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감상문
'안나'를 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친밀한 이방인'이 원작이라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정한아 작가 책을 읽을 빌미가 생긴 것
왜 아이돌 좋아할 때 최애는 최애 (나의 경우 정세랑) 차은우는 차은우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정한아는 정한아다. 내가 한국 소설에 재미를 붙이게 된 책 또한 정한아 작이다. 달의 바다, 학원 앞 문제집을 사러 간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다. 솔직히 지금 스토리는 기억이 안 나는데 완독이라는 첫 성취감을 줬던 것과 첫 페이지에 있는 주인공 스스로가 느끼는 본인의 묘사가 굉장히 나와 같다 여겼던 것이 생각난다.
여기까지 책을 열게 된 계기는 각설하고 친밀한 이방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 정말 재밌다. 정한아의 뚜렷한 장점, 빠른 스토리텔링과 꼭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은 인물 묘사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안나'를 다 본 지금 비교해 보자면 '친절한 이방인'의 주인공 환경 설정과 2화까지의 스토리가 비슷하다. 이후 내용은 '친밀한 이방인'이 '안나'보다 결말까지의 흐름이 더 매력적이다. '안나'는 4화부터 살짝 루즈해지는 느낌. 물론 현주의 죽음으로 박진감을 찾지만 이내 5화에서는 더욱 늘어진다. '안나'의 결말 또한 '친밀한 이방인'의 결말이 더욱 이유미스럽다 느꼈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다소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설정의 주인공이지만 독자 입장에서 안나, 그러니까 이유미를 계속 응원하게 되는 것은 자기 연민이 없다는 것. 누군가 왜 그랬냐, 했을 때 또는 본인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을 때 그녀는 말한다. "잘 해보려 했는데, 잘 안됐다"라고. 거창한 변명이 없어 오히려 내가 그 옆에 있었다면 그럴만한 일들이 있었다고 변호했을 듯하다. 왜 그럴까, 왜 그녀를 이해하려고 할까. 왜 내가 그녀에게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사람들에게 설득하려할까. 책을 읽고 드라마를 읽을 때까지 들던 의문이 '안나' 마지막화 대사에서 답을 얻는다.
" 독립은 부모의 실망에 죄책감 갖지 않는 것 "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안나'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안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지 않길 바랐던 것은 웃기게도 이유미에게는 없는 나의 자기 연민 때문이었다.
'안나' 등장인물에 대한 코멘트
1. 이유미, 이안나역 배수지
'친밀한 이방인'을 읽고 이유미 역을 수지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유미 그 자체였다. 책에서도 느껴지는 이유미의 처연한 분위기가 내 머릿속에 있는 화사하고 밝은 수지를 사악 지워냈다. 그 중 베스트는 유미가 현주를 만났을 때이다. 부러움조차 사치인 삶에 지친 무력한 표정에서 현주를 만나면서 독기에 가까운 생기를 찾는다. 대사 하나 없는 그 표정들이 소름 돋을 정도로 극을 잡아채 이끌어간다.
연기도 연기지만 이유미의 패션 또한 볼 만한데 미술관을 나온 시점 이후 유미는 현주를 모방한다. 학력과 이름 뿐만이 아니라 패션까지. 재밌는 건 이유미가 최지훈을 만나고 난 후 명예를 가진 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변화한다. 유미가 모방하는 대상이 변화하는 것이 의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지는데 현주를 따라할 때는 원색 위주의 원피스 또는 투피스, 대비되는 컬러 사용으로 살짝 과할 정도로 화려하게 입는다. 이후 최지훈을 만나면서 컬러 사용을 자제하며 원색은 피하고 뉴트럴 톤으로 고급스러움을 극대화시킨다. 구두의 변화만 봐도 쉽게 캐치할 수 있다. 게다가 결혼 후 아파트에서 만나는 현주와 유미의 모습이 극명하게 달라 아주 그냥 짜릿하다.
파스텔 톤으로 차분한 룩의 안나와 프릴과 도트, 소재감 모두 화려한 현주
설명이.. 필요없넹
2. 이현주 역 정은채
아니 수지도 수진데 나는요 정은채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지 몰랐어요. 분명 '더테이블'에서 연기가 좀 어색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었다. 와........진짜 그냥 등장부터 어디서 글러먹은 부자 딸내미가 나오는데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대사만 잘 살리는 정도였으면 현주의 죽음이 통쾌 했을텐데 간간히 나오는 제스처들이 나의 마음을 너무 사로잡아 버렸어요. 아 죽지마. 살아라. 살아서 더 해봐 !! 아직도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1) 선보기 전 엄마 몰래 유미한테 손가락으로 X자 만드는 모습, 2) 유미한테 계단으로 다니라고 말한 뒤 손가락 튕기는 소리 내는 모습. 솔직히 정은채 연기는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된다. 이보다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좋아. 외국애들이 빗취빗취 거리면서 나쁜 여자애 좋아하는 거 이해가 안됐는데 지금 나는 현주빗취 취해서 매일 손가락 튕기고 있다.
말투, 표정, 제스처 빠지는게 없어요. 아유 그냥 칵시 사랑해용
3. 최지훈 역 김준한
종이의 집 김지훈 사투리보고 어지러워서 미디어 사투리와 타협하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김준한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투리 연기는 그냥 네이티브 시킵시다. 문제는 너무 잘해서 더 화나요. 사투리는 물론 연기도 너무 잘해서 음.......화가 많이 나요.
그 외 느낀점
'안나'를 보면서 헉! 했던 점 (표현력 쩐당) 2개가 있는데 둘다 음악과 관련되어 있다.
1) 엔딩곡
매 화 엔딩곡으로 발레극 '에스메랄다' 음악이 나왔는데 정한아에 이어 이게 나온다고 ? 했던 것.
중학생 때 발레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였던 무대의 곡이었다. 엔딩곡 나오자마자 머야 !?! 에스메랄다잖아..? 이러고 소름돋아하는데
정소영이 갑자기 "에스메랄다? 춤을ㅇ 춰요 ~~~~~~ 에스메랄다~~ 이거?" 이럼 ㅠ 같은 집에서 다른 에스메랄다를 품고 있었다.
내가 떠올린 에스메랄다
정소영이 떠올린 에스메랄다
아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어쨌든 에스메랄다 다시봐도 멋있다. 찾아보니 취미발레 3년하고 추는 사람도 있던데 이참에 도전해볼까..?
2) 자우림 - '안나'
'안나'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떠올랐던 자우림의 안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있는 앨범인데 그 곡보다 더 많이 들었던 곡. 도대체 김윤아가 부르짖는 안나가 누구일까 궁금해서 이리저리 해석도 찾아봤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찾은 기분이라 후련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안나'는 여러모로 나한테 소름돋는 우연을 선사한 작품이다. 2022년은 '안나'만 내내 곱씹으며 끝이나도 마냥 벅차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