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팬사인회가 학교에서 열린다 해서 신나게 달려갔었다. 며칠 있다 한 블로그에서 그 팬사인회에 대한 포스팅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찍힌 내 사진이 있었다.
거기 나온 내 얼굴은 너무 구렸고, 나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댓글을 달았다.
"아 제가 찍혔네요(잔뜩 하는 칭찬 오백만 줄).... 그런데 제 얼굴 나오는 건 너무 부끄러운데 내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님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찍었고, 설레 하는 여대생의 심정을 잘 담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사진을 왜 지워야 하죠? 기분이 나쁘네요."
그렇게 몇 번 댓글을 달았는데도 해결이 안 되어 며칠 속을 끓이다가 그냥 신고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포털사에서 내 신고를 받아들였는지, 그가 포스팅을 내렸는진 모르겠다.
(초상권이란 개념이 덜해서 그랬나보다)
둘, 몇 년 전 어떤 책에 내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 글을 보게 되었다.
책에 그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인용되어있었고, 나의 신상이 꽤나 상세히 쓰여있어 당시 그를 알던 지인이라면 바로 나임을 눈치챘을 일이었다. 그 글의 저자는 스스로를 아주 멋진 사람으로 묘사했고, 나는 그를 괴롭힌 한 명의 빌런이었다. 그런데 그 말할 때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나쁘게 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책을 칭찬하는 리뷰를 볼 때마다 내가 욕을 먹는 기분이었고, 그 마음에서 벗어나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일들을 겪으니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쓸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한다.
하나, 대화를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허가를 구하고, 일화를 쓰는 경우엔 사후에라도 그와의 일화를 써두었다고 꼭 알리는 편이다.
지금 준비하는 기고글에는 중간중간에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데 내가 그들의 말을 재구성한지라 말뜻이 달라질 수 있어서 여기에 대해 이렇게 실려도 괜찮을지 동의를 구하고 있다. 지금 초고가 나온 상황이라 최종 원고 전에도 다시 확인을 받을 생각이다.
브런치에 실을 에세이를 쓸 때도 다른 이의 대화를 직접 인용한다면 허락을 구하는 편이다. 당신의 대화를 이렇게 이런 소재로 쓰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대부분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를 써주는 걸 좋아한다.
내 생활에세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남편인데, 어떤 글이던 남편이 나오는 부분은 사후에라도 꼭 보여준다. 혹시 한 명의 이야기만 쓰면 억울할 수도 있으니까.
둘, 어떤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땐 그 사람이 이 에세이를 알아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쓴다. 즉, 내가 평소에 그 사람의 면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둔다.
혹은 디테일을 최대한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험담보다는 그때 느낀 "나"의 기분에 집중해서 쓴다. 그래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눈치챘겠지만 내가 겪은 두 번째 일화도 지금 디테일을 전부 날려버렸고, 상황 설명만 짤막하게 쓴 뒤 내 기분에 집중해서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도 어퍼컷 먹었으니 자세히 쓰면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전쟁은 더 안 하련다.
위와 같은 원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나 보다.
당장 아래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2020년 등단한 소설가가 지인과의 대화를 통째로 인용했는데, 지인이 수정을 거듭 요구했지만 묵살했고, 결국 당사자가 공론화를 시키고 나서야 겨우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