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야매 독립러의 집안일 치트키
화요일부터 꼬박 아팠다. 장염이었는지 배가 살살 아프고 소화 안 되고 시름시름 열이 나는 상태. 이렇다 보니 일도 일상도 전부 꼬였다. 집안일에 손도 대지 않아 설거지 감이 쌓이고,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발에 옷가지들이 채이기 일쑤다.
이틀 동안 꼬박 앓아누웠다가 조금씩 몸을 움직일 수 있었을 때 집안일부터 단계적으로 했다.
목요일 즈음 집 앞에 나가 재활용 쓰레기를 버렸다.
금요일에는 조금 걸어 나가 오랜만에 장을 봐 왔다.
토요일, 오랫동안 누워있어 지저분해진 이불을 빨고 있다.
그리고 생산성 최악이었던 한 주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가장 큰 이벤트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비우지 못한 싱크대 배수구 거름망을 비웠다. 눈 딱 감고 반쯤 찬 음식물 쓰레기를 탈탈 털어 버리고, 거름망에 주방용 세정제를 뿌려 솔로 박박 문지르고 나니 반짝반짝 광이 났다.
사실 손대기 싫어서 꽤 오랫동안 미뤄두고 있었는데, 한 일주일 전부터는 머릿속에 초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저리 친다고 누구도 치워주지 않는다. 진짜 초파리가 날아오르기 전에, 눈 딱 감고 하는 게 낫다.
부끄럽지만 집안일을 완전한 내 일로 인식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2017년 결혼과 동시에 독립했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 쾌적한 집 상태를 유지하는 건 돈과 노력이 든다. 쓰레기봉투는 진짜 비싸다. 음식은 덜어먹지 않으면 침이 닿아 삭을 수 있다. 건조기도 먼지를 치우지 않으면 건조기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둘, 집안일은 미리미리 해두는 게 편하다. 배수구 거름망을 2주마다 치웠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솔까지 들 필요는 없었을 거다. 거울도 한 달에 한 번씩 뽀드득 닦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닦는 게 훨씬 힘이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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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집안일은 가장 즉각적인 성취감을 주기도 한다. 본업에서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다 보면 하루 종일 해결된 것 없이 끝나버릴 때가 있다. 하지만 집안일은 내가 몸을 바삐 움직이면 확실히 끝을 볼 수 있다. 참 하기 싫지만, 눈 딱 감고 하면 결과물이 그만큼 명확한 일이 없단 생각도 든다.
넷, 동시에 집안일만큼 굴레처럼 느껴지는 일은 없다. 성취감이 즉각적인 만큼 너무 빨리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 끼만 먹어도 돌아서면 설거지감이 생기고, 이틀만 지나도 빨랫감이 수북이 쌓인다. 화장실 물때는 어찌나 잘 끼는지. 집안일이야말로 반복 작업의 끝판왕이다.
다섯, 각자 잘하거나, 적어도 덜 싫어하는 집안일이 있다. 나 같은 경우 요리와 설거지는 정말 빨리 하는 편이다. 싱크대에 가득 찬 설거지 감도 20분을 넘기지 않고 해치울 수 있다. 반면 남편은 기계를 다루는 일이나 정리정돈을 잘한다. 케이블 타이를 써서 전선을 무섭도록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요리와 설거지, 장보기를 담당하고 남편은 정리정돈과 세팅, 로봇청소기 돌리기와 전기밥솥 다루는 일을 담당한다.
이왕이면 집안일은 최대한 힘 빼고, 즐겁게 하자는 주의다.
일단 집안일을 최대한 소극적으로 하기 위해 기계에 적극적으로 외주를 맡긴다.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다. 로봇청소기와 음식물처리기, 식기세척기를 야금야금 사 모았다.
그리고 말끔해 보이는 상태의 기준을 낮춘다. 예컨대 나는 빨래를 개지 않는다. 빨래를 정리할 때 서랍 구역별로 빨래를 던져놓는 편에 가깝다. 양말 짝은 각자 맞추는 거다. 객관적으로 봤을땐 우리집이 그닥 깔끔한 상태는 아니지만, 남편과 내가 그럭저럭 만족할 정도로만 유지하고 있다. 손님이 올 때면 좀더 신경써서 물건을 치우지만.
머리를 덜 쓰기 위해 집안일하는 시간을 고정해두는 것도 좋다. 재택 중에는 점심 먹고 소화시킬 겸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돌린다. 아니면 아예 주말을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이불빨래를 하거나 침대 커버 먼지를 터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무튼 계속을 쓴 김교석 저자는 집에 돌아온 딱 20분 동안만 집안일을 한다고 밝혔다.
최대한 집안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맥주와 팟캐스트도 동원한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영상이나 팟캐스트를 틀어둔다. 요리를 할 때는 거기다 맥주 한 캔을 홀짝거린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낄낄거리면서 냄비를 휘적거리며 두세 가지 요리를 한 번에 할 때도 있다.
어쨌든 독립 5년 차인 지금, 살림 고수는 아니지만 2인 가구에서 0.5인분은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서툰 분야가 있어 남편과 분담하고 있지만, 또 익숙해지는 게 있겠지. 거름망 비우는 일처럼.
휴, 글을 쓰던 중 빨래를 돌리러 베란다에 갔더니 물웅덩이가 생겼다. 우수관과 바닥을 잇는 실리콘이 떨어져 물이 샌 것이다. 베란다에 물이 고이다 보니 슬리퍼 자국이 나서 지저분해졌다. 오후에 사람이 와서 실리콘을 덧대주고 가면, 베란다 바닥이나 닦아야지.
주로 애용하는 팟캐스트는 다음 세 개: 여둘톡, 비혼세, 그리고 김짠부의 일기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4142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4978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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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하면서 깨달은 건데 그동안 살림살이의 명칭을 딱히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우수관은 세탁관, 싱크대 배수대 거름망은 수챗구멍이라고 부르고 있었지.
글을 쓰면서야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