가 이스라엘의 3대 원칙은 3대 딜레마(trilemma)라고도 불린다. 1. 유대국가여야 한다. 2. 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 3. 하나의 나라여야 한다. 세가지의 문제가 서로 얽혀 있어 어떤 선택을 해도 나머지 두 가지 혹은 한 가지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때 이를 트릴레마라고 한다.


BBA vol.4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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