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오후 어디선가 다른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새끼 고래는 그 노래가 어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호기심이 많은 새끼는 노랫소리를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어미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갔지만 이번에는 웬일인지 새끼 고래를 곁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멀찍이에서 천천히 새끼를 따라 헤엄쳤다. 어미 고래는 그 노래를 부르는 고래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노래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희미했던 노랫소리가 선명해지자 새끼 고래는 그것이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멀리 북극해에서부터 약 5,000km의 거리를 헤엄쳐 이제 막 도착한 혹등고래 무리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 끼의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온전히 대화하고 노래하고 또 춤을 추러 온 것이다. 혹등고래 무리가 새끼 고래와 마주치자 저마다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미 이외의 다른 고래는 처음 접하는 새끼였지만 전혀 어색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그들의 소리와 몸짓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 사이 어미 고래가 그들과 마주했다. 비로소 한 무리가 된 고래들은 한데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고래의 언어를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는 아주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고래들은 헤엄치기를 그만하고 곧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머리를 아래로 향한 고래들은 저마다 꼬리를 수면 위로 서서히 들어 올렸다. 고요한 바다 속에서 극도로 절제된 그들의 몸짓은 마치 신중한 얼굴로 줄을 타는 서커스 곡예사를 연상시켰다.
한편 새끼 고래는 새로운 고래들을 만난 흥분을 쉽게 감출 수 없는 듯 했다. 고래 뛰기와 지느러미 치기는 물론이고 어른 고래들 사이로 끊임없이 헤엄치며 그들의 고요한 명상을 짓궂게 흩어버렸다. 어른고래들은 새끼 고래가 만드는 물결에 개의치 않고 기묘한 모습의 춤을 계속 이어나갔다. 춤이 끝자락에 닿자 고래들은 본격적으로 서로의 몸을 비비고 함께 유영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새끼 고래는 그제야 어른 고래들과 함께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며 꼬리를 들어 인사했다. 모든 춤이 끝나자 고래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새끼 고래도 그동안 어미에게 배운 대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같은 언어로 하나의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그 순간은 바로 천국이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듯 했다. 이제 한 무리가 된 고래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참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냈고, 돌림노래도 불렀으며, 천국의 시간을 누렸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새끼 고래도 제법 몸집이 커졌다. 이제 추운 바다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지방층이 형성된 것이다. 헤엄 실력도 어미만큼 늘었고, 고래 뛰기도 놀라울 정도로 멋지게 구사했다. 어른 고래들은 바다의 온도를 맛보자 직감적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 적도의 뜨거운 겨울을 보낸 새끼 고래는 이 혹등고래 무리와 함께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이 여정의 시간 동안 철없는 새끼 고래는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