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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an 23. 2022

새 동네에 뿌리내리기

조금 지났지만 또 동네와 집 이야기

이사한지 세 달이 넘었다. 방도 슬슬 정리되었고, 동네 지리에 익숙해졌다. 단골 가게도 생기고 있고, 어디가 산책하기 좋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이사간 곳은 평촌이다. 이름에도 "평"자가 들어갈만큼 평평한 곳이라 아무리 걸어도 언덕이 안 나오는게 신기했다. 이 곳에는 골목이 없다. 


원래 모든 인프라가 집중된 곳임을 알고있었지만, 일단 모든 것이 모인 역앞 번화가를 전후로 한 블럭만 들어가면 바로 아파트만 있는게 생경했다. 이전에 살았던 동네들 - 벽돌빌라가 있고 꼬불꼬불한 언덕이 있는- 과 비교되어서 그런가.


집 앞에 바로 마트와 헬스장이 있다. 길 안 건너고 조금만 더 가면 작은 공원과 도서관이 있다. 직장인 판교로 가는 빨간 버스는 네 블럭을 걸어가면 되고 회사 셔틀도 네 블럭만 걸으면 된다.


한 블럭을 위로 걸어가면 옆 단지에는 금요일마다 장이 서고, 이마트는 세 블럭을 더 걸어가면 있다. 동사무소는 옆 단지 아파트, 홈플러스는 한 블럭, 백화점이 네 블럭.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는 두 블럭. 큰 공원은 세 블럭.


앞으론 여섯 블럭, 많아야 열여섯 블럭안을 돌아다니는 삶일까. 그동안은 골목골목 돌아다니면 이십년 토박이인 나도 모르겠는 길들이 나와서 의아해했는데.


이 공간을 걸어다니다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새로울 것이 없다며 지겨워할 수 있을까. 남편과 걸으며 이런 소리를 했더니 자기는 재밌는 언덕이 많았던 이전 동네는 질렸다면 노잼 평지생활이 더 좋다고 했다. 뭐만 하려면 버스 타고 나가야 하는게 기본이었던 걸 생각하면 복에 겨운 소린가.


그런지라 마을버스를 잘 안타게 된다. 그러다보면 만보 이상은 가볍게 채운다. 이사 초엔 하루종일 걸어다닌 적이 있는데, 아침에 도서관에 책을 빌려보러 한 번, 범계역으로 언니를 배웅하러 한 번, 그리고 남편이랑 평촌역 앞에서 저녁먹으러 걸어갔다가 평촌역에서 범계역까지 한 정거장 걸어보고, 범계역에서 살것들을 사들고 와 보았다. 그렇게 나는 만 오천보를 걸었고, 열시도 안 되서 기절했다.


자주 걸어다니는 건 사실 마을버스가 잘 안 오는 탓도 있다. 역에서 집까지 걸어서 15분인데, 마을버스를 15분 기다려야 하면 그냥 걸어가는 걸 택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나는 역과 역 사이에 살고있어서 어디든 거리가 15분 이상 걸린다. 4호선 안에서 몇 번 이리저리 시뮬레이션해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진짜 이 동네 주민이 되었구나 느낀 건 동네 미용실을 새로 찾았을 때였다. 미용실을 옮길때 걱정이 많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사가고도 교회와 미용실은 못 옮기는 걸까.


나는 본가에 살 때부터 동네 미용실을 다녔고, 결혼 후 4년동안도 그 미용실에 다녔다. 그런데 옮겨야 한다니.


머리를 자주 자르는 편이 아니니까 본가를 들렀을때 미용실도 갈까? 몇 차례 고민하다가, 한달 전 동네 미용실을 찾았고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이사하고 한동안 내가 강북지역과 멀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노력했었다. 이사를 한 뒤에도 호기롭게 원래 신당동 지역으로 다니던 운동을 계속하겠다 결심했었다.  그것도 일요일 아침 열시 반 운동으로.


나는 대체로 주말에 부지런하다 생각했지만, 아침에 알람을 듣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눈을 떴을때 아홉시 반이면 어찌나 허무하던지. 나는 그렇게 기부천사가 되었고, 한달간의 운동은 흐지부지 마무리했다.


본가인 후암동을 가는 일도 힘들어졌다. 할머니가 집에 올 때 차비를 만원씩 용돈이라 주시곤 하는데, 그만큼 내가 나타나는 빈도수가 줄었나보다.


본가를 갈때마다 방앗간 들르듯 후암동의 카페들을 드나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후암동에 생긴 새로운 가게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이젠 인정해야겠다. 나는 새 동네에 이사왔고, 여기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오히려 사실 누가 홍대로 불러주면 좋다. 혼자서 좋은 곳들을 가고 싶어도 도저히 못 가겠다. 경기 남부에 사는 내 입장에서는 신도림, 사당쪽이 좀더 가기 편하지만 왠지 복잡하기만 하고 갈 곳이 없게 느껴진다. 아직 정을 주지 못했나보다.


그래도 큰 맘 먹고 가야 하니 이런 출타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능한것 같다. 막상 약속이 안 잡히는 주말은 뭔가 섭섭한걸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드나보다.


그래도 자주는 못 나가겠다. 가끔 경기도민은 한시간 반 전에 나오면 지각이요, 두시간 전에 나오면 삼십분 일찍 도착한다 했던 짤에 깊이 공감한다.


연속 3일 출근했던 적이 있는데, 체력이 축난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내내 출근하는게 쉽지 않나보다.


요즘은 약속이 잡히지 않아 쭉 동네에만 있었다. 자주 걸으러 나갔지만,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음 한 주를 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나는 것 같다.


평촌인은 평촌에 살 때 마음이 평온하고, 다른 동네를 갈 땐 힘든가보다. 평촌에서 어딜가도 한시간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어딜 가더라도 한시간은 족히 걸린단 말 같다.


참고로, 지금 집 기준으로 본가인 후암동, 홍대/망원 지역까지는 한시간 조금 넘게 걸리고, 신도림은 40분, 강남/판교는 한시간이다. 대학로나 잠실, 성수쪽은 한시간 반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출근일 포함해, 주3평촌 - 즉, 주에 3일정도는 무조건 동네에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행복해지겠구나 다짐해본다. 주 2-3일정도 오피스 나가는 거 생각하면 되게 도전적인 목표구나 싶어지네..


사족은 깊이 공감하는 짤 하나.


홍대는 한시간 조금 더 거린다. 이야 가깝구먼.

그럼에도 이런 동네의 평온함을 좋아하니 동네에 눌러붙어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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