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채우는 행위의 의미(1)
내게 처음 온 미니멀, 책 비우기
나는 태어나서 이사를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재작년까지 물건을 한번도 정리한 적이 없었다. 중고서점이 생긴 뒤에는 내가 원하는 책들을 손에넣었다. 그러다보니 책의 무게가 감당이 안 되는 시절이 있었다. 더군다나 서랍과 엉킨 케이블이 더해지니 더께처럼 쌓인 추억, 혹은 지적 욕심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책이 점점 쌓여갔다. 책이 기분나빠졌다. 물건이 내뿜는 나쁜 기운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2014년에 처음으로 쭉 책을 비웠다. 외국어 공부책이나 문제집은 버리고, 소설책 등은 한 권에 3천원씩 페친들에게 팔았다. 중학교 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어 책을드린다는 핑계로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었고(10년만에 뵈었다), 친구와 차 한잔 했다. 손에 들린 돈보다는 커피 마시는 재미로 팔았던 것 같다.
현재의 방향: 적정소비과 적정물건의 추구
지금 쇼핑을 가급적 안 하려 하는데 “적당히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소비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작년에 읽었던 책이 충격적이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셰어하우스에 살고, 그들은 자신의 재주를 나누어 정말 “살아가기 위한”돈을 벌고 공부에 투자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다시 직업을 잡는 과정에서 나는 자꾸만 본전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만큼 벌어야 손해를 빨리 매꿀거 같아 자꾸만 초조해졌다. 그러자 자꾸 속이부데끼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물건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직업보다, 일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싶어졌다.
또한 내년에 독립한다면 아마도 15평이 채 안 되는 집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때 내 모든 물건을 들고갈 수 없고, 내가 살림을 책임져야 한다면 내가책임질 수 있는 작은 범위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상을 어지르는 내게,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면 미니멀 라이프 블로그들에서 말하는 “청소에 10분밖에 안 걸린다”는 말에 솔깃하게 되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있고 싶다. 그리고 오히려 책상을 한번 비운 이후 집에 있는 것이 편해졌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으로 채우고, 집중하기
사실 고백하자면 오히려 가방을 두 개 샀다. 평소에 가방은 한 번 사면 바꾸지 않는지라 가방이 세 개였는데, 설레는 가죽가방 하나를 들였다.
현재 내 방향은 이정도.
- 과소비는 줄인다. 택시 안 타고 커피 덜 사 마시기, 약속 덜 잡기, 과식하지 않되 밥은 챙겨먹기.(본의아닌 1일 1식을 해서 3키로가 빠졌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 엄마와 공유하는 옷장이므로, 옷과 구두는 현상유지를 하되 내년 초에 중복 아이템을 정리해 독립해 나가고
- 화장품 중 쟁여놓은 건 그대로 써서 없앤 뒤 올인원 로션/ 오일/ 선크림/ 물비누/ 샴푸 체제로 굳히고
- 가방과 잡화 중 매일 손이 가는 건 마음에 드는 걸로 바꾸되
- 온라인 컨텐츠는 적절한 가격일 때 쟁여도 된다(그래서 왓차플레이, 멜론, 에버노트와 드랍박스의 정리하지 않는다. Mooc도 수입이 다시 생기면 듣는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Publy 리포트는 산다. UX 디자인 쪽 자료인 Interaction Design Foundation의 멤버십도 유지한다.(대신 끝나기 전에 많이 봐둬야 겠다).)
- 각종 증빙서류를 정리한 것처럼, 앨범과 디지털 컨텐츠를 정리하고 싶다. 울고 웃었던 편지를 보기좋게 간추리고 싶다. 메일은 간소하게, 파일은 찾기,.
- 내년 초 꾸려야 할 살림살이는 부모님들과 짝궁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생각하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지만, 최대한 미니멀하게 하고싶다. 바라는 그림은 있고, 광의적으로 짝궁과 합의를 봤는데 과연 어찌 될지는 모를 일.
- 플라스틱과 전기를 미니멀하게 만들고, 물을 아끼고 싶다. 가급적 텀블러를 들고다닐 것.
한달 전 들인 아이비 화분에 “크래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유난히 일이 풀리지 않았던 10월, 내가 키우던 화분만이 정직하게 자란다. 크래커가 잘 자라 분갈이를 할 때마다 천천히 화분 식구들을 들이고 정성스레 이름을 붙여줘야지.
한달동안 고마웠어, 크래커