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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Mar 06. 2022

얼굴이 늘 비슷한 사람

나는 어떤 얼굴로 기억될까.

재작년인가 샌프란시스코 블루보틀에 앉아있던 때였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학교에서 모 세미나를 듣지 않았었냐고. 그 세미나땐 그냥 딱 한번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소개를 했을뿐이었고,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는데, 그 분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이 좁은 건지 내 얼굴이 변하지 않은 건지 무서워졌다. 대학교 수업때도 말 한마디 해보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이 말을 걸었던 적도 있었고, 신입사원 건강검진을 하고 고등학교 근처를 추레한 얼굴로 배회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나를 딱 알아보셨다.


아마 스타일이 많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화장을 잘 안하고, 아주 잠깐 머리를 염색하거나, 기를 때를 제외하곤 앞머리없는 단발머리를 유지하니까. 참고로 가르마는 안 탄다. 그 외에도, 진한 눈썹과 눈, 동글동글한 얼굴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사람들이 내 얼굴을 그려줄때도 마찬가지다. 겨울에는 폴라티만 주구장창 입고, 여름에는 줄무늬 반팔을 애용한다. 사람들이 나를 그릴 때 가장 빠르게 뽑아내는 특징도 가르마다. 회사 티셔츠와 후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그려준 초상화가 궁금해 찍어두었다.


아주 잠깐 스타일이 달랐던 적이 있다. 잠깐 화장을 하고, 비즈니스캐주얼을 입었던 시기가 있었다. 야근을 하면 피부가 썩을것 같다는 걸 깨달아서 곧 포기했지만. 짧은 원피스가 좋아서 입었던 적도 있지만 이젠 샌들도 민소매 티도 더이상 입지 않는다. 


그 옷들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때의 내 모습이 그리워 끌어안고있는 것에 가깝다. 가방도 하나, 신발도 나이키 러닝화 하나다. 옷이 별로 없어서인지 가끔 개발자같단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남편이 개발자 패션같다고 할 때가 있고, 후드티를 푹 뒤집어쓰고 일한 모습을 보고 해커같단 피드백을 들은 적도 있다. 어쩌면 개발자는 편한 옷을 좋아한다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몸을 드러내는게 부담스럽고, 몸이 편한게 제일인 사람이 되었다.


이젠 사람들이 알아보다못해 기계도 날 잘 알아본다. 회사 건물의 얼굴인식 출입기기에서 마스크를 낀 얼굴들도 인식하기 시작했는데, 내 얼굴은 거의 프리패스 수준이다. 여러명이 함께 지나가면 거의 대부분 내 얼굴로 열린다. 사원증을 깜빡하고왔으면 얀을 데리고 가면 된다, 고 말이지.


지금 회사에서도 나는 얼굴을 기억 못하는데, 나를 기억해주는 편이 많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무슨 얼굴로 날 기억해줄까. 기왕이면 상냥한 표정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대충 이렇다(이건 2017년도 사진)


인생에서 가장 빡세게 화장했던 사진(역시 2017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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