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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구름 Jun 04. 2015

고래 : 제 1장. 첫 숨


Copyright 2015. 고래나무왕(whaletreeking) all rights reserved.


 적도 부근의 태평양.

작은 섬들 곁에 유독 배가 볼록한 암컷 혹등고래 한 마리가 이른 아침부터 수면 위에 머리만 내민 채 죽은 듯이 떠 있었다. 오래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인지 그 역시도 하나의 작은 섬처럼 보였다. 해가 더 높이 떠오르자 한참 움직임이 없던 고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을 추듯 빙빙 돌다가 이내 잠잠히 멈추어 있었다. 그렇게 움직임과 쉼을 반복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고래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더니 꼬리를 곧게 펴기 시작했다. 마치 기지개를 펴는 듯 몸을 곧게 펴고 바르르 떠는 순간, 꼬리 아랫 부분으로 붉노란 양수와 함께 작은 생명의 꼬리가 튀어나왔다.


 성공적인 출산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고래는 온 바다에 머물러있던 모든 고통을 혼자 머금었고, 아무 말도, 그리고 어떤 노래도 하지 않은 채로 새 생명을 낳았다. 어미 고래는 곧 새끼를 자신의 등에 태워 수면 위로 밀어 올렸다. 새끼 고래는 엄마 등에 올라 탄 채로 이 세상에서의 첫 숨을 들이 마셨다. 그 맛은 따뜻하면서도 시원했다. 바깥 바람을 쐬며 충분히 숨을 고른 새끼는 맑은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고 엄마의 얼굴을 보러 바다 속으로 잠수했다. 아직 서툰 헤엄으로 새끼 혹등고래는 엄마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어미 고래는 자신의 새끼를 보는 순간 그동안 그에게 머물러있던 모든 아픔과 상처, 배신이 모두 사랑으로 바뀌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그의 새끼를 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이제부터 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은 내가 먹을 테니, 넌 온 바다에 남아있을 사랑만 먹고 영원히 살으려므나"


Copyright 2015. 고래나무왕(whaletreeking) all rights reserved.


 감히 인간의 눈이 닿지 못하는 곳은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뜨겁게 끓는 저 화산 속 용암이 그러하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머나먼 우주의 사라져가는 한 혜성도 그러하며, 깊은 바다 속, 아니 그리 깊지 않지만 놀라운 한 생명이 새롭게 태어나는 바로 이 곳 또한  그중에 한 곳이다. 우리에게 익숙할지 모르는 태평양이라는 바다. 그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지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고래의 출생이다. 오늘 새끼 혹등고래가 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하나도 없을지 몰라도 이 귀중한 생명체는 우리들이 받고 있는 동일한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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