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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구름 Jul 06. 2015

고래 : 제 6장. 위협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그 모습을 보던 어미고래와 다른 고래들은 새끼 고래의 철없는 행동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어미고래는 새끼 고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하려무나 아가야. 그건 우리 고래가 부를 노래가 아니야. 어서 이리로 오렴 이제 서쪽으로 이동해야 할 때야"


새끼 고래는 어미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자신의 노래를 즐겁게 들어주는 새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반갑지 않는 기운을 감지한 어미고래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급한 목소리로 새끼 고래를 불렀다. 그러나 새끼 고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새끼 고래가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사이 동쪽 끝에서 고래보다 훨씬 큰 거대한 배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Copyright 2015. 고래나무왕(whaletreeking) all rights reserved.

 그것은 고래의 피부보다 두껍고 북극해보다 차가운 강철로 된 포경선이었다. 백여 명의 선원을 태운 거대한 포경선은 성난 엔진 소리를 내며 새끼 고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놀란 새끼 고래는 숨을 들이마실 정신도 없이 바다 속으로 잠수했다.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새끼 고래의 노래에 맞추어 춤추던 친구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멀리서 들리던 다른 고래들의 소리도 사라졌다. 그 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수면 위를 가득 채웠다. 짙은 코발트 색의 북극해는 곧 빛을 잃었다. 새끼 고래는 바다 깊이 숨어 들었지만 이제 남은 숨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포경선의 거칠고 사나운 소리가 새끼 고래의 방향감각을 혼란스럽게 했다.


 새끼 고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떠오르자 포경선 꼭대기의 남자가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갑판 위의 여러 명의 사내가 바삐 움직였다. 포경선 앞쪽에 거대한 작살이 새끼 고래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새끼 고래는 처음 보는 거대한 배와 사람들, 그리고 기계소리에 거의 정신이 빠져 헤엄도 잠수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물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지휘를 하고 있던 선장이 작살을 잡은 남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작살잡이는 작살촉을 다시 서쪽 먼 바다로 돌렸다. 그들은 새끼를 몰아 어미를 불러낼 참이었던 것이다. 고래 사냥꾼들은 대부분 고래의 모성애를 이용하여 포경을 하곤 한다. 아직 모든 것이 서툰 새끼를 찾아 먼저 작살을 꽂으면 어미는 절대로 자신의 새끼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은 새끼 고래와 더 가깝게 배를 몰아갔다. 그 사이 선장이 어디선가 나무로 만든 오래된 전통 작살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장난스레 새끼 고래의 등을 향해 던졌다.


Copyright 2015. 고래나무왕(whaletreeking) all rights reserved.

 그때였다. 순간 물속에서 어미고래가 수면 위로 용솟음 쳤다. 그러나 그 모습에 당황한 건 오직 갑판 위의 신입선원 몇  명뿐, 베테랑인 작살잡이와 선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계획에 어미고래가 걸려들었음을 비웃고 있었다. 어미고래는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속으로 다시 잠수했다. 포경선은 마치 견고한 성벽처럼 고래의 점프에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의 새끼를 구하러 온 어미고래지만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에 무작정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슬슬 새끼 고래를 희생시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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