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바뀐 것
코로나 사회거리 두기 단계가 해제되니,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싶어진다. 결혼식이 다시 늘었고, 청첩장을 다시 받기 시작했으며 신혼부부들이 해외로 신혼여행을 나가기 시작했다. 판교에 사람들이 진짜 많아져서 점심시간에 발걸음을 돌리는 적도 많았다. 재택근무가 해제되긴 한 모양인지 이제 버스 안에도 사람이 한가득이다. 어버이날엔 6개월만에 본가에 들러 할아버지 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길거리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기쁜 마음으로 벗다가, 사람이 다가오면 슬쩍 쓰곤 한다.
그럼에도 코로나로 인해 내 삶이 바뀐 부분이 무엇일지 꼽아보라면 집과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거다.
주 3일은 평촌에 있어야 행복해진다. 즉, 주 3평촌은 필수라고 예전 글에서 한번 언급했는데, 지금도 이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전에 약속을 잡고 어딘가로 나가는게 익숙했다면, 이젠 조용히 동네나 집에서 보내는 주말을 선호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약속을 자주 잡는 편은 아니었다. 평일에는 다음날 출근이 힘든 만큼 절대 약속을 안 잡고 주말에 한두개 정도 잡는 편이었는데, 이젠 완전한 집순이로 거듭났다. 완전한 집순이는 아니고 동네도 슬슬 돌아다니는 하이브리드형 집순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만큼 사람들과 다시 약속을 잡아도 좋을텐데 “코로나 끝나고 다시 만나자”라고 했던 사람들이 누군지조차 깜빡했다.
대신 주말에 가만히 집에서 앉아있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는 시간이 좋다. 버스 타는 게 귀찮다. 왠만하면 걸어다니게 되었다. 이건 버스 배차간격이 넓은 동네 탓도 크지만.
동네에서 딱히 대단한걸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주말에 남편하고 기분따라 카페를 방문한다. 가서 30분에서 한시간 남짓 앉아서 대화는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있다 일어난다. 그리고 전후 한시간 정도 산책한다. 필요하면 장을 본다. 다들 예쁘게 차려입고 온 카페에 증정용 티셔츠와 추리닝 걸치고 검은 봉다리를 손에 들고 들어온 부부가 바로 우리다.
기분따라 골라가며 까페에 간다. 남편과 함께 가는데, 커피를 마시고 싶어한다면 A 카페, 남편이 아이스쉐이크를 먹고 싶어한다면 B 카페, 내가 디저트를 먹고싶어한다면 C카페, 진짜 맛있는 커피가 먹고싶다면 조금 멀더라도 버스 타고 D 카페, 이렇게 동네에서 레퍼토리 늘리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체인점인 E 카페를 가보련다.
이렇게 왠만하면 동네 바깥으로 안 나가다보니, 주말 약속이 서울에서 잡히면 스페셜 이벤트가 되어버린다. 친구들이 안양에서 만나려면 어디가 더 오기 좋겠어? 라고 물어보지만, 어차피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가니 뭐가 되었던 똑같다. 홍대나 강남이나 똑같이 머니 홍대로 가자고 한다. 사실 홍대 나가는 게 나름 기대되니고, 가장 가까운 사당은 나도 잘 모르니까. 다만 주말에 서울가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충분한것 같다.
이제 이런저런 오프라인 강의나 행사도 절대 안 나가게 되었다. 지난달 초에 한겨레 글쓰기 수업을 들어볼까 고민했는데 우리집에서 공덕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보고 포기했다. 트레바리? 강남으로 나가라고? 절대 못해못해. 평일엔 절대 못가고, 주말도 힘들어. 나한텐 퀘스트 주고 깨라고 하는게 짱이야. 교육은 무조건 온라인 과제 마감형+줌 강의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네에 대한 애착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출근제도에 대한 고민도 생긴다. 지난주 겨우 주 4일 근무했는데 이렇게 피곤할 줄이야. 세 시부터 완전히 피곤해지고 저녁에는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주 3일 평촌을 지키려면 자연스레 주말에는 약속을 안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3주동안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이번주에 그나마 약속 하나가 취소되었을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평촌에서 판교 가는건 경기도권 내에서 이동하는것이니 출퇴근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맘속에 회사를 고르는 기준도 슬며시 생긴것만 같다.
주 5일 출근은 너무 힘들어요. 판교보다 멀면 더 못 다닐지도 몰라요. 주 2일에 자유로운 근무시간이면 다시 생각해볼게요. 다같이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면 너무 힘들거에요. 코어타임이 있는 건 좋아요. 음, 그렇다고 전체 재택이면 그건 좀 생각해볼게요. 화상회의를 잘 활용하면 좋겠고, 회의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보통 회의실 잡는게 기획자 몫인데 너무 빡…힘들었거든요. 전 회의실 잡다가 지쳐서 왠만하면 화상 기본으로 하려고요.
최근 네이버에서 주 3일 출근(일명 하이브리드형) vs 완전재택을 선택하게 했는데, 나라면 하이브리드형이긴 하다. 나를 위한 출퇴근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어떨까. 완전히 집에 있는건 싫지만, 동네까지는 나가고 싶은 사람. 마찬가지로 완전히 집에 있으면 생각이 뻗어나가니까 출근하는건 좋지만, 매일 출근하다간 뻗어버릴 수 있는 사람. 책상은 사수하고 싶고 사람 만나는 것과 1:1 스몰톡을 꽤나 좋아하지만 출퇴근 에너지를 아낄 필요가 있는 하이브리드형 집순이. 회사에서 점약이나 티타임도 가리지 않지만 적당히 하는게 좋은 사람.
그래서 나는 주말에도 주중에도 하이브리드형 집순이. 가끔은 콧바람을 쐬줘야 하지만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는 집에서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이전에 코로나 유행하면서 상권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좁은 역세권 대신 쾌적한 수도권 인프라를 좋아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도권 분포가 넓어지고, 대신 거점형 오피스들이 경기도 각지로 뻗어나가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풀리면서 다들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