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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ul 16. 2022

다른 이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면

에세이를 쓸 때 생각하는 것(1)

나는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가? 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 글 쓰는 태도에 대해서도 쓰려고 한다.

아예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쓰는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어두었다:)


2020년 초, 문장줍기의 원칙을 쓸 때 적어두었던 내용이 있다.

-저작권을 지키려 노력하자. 공식적으로 출간하지 않은 글은 사전의 원작자를 구하며 쓰자.

https://brunch.co.kr/@whaleyeon/50


특히 에세이를 쓸 때도 이 원칙을 지키려 한다. 남과의 일화를 다룰 때 조심하자고.


어쩌면 너무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일 때문에 좀 더 강박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다른 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짜증났던 기억


하나, 내 얼굴이 무단으로 찍혀서 포스팅에 노출되었던 적이 있었다.

소설가의 팬사인회가 학교에서 열린다 해서 신나게 달려갔었다. 며칠 있다 한 블로그에서 그 팬사인회에 대한 포스팅을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찍힌 내 사진이 있었다.

거기 나온 내 얼굴은 너무 구렸고, 나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 댓글을 달았다.

"아 제가 찍혔네요(잔뜩 하는 칭찬 오백만 줄).... 그런데 제 얼굴 나오는 건 너무 부끄러운데 내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님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찍었고, 설레 하는 여대생의 심정을 잘 담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사진을 왜 지워야 하죠? 기분이 나쁘네요."

그렇게 몇 번 댓글을 달았는데도 해결이 안 되어 며칠 속을 끓이다가 그냥 신고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포털사에서 내 신고를 받아들였는지, 그가 포스팅을 내렸는진 모르겠다.

(초상권이란 개념이 덜해서 그랬나보다)


둘, 몇 년 전 어떤 책에 내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그 글을 보게 되었다.

책에 그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인용되어있었고, 나의 신상이 꽤나 상세히 쓰여있어 당시 그를 알던 지인이라면 바로 나임을 눈치챘을 일이었다. 그 글의 저자는 스스로를 아주 멋진 사람으로 묘사했고, 나는 그를 괴롭힌 한 명의 빌런이었다. 그런데 그 말할 때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나쁘게 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책을 칭찬하는 리뷰를 볼 때마다 내가 욕을 먹는 기분이었고, 그 마음에서 벗어나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일들을 겪으니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쓸 때 다음과 같은 점을 주의한다.


하나, 대화를 직접 인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허가를 구하고, 일화를 쓰는 경우엔 사후에라도 그와의 일화를 써두었다고 꼭 알리는 편이다.


지금 준비하는 기고글에는 중간중간에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데 내가 그들의 말을 재구성한지라 말뜻이 달라질 수 있어서 여기에 대해 이렇게 실려도 괜찮을지 동의를 구하고 있다. 지금 초고가 나온 상황이라 최종 원고 전에도 다시 확인을 받을 생각이다.


브런치에 실을 에세이를 쓸 때도 다른 이의 대화를 직접 인용한다면 허락을 구하는 편이다. 당신의 대화를 이렇게 이런 소재로 쓰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대부분은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를 써주는 걸 좋아한다.


내 생활에세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남편인데, 어떤 글이던 남편이 나오는 부분은 사후에라도 꼭 보여준다. 혹시 한 명의 이야기만 쓰면 억울할 수도 있으니까.


둘, 어떤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땐 그 사람이 이 에세이를 알아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쓴다. 즉, 내가 평소에 그 사람의 면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둔다.

혹은 디테일을 최대한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험담보다는 그때 느낀 "나"의 기분에 집중해서 쓴다. 그래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눈치챘겠지만 내가 겪은 두 번째 일화도 지금 디테일을 전부 날려버렸고, 상황 설명만 짤막하게 쓴 뒤 내 기분에 집중해서 이야기했다. 솔직히 나도 어퍼컷 먹었으니 자세히 쓰면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전쟁은 더 안 하련다.


위와 같은 원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당연하지 않나 보다.


당장 아래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2020년 등단한 소설가가 지인과의 대화를 통째로 인용했는데, 지인이 수정을 거듭 요구했지만 묵살했고, 결국 당사자 공론화를 시키고 나서야 겨우 수정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1315540001681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영화에서 작사가로 나온 소피(드류 배리모어)에게도 비슷한 상처가 있다.

바로 자신과 사귀던 사람이 자신과의 이야기를 다루며 자신의 인격과 글을 모욕하는 내용의 책을 썼고,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것.

꿈 많던 작가였던 그는 트라우마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몇 년 후 어떤 가수를 만나 작사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어떤 글은 누군가의 꿈을 꺾어버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적나라한 사생활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한다.

남을 상처 입히는 글이 과연 좋은 글일까 모르겠다. 특히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 장르라면.

개인적으로 에세이도 그 범주에 속한다 생각한다.

내 글이 범작일지언정, 누군가를 부끄럽게 하고 싶진 않다.


혹시나 글로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글 때문에 인생의 슬픈 감정을 품지 마시길.

그리고 내 글도 부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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