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얼굴로 기억될까.
재작년인가 샌프란시스코 블루보틀에 앉아있던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학교에서 모 세미나를 듣지 않았었냐고. 그 세미나땐 그냥 딱 한번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소개를 했을뿐이었고,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는데, 그 분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이 좁은 건지 내 얼굴이 변하지 않은 건지 무서워졌다. 대학교 수업때도 말 한마디 해보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이 말을 걸었던 적도 있었고, 신입사원 건강검진을 하고 고등학교 근처를 추레한 얼굴로 배회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나를 딱 알아보셨다.
아마 스타일이 많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화장을 잘 안하고, 아주 잠깐 머리를 염색하거나, 기를 때를 제외하곤 앞머리없는 단발머리를 유지하니까. 참고로 가르마는 안 탄다. 그 외에도, 진한 눈썹과 눈, 동글동글한 얼굴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사람들이 내 얼굴을 그려줄때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는 폴라티만 주구장창 입고, 여름에는 줄무늬 반팔을 애용한다. 사람들이 나를 그릴 때 가장 빠르게 뽑아내는 특징도 가르마다. 회사 티셔츠와 후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다.
아주 잠깐 스타일이 달랐던 적이 있다. 잠깐 화장을 하고, 비즈니스캐주얼을 입었던 시기가 있었다. 야근을 하면 피부가 썩을것 같다는 걸 깨달아서 곧 포기했지만. 짧은 원피스가 좋아서 입었던 적도 있지만 이젠 샌들도 민소매 티도 더이상 입지 않는다.
그 옷들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때의 내 모습이 그리워 끌어안고있는 것에 가깝다. 가방도 하나, 신발도 나이키 러닝화 하나다. 옷이 별로 없어서인지 가끔 개발자같단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남편이 개발자 패션같다고 할 때가 있고, 후드티를 푹 뒤집어쓰고 일한 모습을 보고 해커같단 피드백을 들은 적도 있다. 어쩌면 개발자는 편한 옷을 좋아한다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몸을 드러내는게 부담스럽고, 몸이 편한게 제일인 사람이 되었다.
이젠 사람들이 알아보다못해 기계도 날 잘 알아본다. 회사 건물의 얼굴인식 출입기기에서 마스크를 낀 얼굴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내 얼굴은 거의 프리패스 수준이다. 여러명이 함께 지나가면 거의 대부분 내 얼굴로 열린다. 사원증을 깜빡하고왔으면 얀을 데리고 가면 된다, 고 말이지.
지금 회사에서도 나는 얼굴을 기억 못하는데, 나를 기억해주는 편이 많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무슨 얼굴로 날 기억해줄까. 기왕이면 상냥한 표정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